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Jan 04. 2020

뉴욕, 빛과 소리가 하나가 되다.

<Reich Richter Pärt>

2019년 4월 5일 뉴욕에 The Shed 라는 아주 신기한 복합 문화 공간이 탄생합니다.

뉴욕은 이미 세계 문화의 중심지라는 굳건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지만, 현재의 모습이 20세기 초에 시작된 대대적인 도시 개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니, 'Everything is Old'란 이미지 역시 강했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부터 단순한 재개발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들이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시도되는데  The Shed 역시 그런 일련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뉴욕시의 허드슨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복합예술 공간입니다.


도시 공간에 대한 생각을 바꾸다



위의 이미지에 보는 것처럼, The Shed에는 메인 건물에 부속된 공간과 그 위를 덮는 (이름 그대로 shed) 이동이 가능한 덮개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평상시에는 노천 광장(Outdoor)으로 사용되다가, 행사가 있을 때에는 실내 공간(Indoor)으로 변형이 가능한 혁신적인 건축 개념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최초 청사진이 발표된 이래 많은 논란들이 있어 왔는데, 특히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굳이 움직이는 덮개를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투자 효율성 등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도시 재개발'과는 달리 새로이 창출된 공간은 가능한 한 많은 도시인들이 '공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21세기  '도시 재생'의 개념을 잘 적용해 낸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최근의 추세인 Hybrid가 이제는 도시 재생에 까지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간에 생명을 불어 넣다.   Reflection / Penetration


    새로운 개념들이 적용된 The Shed는 세계 최고의 도시중 하나인 뉴욕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 주리라는 많은 기대를 안고 태어났으며, 이런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오프닝 기념으로 엄청난 공연과 전시 등을 기획하게 됩니다. 그 중에 가장 눈길을 끌었던 프로그램이 바로 <Reich, Richter, Pärt> 라는 당대 최고의 위상을 지닌 음악가들과 미술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가인 Steve Reich, 유럽 생존 작가중 경매 최고액을 기록한 독일의 Gerhard Richter 그리고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현대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음악가 Arvo Pärt의 만남.


클래식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사실 이들 중 한 명의 이름만으로도 흥분할 만한 대가들의 합동 공연은 건축물을 놓고 일었던 논란만큼은 아니지만, 단순히 'The Shed의 홍보를 위한 쇼'라는 혹평에서 '뉴욕이 기획할 수 있는 최상의 문화 상품'이다 라는 찬사까지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엄밀히 말하면 3명의 결합이 아니라, <Steve Reich와 Gerhard Richter> 그리고 <Richter와 Arvo Pärt> 각각의 듀오가 펼치는 이미지와 소리의 조합으로  Gerhard Richter라는 공통분모가 들어있기에 탄생한 기획입니다.  


The Shed에 따르면 전시(혹은 공연)는 <입구>와 <Reich Richter> 그리고 <Richter Pärt> 3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입구> 에는 Richter의 작품이 태피스트리처럼 벽면에 길게 늘여져 있습니다. Richter 작품의 한 부분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듯한 이 이미지들은 물감을 묻힌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펼쳐내어 마치 만화경에서 보이는 것 같은 좌우대칭적인 이미지 입니다.


Drei hirtenkinder aus Fátima (2014)  Pärt, performed by  Choir of Trinity Wall Street


이렇게 Richter가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스스로 복제와 확장을 하며, 자신의 출발점 (Richter의 원 이미지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귀소 본능을 보여주며, 이는 노스탈지아적인 파토스를 느끼게 합니다. 이런 감정은 뒤에 설명해 드릴 맨체스터 프로젝트에서 등장시킨 Glass들로 이루어진 작품의 핵심 요소들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사진 속에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Choir of Trinity Wall Street의 단원으로 이들은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평상복을 입고 서서, Pärt 가 2014년 작곡한 <Drei hirtenkinder aus Fátima> 를 일정 시간 주기로 부르고 있으며, 이런 일종의 게릴라 공연이  <RIchter, Pärt> 협업의 핵심입니다. 


사진 속 태리스트리 이미지 같은 형식은 Richter의  2012년 작업은 <Patterns>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일련의 작업은 Divided, Mirrored, Repeated란 개념하에 이루어 졌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도 이 개념이 사용되게 되는데요, 입구를 지나 좀 더 내부로 들어가면 리히터의 이미지를 활용한 영상들이 펼쳐지고, 그 맞은편에서 Reich의 음악이 연주됩니다.



Ensemble Signal and conductor Brad Lubman perform Reich Richter by Steve Reich


Reich Richter : music by Steve Reich; moving picture, in collaboration with Corinna Belz


이번 전시에서 Richter는  Corinna Belz와 협업을 한 영상을 통해서 <Patterns>에 등장했던 stripe 이미지 및 다양한 추상화 이미지들이 지속적으로 분할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위의 벽면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 이미지들은 반사와 중첩을 통해 수없이 많고 새로운 이미지의 복제를 만들어 내어 마치 관객들은 만화경( 萬華鏡 만 가지 빛을 보여준다는)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한 이런 분할은 정확히 4096번까지 되풀이 되는데, 이런 반복을 통해 본래의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로 자기 창조를 해나갑니다. 마치 생명체의 기본 요소인 세포들이 분할해 나가며 전체를 이루고 하나의 생명이 완성되는 것처럼  영상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이러한 시각적 경험과 동시에 유사한 청각적 경험을 누리게 됩니다.  Reich의 곡은 타악기 연타를 통해 음악의 기본 요소인 소리와 리듬만으로 분할 재생 반복을 거치며 하나의 완성된 음악작품으로 탄생되는 것을 들려줍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 좀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e7C902-E


전체 기획은 이렇듯 세 거장이 각자 지니고 있는 본인들의 특징들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예술을 비춰주고 (Reflection)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Penetration)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현대 음악과 미술의 다양한 모습을 비춰주고 채워줄 수 있게 꾸며진 것 같습니다.



첫 만남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공연의 기획은 The Shed를 위해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 거장들의 만남은

 Gerhard Richter와 Arvo Pärt가 2014년 바젤에서 처음 만나며 시작되었는데, 에스토니아와 동독이라는 구소련 체제하의 국가에서 성장한 노령의 음악가와 미술가는 서로에게 많은 동질성을 느낀 듯합니다.


전체와 개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고통스러운 공산주의 치하의 삶(전체) 중에도, 그 안에 살고 있는 각자의 다양한 경험(개별)은 나름의 희로애락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그 개별자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살펴보지 않고, 전체로 뭉뚱그려 그들을 동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보편적인 인간이라면, 상대방의 "이해"를 바라지 "동정"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이 "이해"란 행위를 위해서는 이해의 대상이 될 상대가 경험해온 과정이 포함된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동질적인 향수를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The Shed의 ceo이자 예술감독인 Alex Poots는 2015년 당시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Manchester International Festival 에서 Gerhard Richter와 Arvo Pärt의 공식적인 만남(작품을 통한)을 기획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그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개인의 역사"에서 서로 중첩되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을 테고 이런 겹쳐진 경험들을 가지고 각 예술가가 끄집어낸 생각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먼저 공연된 음악을 보면, Arvo Pärt의 <Drei hirtenkinder aus Fátima>는 작곡자가 포르투갈의 Fatima에 방문해서 그곳에서 일어난 "성모 마리아의 기적"에 관한 감동을 받아 만든 무반주 합창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sJuVgY9HkQ


Pärt의 작품들은 2가지 경향으로 나뉘어 집니다. 초기에는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등의 작곡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었는데, 점차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소련 당국의 감시와 박해로 인해 그는 창작에 있어서 절망적인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한 동안 침묵의 기간을 보낸 후에, 최초의 음악적인 시도인 그레고리안 성가들과 같은 단선율 음악을 연구하며,  "tintinnabuli 종"이라는  음악적 개념을 창안했는데, 스스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단 하나의 음으로도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의 음, 또는 하나의 조용한 박자, 또는 하나의 소리 없는 순간들이 나를 만족시켰다. 나는 아주 제한된 소재-하나의 소리, 2개의 소리-로 작곡했다. 아주 기본적인 소재-3화음, 하나의 명백한 화음-로 곡을 만들었다. 3화음으로 만든 3개의 음은 마치 종소리와 같았고 그래서 나는 이를 <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한 그의 음악은 순수하고 맑은 소리의 정수를 찾아가는 여정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음악과 어울릴 미술작품으로 Richter는 Arvo Pärt를 위해 8점의 작품을 선택하는데. 그중 Doppelgrau 시리즈 4점은 2014년 처음 만났던 Pärt와의 우정에 대한 Richter의 응답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톤의 Grey색이 입혀진 각각의 정사각형 glass 두 개를 쌍으로 이어 붙인 이 작품들은 거울이 가진 특징, 즉 거울 주변의 사물을 반사하고 투영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하게 칠해진 유리는 더 거울 같은 특징을 지니기에 많은 빛을 반사시킬 것이고, 엷게 칠해진 유리는 투과시키는 빛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한 차이점은 그 앞에 서서 자신을 비쳐보는 관찰자의 모습을 서로 다른 느낌으로 반사시키거나 투과시키며, 우리의 시각에 대해 반응하게 됩니다.  


2014 Richter, Doppelgrau


유리에 비치는 나의 모습과 유리를 뚫고 투영되는 환영이 끝없이 반복되며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마치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본질의 정체성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목마름 같다고나 할까요?



동일한 공간이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 또 동일한 시간에 유사한 공간들이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한 개인의 역사를 비춰주는 거울에 대해 누구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을 이 두 거장들의 대화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런 관점에 관한 Arvo Pärt 의 또 다른 작품 한번 들어 보시죠.

Spiegel im Spiegel for Cello and Piano <거울 속의 거울>


https://www.youtube.com/watch?v=FZe3mXlnfNc

단순한 음들이 반복을 거치면서 상승하고 하강함을 통해, 마치 수면에 비친 나의 잔영들이 보일 듯 말 듯 물결에 떠밀리며 잔잔히 퍼지는 느낌은,  내 개인의 역사에 대한 근원을 찾아 나서는 스스로의 회상과 반성과 같은 음악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듣고 나니, 왜 Richter가 Pärt를 위해 Doppelgrau를 가지고 나왔는지 좀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첫 만남


Steve Reich와 RIchter는 이번 The Shed를 통해 첫 콜라보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두거장의 만남을 재현한 2019년 가을 런던 바비칸 센터의 공연을 보고 영국 가디언지의 문화평론가인 John Lewis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에 대해서 "혼란과 최면"이라고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클래식 음악계나 미술계에 큰 빚이 없는 문화 평론가의 눈으로 본 이번 콜라보에 대한 그의 논리는 대부분의 일반 관람자와 같은 위치에서 그들이 받을 느낌을 대변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각각의 서로 다른 예술이 함께 하며 공명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느낌을 뒤틀어 버린다고 생각한 것일 텐데요, 위에서 The Shed의 <Reich Richter> 동영상을 본 여러분들의 느낌은 어떠신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음악에서 기대하는 것은 시적인 감수성과 같이 좀 더 감정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Reich의 음악은 Pärt의 음악과는 달리 그런 측면으로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또한 Richter의 영상 역시, 우리가 시각적으로 쉽게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종류의 시각 예술도 아닌 것이죠.


Steve Reich의 음악은 다양한 타악기들이 다채로운 음색의 피치와 리듬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며, 소리와 리듬으로 표현되는, 음악에 있어서 "다이내믹"의 차이를 느끼게 해 주고 있습니다. 음악에 관해서 우리들에게 좀 더 익숙한 개념인 다양한 멜로디와 화음의 부재가 오히려 평소에 느끼기 힘든 "다이내믹"이란 요소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듯 Richter를 가운데 두고, 서로 다른 개념의 감성적인 Pärt와 논리적인 Reich의 음악이 등장하는 전시 및 공연이 같은 공간 속에 같은 시간대에 펼쳐지고 있는데 바로 이런 점을 통해 우리는 Richter의 미술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열쇠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그럼 과연 Richter는 어떤 미술가일까요?



Gerhard RIchter


Richter는 일생에 걸쳐 다양한 스타일의 작업들을 해오고 있는데, 중요 작품을 살펴보면,


"SEASCAPE (CLOUDY)", 1969 200 x200,  Catalogue Raisonné: 239-1 Oil on canvas


초기의 풍경화입니다. 같은 풍경을 찍은 다수의 사진들을 콜라주하고 그것이 주는 이미지를 다시 캔버스에 옮긴 작품입니다.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1024 Colours  1973 254  x 478 Catalogue Raisonné: 350-4  Lacquer on canvas


1966년부터 Richter는 색상표라고 불리는 일련의 추상 작업을 시작합니다. 색이라는 기본 요소에 대한 연구로 보이는 이 작업은 작은 숫자의 색상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차 늘어나다가 말년에 이르러서 다시 단순화되어 작은 숫자의 색상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아기에서 점점 자라나 성인이 되고 늙는 과정을 육체적인 변화가 아닌 정신적인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순진한 아이에서 시작해 점점 복잡한 지성을 지니게 되지만, 결국 다시 아이와 같이 순진한 상태가 된다는 이야기를 연상케 합니다.



Kerze:Candle, 1983, 95 x 90  Catalogue Raisonné: 546-2 Oil on canvas


Richter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촛불>은 1988년 프로그레시브 락 그룹인 Sonic Youth의 1988년 앨범인 <DAYDREAM NATION>의 앨범 표지에 사용되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RIchter의 작품인 줄은 몰라도 그림 자체로는 어디선가 보셨다는 분들이 꽤 많죠. 2008년 2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약 800만 GBP 당시 환율로 약 160억 원 정도에 낙찰되었습니다.

오래전 찍어놓은 사진 같은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리히터는 이와 같은 photorealistic 그림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 이미지를 흐릿하게 보이도록 브러시와 끌개 손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Betty 1988, 102 x 72  Catalogue Raisonné: 663-5 Oil on canvas


마치 사진처럼 보이는 위의 작품은 작가의 딸을 모델로 해서 그렸다는 <Betty>입니다. 딸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10년 전에 찍어 두었던 딸의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잊고 있었던 딸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 나며 대상물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는데, 10년이란 지나간 시간의 총량이 노스탤지어에 그만큼의 무게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Abstraktes Bild  1986 300x250  Catalogue Raisonné: 599 Oil on canvas


동독 시절인 1986년 동베를린에 위치한  'Neue Berliner Galerie im Alten Museum'에서 처음 공개된 이 "추상화 599"는 70년대 이후 추상 작품을 하던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소더비에서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인 46 million USD (약 500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거의 끝을 향하고 있던 시점이었고, 10여 년 이상 추상 작품을 하던 작가의 미학적 개념이 완성되가고 있던 시기의 완성작으로 인정받은 것이죠.


작가 스스로 자신의 추상화 작업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묘사할 수도 없는 하지만 그 실재를 가정할 수 있는 본질에 관한 시각적 가상 모델이 바로 추상화입니다"


그렇다면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본질은 무엇이고, 그가 만든 가상 모델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요?


2002년 런던 국립 초상화 갤러리에서 Richter의 자화상 전시를 기획한 당시 큐레이터의 설명이 중요한 힌트가 되고 있습니다.


당시 큐레이터였던  폴 무어하우스는 Richter의 작품들은, 정교한 사실적 포토리얼리즘에서 순수한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은 폭의 작품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고, 이런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은 어떤 부분에서 일관성을 갖고 있는데, 그 일관성을 모호하게 드러낸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는 Richter 작품들이 갖는 "모호한 일관성"을 이해하기 위한 key가 그의 초상화 작품에 있다며, 런던의 국립 초상화 갤러리가 Richter 전을 기획한 이유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Portrait Schmela  1964 110  x 97  Catalogue Raisonné: 37-2  Oil on canvas


Richter는 1964년부터 고객의 요청에 따라 여권의 사진이나 가족사진 등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작업들은 신문이나 잡지 등의 사진을 가지고 인물화를 그리는 것으로 확장되기 시작

합니다.

Newspaper photos  1962–1968, 51.7 x 66.7

위의 사진 자료의 우측 하단 사진과 좌측 상단 사진을 가지고 각각 작업한 작품들입니다.


Group under Palm Trees  1966 120 x 130,  Catalogue Raisonné: 118  Oil on canvas
Philipp Wilhelm  1964 150 x 130, Catalogue Raisonné: 27  Oil on canvas


폴 무어하우스의 설명을 좀 더 살펴보면,

"사진을 찍은 대상물과 결과물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생깁니다. 만일 대상물을 그린다면 그 차이는 좀 더 커지게 되는데, 만일 몇 년 전에 찍었던 대상물에 대한 사진을 보고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결과물은 Ghost가 돼버립니다"


이 유령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초에 사진을 본 사람들이 사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술적 효과들 (노출 등을 조절해서 인물의 주변을 흐리게 한다든지, 또는 인물 자체를 흐리게 하는 등의)을 마치 영혼에 대한 사진이라고 오해했던 역사 속 이야기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기가 발명된 최초에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가 자신들의 영혼을 찍거나 몸에서 빠지게 할 것이라고 공포에 사로잡혔던 이야기들 말입니다.

독일의 소설가 Sebald는 그래서 사진은 단지 이미지의 재현 수단일 뿐 아니라 "유령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라고 했다고 하며, 큐레이터의 유령 이야기는 바로 이런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실재와 실제 그리고 현실 사이의 갭이라는 시간속의 잔상들을 유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잔상들은 흩어진 진실일 뿐인 거죠.


richter는 "환영 또는 외형의 다소간의 유사성은 내 인생의 주제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또는 우리에게 보이는 모든 것은 바로 빛에 반사된 유사성이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폴 무어하우스의 설명과 Richter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Richter가 생각하고 있는 삶의 본질은 "우리는 실체의 본질에 대해서 알 수 없으며, 단지 그들(실체)이 외부적으로 드러내는 외형을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즉 Richter의 그림들은 시간이 만들어 놓은 대상물과 관찰자 사이의 틈, 다시 말해서 대상물 자체가 관찰되는 시점과 관찰자가 그것을 이미지로 재현하는 시점 사이의 틈을 가지고 본질과 본질의 외형이 변해 나가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관찰하는 것이 대상의 본질이 아니며, 즉 본질이란 대상물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자체 특징에 놓여 있다면 미술이, 또는 전체 예술이 그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요소를 통해 복제하고 재생산하며 새로운 예술을 창조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 그의 추상 작업의 시작일 것입니다.


그의 추상화 작업은 캔버스에 칠한 물감이 미쳐 마르기 전에 다른 색들을 끌개를 사용해 그 위를 흩고 지나가는 방법이 많이 사용됩니다. 색과 모양이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생성될 여지가 상당히 많으며, 작가 스스로도 그런 문제에 대해 확실히 인지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는 자신이 관찰한 대상에 대한 자신이 생각이 관념에 머물러 있으면서 명확히 표현되지 않는 부분을 색과 형태 스스로가 발전하며 채워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https://vimeo.com/85719222


영상에서 보이는 작업과정만 본다면 흔히 이야기 하는 나도 할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보여 드렸던 그의 작품들을 보면, 초기의 극사실주의적인 그림에서도 그는 완전히 사진처럼 그릴 수 있는 예술적 기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술적인 부분이 자신의 예술적 관념을 완벽하게 표현하기에 부족한 부분을 감지하고 작품들이 시간에 바랜 사진처럼 보여지기를 바랬으며, 또한 찍은 사진위에 물감을 덧칠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이미지가 새로운 색과 형태에 의해 분해되고 중첩되는 영향들을 탐구하고, 기계적인 분할을 통해 창조되는 패턴과 인간이 창작하고 있는 예술간의 차이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어떤 하나의 "~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술 그 자체에 대해 행해진 그의 오랜 기간의 연구와 작업은 그에게 색과 형태라는 개별 요소들의 생명력을 깨닫게 하고, 자신의 예술적 안목과 미술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요소들이 서로 하모니를 이루며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 갈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Image, Sound and Purpose of itself


위에서 살펴본 세 명의 예술가를 그들이 서로 협력했던 공연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들 모두는 음악과 미술이라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 내려고 했던 우리 시대의 거장 들이며,  Richter의 추상화 경향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큰 흐름 각각과 각각의 음악가가 만들어 내는 음악들이 자연스럽게 공명하고 중첩됨을 통해 우리 관람자들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뉴욕이라는 이름은 최초에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New Amsterdam이라고 불렸다가 이후에 영국이 네덜란드와의 전투를 통해 이 지역을 차지한 후, 그  전투를 이끈 Duke of York의 이름에서 York를 가져와 New York로 바꾼 이 후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바뀐 적이 없지만 그 공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디언의 이름에서부터 현재의 Newyork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며, 우리의 인식 프로세스는 이 이름에 기반하여 그 공간들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뉴욕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멋지게 탄생한 The Shed가 그 이름처럼 우리에게 다양한 문화의 보호막으로 지속적으로 인식될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은 공간의 미래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그 첫 시작점인 <  Reich, Richter, Part>을 살펴보며, The Shed가 지향하는 새로운 시대의 예술 모델에 대해 기대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1920년 파리, 최고의 거장들이 보여주는 올스타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