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보고
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영화팬이시군요.
그런데 혹시
이 <Mona Lisa>나
이 <최후의 만찬>이 떠오르셨다면,
아마도 엄청난 미술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에 관해서입니다.
이 위대한 르네상스인을 부르는 호칭이 의외로 다양합니다.
미술사나 미술 관련 글들에서는 '레오나르도' 혹은 'The 레오나르도'
미술 관련 글이지만 좀 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가끔 (그를 지칭하는 전체 글을 놓고 보면 가끔이지만 미국이나 한국에서 일반적인 경우에는 상당히 많이) '다빈치'라고 불립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거나 또는 영화로 보셨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끈 작가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우리들 가운데 이 책의 또는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서 '다빈치'가 불편했던 경우는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술계에 오래 몸담고 계셨거나, 또는 미술사, 문화사 등을 공부하신 분이라면, 이 제목이 많이 불편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왜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는 한국에서도 이름만으로 불리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레오나르도로 불리기보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는 다빈치로 더 많이 불리는 것일까요?
다빈치 (Da Vinci)는 '빈치(Vinci) 출신의' 란 의미를 가진 즉 빈치에서 온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지, 레오나르도 집안이 가지고 있는 성씨는 아닌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댄 브라운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제목이 빈치에서 온 사람의 코드인 것인가요?
Vinci는 현재도 존재하는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동네입니다. 피렌체에서 몇십 km 정도 떨어진 village입니다.
그런 이태리 작은 동네의 명칭이 누군가의 (그것도 인류 역사에 단 한 명뿐) 성씨로 탈바꿈하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요?
일단 유럽의 역사에 있어서 surname (성씨)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면
유럽에서 이런 성씨의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동양) 보다 훨씬 늦습니다. 그래서 11세기 정도에서나 많은 surname 등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다빈치처럼 가문의 출신지, 그리고 가문의 직업 등, 가문이 가지고 있는 identity를 나타내는 다양한 요소를 이름에 붙여 서로를 구분하기 시작하다가 그런 명칭들이 변형을 거쳐 surname(Family name)으로 정착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중세시대를 거쳐 가문의 개념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surname은 이윽고 개별 가문의 legacy를 포함하기 시작하게 되죠.
즉,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씨(姓氏)는 가문과 출신지역을 의미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밝혀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중국의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가장 오래된 한자사전에서도 姓을 人之所生也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씨를 통해 누구(어느 집안)의 자식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의 계급 및 출신을 확인하는 것이 사회적인 관점에서 점차 중요해지면서 성씨 시스템이 발달한 것이죠.
성과 이름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 한 가지를 말씀드리면, 인도의 카스트 제도 아시죠?
이 인도에서 4단계로 나누어져 있는 카스트 제도라는 계급의 사다리 제일 아래에 속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名)을 물려받아 성(姓)으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James Bond인데, 아들은 Bond란 성을 이어받는 게 아니라, James를 이어받게 되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이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어디서 왔고, 어떤 역사가 포함되어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쥐를 잡는 인도 사람이 있습니다. 카스트 제도하에 선 이 직업 역시 세습이 됩니다. 즉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대대손손 쥐를 잡는다는 것이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속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단지 그가 누구의 자식인지 정도만 구분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다빈치라는 것에 관해서 생각해 보면,
루브르 박물관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대부분 '모나리자'룰 선택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매일 2만 장 이상의 사진이 찍힌다는 이 작품을 그린 작가가 이름도 아닌 태어난 도시만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이 이상한 상황, 더군다나 위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사회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성씨가 이와 같이 잘못 쓰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추측은 해보는데,
1. 주변에 쌓인 게 관광 유적이다 보니, 이런 뛰어난 작가의 생가나 또는 무덤을 가지고 추가적으로 관광 상품 개발을 할 관심도 여력도 없는 상황에서 빈치라는 이름이 지명으로 알려지지 못하면서,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유럽식의 성씨와 이름에 익숙지 않은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 등에서 다빈치가 레오나르도의 성인 줄 오해해서 '다빈치'만 부르게 된 것 아닌가 라는 추측과 (그러니까 오히려 더 높여서 부르려고 하다가)
2.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는 'Raffaello Sanzio da Urbino'이거나,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이다 보니, 라파엘로를 우르비노라고 부르거나 미켈란젤로를 시모니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도 흔한 성이어서 오히려 이름만 부르는 것이 그들을 특정하기 쉬운 반면에 'Leonardo da Vinci'는 다빈치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더 바로 그 위대한 레오나르도를 특정하기 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 정도입니다.
한 미국의 미술사학자는
"레오나르도는 그 자체가 유일하기 때문에 'The' 조차 붙일 필요가 없다.
만일 다른 레오나르도들을 부르려면 그 경우에는 식별자를 이름에 붙여 주어야 한다.
레오나르도 Dicaprio 같은 경우에 말이다"라는 과격한 글을 미술잡지에 기고하고 있는데,
세상에 모든 일들이 그 구성원들의 사고와 행동 패턴에서 유발되는 흐름에 맞춰 간다고 생각해보면, 저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레오나르도"이지 라는 생각은 멀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까 두려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