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모험>을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본 이후로, 넷플릭스에 올라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하나씩 다시 섭렵해 나가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모노노케 히메> 역시 보는 이마다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을 내놓게 되는 독특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감독의 장점이 자신이 시작한 이야기의 결론을 맺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야기들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질문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질문이 생긴다는 말은, 질문과 관련 있는 주제에 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은데요, 어느 하나가 이해되고 나면, 그것과 관련된 또 다른 의문이 들게 되고, 이렇게 계속 고리가 연결되듯 생각이 열려 나가는 과정 속에서는 계속 새로운 의문들이 등장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항상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면, 저에게 있어서 감독이 남긴 가장 큰 질문은 남자 주인공 '아시타카'가 모로 ( 극 중에서 신이라고 여겨지는 들개)에게 던지는 대사입니다.
"모로, 숲과 사람이 안 싸울 순 없어?"
숲에게는 숲이 추구하는 진실이 있고, 인간들에게는 인간이 추구하는 진실이 있는 법일 텐데, 이 둘이 서로 화합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감독은 그렇다고 무조건 숲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들대로 각자의 입장차에 따라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들끼리도 대립이 생기고 있고, 동물들은 동물들대로 각자의 입장차에 따라 노선이 다르죠.
결국 안 싸우고 서로 화합하려 한다면, 이런 서로 간의 다양한 입장차에 대해서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또한 또 다른 의문들을 낳는 생각일 뿐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보면 이러한 재미있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황금빛 몽상들이다. 오,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모르기 때문에 악한 행동을 하는 거라고 누가 먼저 설명을 했으며 누가 먼저 선언을 했는지 말해 주시라.
~ 중략 ~
그는 깨인 자가 되어 진정한 자신의 이익을 이해하고 선량함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이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고유한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선한 행동을 한다.
는 것이 알려진 바가 아니던가?"
이 같은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모노노케 히메>의 결론도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인간들의 행동이 그와 같았던 것일까요?
자 이제부터 도스토옙스키의 생각이 등장합니다.
"오, 애송이여! 순수하고 무고한 아이여!
첫째로 인간이 살아온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던 적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알면서도, 즉 자신의 실제 이익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것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남겨두고, 위험천만하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다른 길, 어느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것, 마치 정해진 길은 원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길을 찾듯 어둡고 불합리한 다른 길을 완고하고 고집스럽게 파고드는 경우를 증명하는 이러한 고집과 의지가 모든 이익보다 그들에게 정말 더 유쾌한 것일까………. 이익이라! 이익이 뭔가? 인간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 당신은 아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 만일 인간의 이익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나쁜 것을 바라는 다른 경우에 단순히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면 어떨까? 만일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면 모든 법칙은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당신은 그러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웃고 있다. 여러분, 웃으시라. 다만 인류의 이득이 진정으로 정확하게 계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대답해 보시라"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우리들을 쉬운 말로 타이르려 했다면, 도스토옙스키는 반전과 질문 "인류의 이득이 진정을 정확하게 계산되어질 수 있는지"를 통해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깨우쳐 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모노노케 히메>는 이렇듯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는데,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모노노케 히메>에서 생겨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영화 <아바타>의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 전체의 서사 구조뿐 아니라, 숲을 그려내고 있는 이미지 역시 <모노노케 히메>의 장면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모노노케 히메>는 작가 이우환 선생의 조각 작품들도 떠오르게 합니다.
인간이 만든 철판과 자연에서 찾은 바위가 서로 한데 어우러지는 선생의 조각 작품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단계를 넘어서 이미 함께 하고 있는 모습들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좋든 싫든 현실로 맞닥뜨려야 하는 우리의 삶인 것이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이나, 인간이 만들어 낸 철판이나, 모든 것은 그 근원이 전부 자연에 있는 것이니, 우리가 만들어 낸 철판에 '가공성'이라는 차별적 요소가 존재하는 만큼이나, 자연에서 시작되었다는 '동질성'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우리 스스로 우리의 본질적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는 선생의 주장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모노노케 히메>를 보신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질문들을 떠 올리고 계신지 궁금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