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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11. 2019

새로움을 창조하는 덕후들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나이를 먹어도 쓸데없는 공상력은 줄어들 줄을 모릅니다.


 아이의 추천으로 개봉한 지 한참 된 '공각 기동대'를 보았습니다. 얼마 전 같이 식사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있었고, 그러다가 마무리 디저트 차례가 되자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도 함께 등장했습니다. 코스의 마지막을 훈훈하게 마무리하던 중에 갑자기, 이 여배우가 나오는 '공각 기동대' 봤냐고, 아니라니까 꼭 보라고 밀어붙입니다.


 그 날밤 마침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있길래 틀어 보다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영화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떠 올랐습니다. 영화 자체가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베르메르의 동명 미술 작품이 가지고 있던 새로운 모습을 알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요하네스 베르메르라고 널리 알려진 네덜란드 델프트 출신의 화가 얀 페르메이르의 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당시의 보편적인 시대 규범을 뛰어넘는 즉, 경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페르메이르의 작품 숫자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사회적인 상황을 보면,  이 작품이 그려진 17세기 중반의 네덜란드는 막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어 내고, 무역을 통한 경제적인 성장이 정점으로 향하는 황금시대의 시작이었습니다. 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던 종교 역시 구세력을 상징하는 스페인의 가톨릭과 반대로 유럽 전역에 새로운 사회 변혁의 동력이 되고 있던 청교도의 영향이 커지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이런 변혁기에 등장한 신흥 부자들은 자신들의 성공한 모습이 담긴 일종의 자화상을 갖고 싶어 했으며, 많은 작품들이 그런 맥락에서 제작됩니다. 다시 말하면 부자들의 의뢰에 따라 작가가 돈을 받고 작업을 하는 시스템이  미술계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은 그런 당시의 미술계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작가의 상상력이겠지만,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근거하여 논리적인 유추를 해 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품의 제작 이유를 이렇게 보여 줍니다.


 

 당시 집에서 일하고 있던 하녀를 사랑하게 돤 페르메이르, 그렇다고 아내와 가족을 버리고 멀리 도망가는 고갱같은 열정과 광기에 찬 작가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이 하녀를 모델로 작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그녀를 내가 원하는 시각으로,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초상화를 그리는 순간이 이 화가의 삶에 가장 큰 기쁨을 주고 있었던 것이죠. 당연히 환희에 수반되는 고통들도 영화에 등장하게 되고요.


어째건 이 작품에는 바로 이런 덕후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의 미술사 연구에 따르면 이 작품이 실제 모델을 그린 것 portrait 초상화가 아닌, 상상으로 그린 작품  tronie의 하나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고개를 살짝 돌려서 나를 바라보는 아쉬움 남은 애잔한 얼굴 표정, 가녀리고 청순함을 보여주고 있는 잘 계산된 얼굴의 각도,  살짝 벌어진 크고 관능적인 입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욕망의 순간,  에로티시즘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도 나옵니다. 그림 속 소녀가 머리에 쓰고 있는 파란색의 터번. 이 곳에 사용할 물감을 만들기 위해 페르메이르는 다양한 수입 재료를 구입해서 부수고 가루를 만들고 섞는 실험을 끝없이 합니다. 돈을 받고 그려 주던 작품에서는 도저히 시도할 수 없었던 색에 대한 무한한 집착.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갖고 싶었던 그의 덕후 기질이 현대에 까지 신비함을 보여주는 신비한 푸르름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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