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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13. 2020

지휘자들이 뽑은 최고의 교향곡은?

2016년 BBC  Music Magazine은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151명의 지휘자에게 각자가 최고로 여기고 있는 교향곡 3곡씩을 뽑아달라고 요청합니다.  151명의 투표가 취합되고 지휘자들이 뽑은 교향곡 Top 20를 발표했는데, 가장 많은 지휘자들이 선택한 교향곡은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이었습니다.


당시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였던 사이먼 래틀 역시 베토벤 3번 교향곡을 최고로 뽑았는데요 (나머지 두 곡은  말러의 <대지의 노래>와 브르크너 <교향곡 8번>이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래틀은 그해 여름 노르웨이의 뢰로스에서 열린 <2016 여름 음악제>의 레퍼토리로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연주합니다.


이 실황은 베를린 필의 온라인 콘서트홀인 digitalconcerthall.com에서 보실 수 있는데, 아름다운 바로크식 교회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베토벤 교향곡의 연주 템포가 무척 빨라지고 있습니다. 원전연주 방식의 영향일까요?

물론 이 여름 음악제가 열린 장소가 교회이다 보니, 악기들의 소리를 짧고 빠르게 가져가지 않으면, 소리의 중첩으로 전체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잔향으로 인해 뭉개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건 평균적으로 상당히 빨라지고 있습니다.


2001년 마지막 해에 접어든 아바도가 로마에 가서 연주한 베토벤 사이클도 전체적으로 그가 베를린 필과 그리고 빈필과 녹음한 베토벤 사이클에 비해 빠른 템포를 선택해 훨씬 더 생기 있고 박진감 넘치는 해석을 보여주고 있는데, 파이낸셜 타임스에서는 이 실황연주를 '혁명'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궁금해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IDAGIO에서 왠지 가장 보수적 이리라 생각되는 리카르도 샤이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들어보았는데, 역시 빠른 템포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궁금해서 기억이 가물거리는 예전의 명장들 연주도 한번 들어 보았는데, 한스 크나퍼츠부쉬, 브루노 발터 등은 느리고 차분한 연주를 하고 있으며, 토스카니니는 역시 상당히 빠른 템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푸르트벵글러는 느리고 빠름이 각 부분마다 자유롭게 변하는데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빠르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짜가 4월 11일인데, 며칠 전인 4월 7일(1805년) 은 이 위대한 교향곡이  인류에게 처음으로 울려퍼진 날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말 내내 베토벤의 이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향곡의 연주와 템포에 대한 관계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저 같은 일반 음악 애호가에게 빠른 템포의 음악이 주는 감정은 "경쾌함, 흥분됨, 긴장감, 그리고 경박함, 허둥지둥, 산만함" 등인 것 같습니다.

그 반대로 느린 템포는 "진중함, 상세함, 거대함 또는 반대로 지루함, 시대에 뒤쳐진 듯함, 잘못된 빠른 만큼이나 산만함"이란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너무 느리거나 빠른 극단적인 템포는 곡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테니, 많은 음반평들을 읽다 보면 

적당한 속도가 좋다는 표현이 있는데, 도대체 음악의 템포에 있어서 적당함이란 뭘까요?

어떤 요리책들을 사서 읽다 보면, 요리방법을 설명하는데 

"소금을 적당량 뿌린다, 적당히 끓여준다, 적당히 익힌다"라는 부분들이 등장합니다.

돈을 주고 산 책인데 버릴 수도 없고 참 답답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셰프의 또는 유명 요리 연구가의 요리책을 사는 이유는 그녀 또는 그가 추구하는 맛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맘에 드는 결과가 나오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맘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이 지향하는 요리의 방향을 느끼고 배우게 됩니다.


음반평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추어들은 혼자 음악을 듣고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좀 더 프로페셔널한 비평가가 언급하는 언어들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풀어 보고 싶은 것인데요, 


뭐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음악잡지를 (예를 들어 Gramophone) 구독하거나 와인잡지를 (예를 들어  Decanter) 구독했던 이유가 뭔가 같은 가격에 좀 더 좋은 품질이라고 믿기는 음반을 수집하거나 와인을 마시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최선의 선택을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일들이 우리를 얼마나 감정적으로 지치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런 지친 감정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듣고 와인을 마시고 여행을 가는 것일 텐데, 왜 그렇게 가성비를 따져야 하고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고민하는 것일까요?


약간 방향이 틀어지긴 했지만, 다시 베토벤으로 돌아가 보면, 

리카르도 샤이의 빠름은 단순히 템포만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이내믹의 변화를 템포와 연결시켜서 훨씬 더 새로운 베토벤 스타일을 만들어 내려는 과정으로 느껴집니다. 첫 세 악장 동안 약간씩 주저하는 또는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4악장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존의 거장들과는 완전히 다른 프레이즈 처리와 즉흥적인 느낌이 들지만 당돌함이 점점 당당함으로 바뀌어 가는 템포까지. 이 연주에서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 이후 처음으로 맘에 드는 샤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리책대로 했더니, 간도 제 입과 좀 다르고 맛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요리에서 제가 생각 못한 새로운 면모를 찾은 느낌이랄까요)


래틀의 2016년  베토벤은 그의 모차르트 오페라를 연상케 합니다. 리듬과 템포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서 곡을 만들어 가는 방법은 왠지 래틀과는 잘 맞지 않는 듯 느껴집니다. 래틀은 역시 말러, 드뷔시 같은 다양한 색채감을 느끼게 해주는 곡들이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는 여태껏 최애 하던 아바도의 레코딩보다 훨씬 더 드뷔시의 느낌을 살려주고 있습니다. 바그너와는 다른 방향으로 음악의 조성을 비틀어 대는 드뷔시는 그 결과물이 더 거대한 음악적 구조물을 만들어 내려는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더 부드럽고 촉촉해지는 터치감을 느끼게 하려는 감성의 산물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집에 머물러 있으려다 보니, 주말 내내 음악하고 씨름을 했는데,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의 멋진 연주가 제 머릿속 공상이 끝나지 않게 끊임없이 유혹의 사운드를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https://www.digitalconcerthall.com/en/concert/2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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