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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26. 2020

38년 만의 상봉 (베를린 필과 첼리비다케)

루마니아 태생으로 독일에서 대부분의 음악 커리어를 이어 왔던 첼리비다케,


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 2차 대전 직후 운 좋겠도 베를린 필의 지휘자가 되어 활동하게 되지만, 곧 악단과의 불화와 카라얀의 정치(?)등으로 인해 베를린 필 지휘자 자리를 잃고 다시는 베를린 필 지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떠나갔습니다. 


이후 많은 곳을 거쳐 70년대 말, 전임인 루돌프 켐페 이후 위기를 겪고 있던 뮌헨 필의 상임지휘자가 돼서, 

같은 도시의 오페라단과 비교해서 많이 초라해지던 관현악단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리며, 명장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92년 당시 독일 대통령 (수상이 아닙니다)의 요청으로 베를린 필과 38년 만의 재회를 하게 

되는데요, 이미 공연 실황이 DVD로 발매되어서 보신 분들도 많으실 이 기념비적인 연주를 digitalconcerthall에서 오늘에야 보게 되었습니다. 


38년 만에 재회한 이 기념비적인 연주회에서 그는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인 브르크너의 교향곡을 고르고 있습니다.

 <교향곡 4번 로맨틱>을 제외하면 아마 브르크너 곡 중 가장 인기가 높지 않을까 생각되는 <교향곡 7번>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일반적인 연주에서는 연주시간이 약 70분 조금 넘는 정도의 이 교향곡을 첼리비다케는 무려 90분에 가까운

아주 느린 템포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연주가 시작되면 브르크너의 특징인 현의 트레몰로가 등장하고 곧바로 첼로가 1 주제를 끌고 나옵니다.

브르크너는 현의 트레몰로 위로 관을 투입시켜 묘한 대조를 많이 사용하는데, 7번 교향곡에서는 오히려 현위로 첼로가 등장하며, 대조가 아닌 현의 하모니로 음악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첼리비다케는 템포가 즉흥적인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무척이나 느린 쪽으로 유명합니다.

느린 템포로 지휘를 하는 많은 지휘자들이 리코딩을 할 때는 느리다가도 실황 연주가 되면 아무래도 현장의 흥분 때문에  빨라지기도 하는데, 첼리비다케는 전혀 상관없이 느린 템포를 고수합니다.


1 악장의 1 주제와 2 주제 부분을 느린 템포로 거대하게 끌고 나가며, 단단하게 전체 교향곡의 기초를 다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뭔가 위대한 건축물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었는데 하지만 3 주제 부분의 리듬이 활기를 잃고 늘어져 버리면서, 건축물이 가져야 할 미학적 요소가 조금씩 미끄러져 내리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첼리비다케는 느린 템포를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음악에 내포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느린 템포로 그 디테일을 자세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실 그의 전성기 시절에는 아주 개성 강한 독특한 연주가 되었을 텐데, 이게 교향곡 전체의 템포에 대한

밸런스가 조금만 무너져 버리면, 디테일을 드러내는 장점보다, 전체적인 음악 구조가 흐려져 버리는 단점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으며, 이번 연주에서 1악장의 3번째 주제 부분이 바로 그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1악장은 현의 트레몰로를 바탕으로 첼로들이 유려한 음을 사용하며 담대하게 화성을 이루어 나가서 전체 교향곡의 기초를 만들고, 이어서 좀 더 감정적 상승을 유도하는 2 주제를 거쳐 3 주제가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앞선 느낌들을 연결해 나가며 모든 것이 총합적으로 종지부를 향해 연결되어 나가야 하는데, 약간 빗나간 템포로 인해 전체적인 발란스가 무너지면서 이 연결 부분에서 어색함이 생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음악적 앙상블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휘자의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만들어 내는 베를린 필의 뛰어난 성능에는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2악장의 앞부분은 첼리비다케 지휘 스타일과 아주 궁합이 잘 맞는 스타일로, 목가적인 아름다운 음악을

느린 템포로 모든 악기의 디테일을 다 이끌어 내며, 마치 종교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내면의 감정이 서서히 끌어올려지는데요,

2악장만을 보면 슬픔을 지어내는 이 아름다운 음악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요소를 잘 드러내 보인다고 느껴집니다.


영상 편집에 있어서도, 교향곡에 처음 시도된 것으로 알려진 바그너 튜바가 나오는 부분에서 악기를 천천히 흩으며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재미있는데, 실제 공연장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객석에서 보게 되면 이런 부분을 상세히 보기 힘든데, 실황 동영상이 가지는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41분경 흘러나오는 2악장의 두 번째 주제의 소리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색조는, 브르크너 전문가들로부터 브르크너임을 확인시키는 그 만의 독특한 Musical Tune이라고   일컬어지는 부분인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빠른 템포보다는 첼리비다케 같은 느린 템포가 확연히 장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죠.


단, 교향곡의 전체 완성도는 몇몇 부분의 특출 난 요소만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1악장 시작부터, 4악장 끝까지의 총체적인 결합이 균형미를 통해 완성되어야 할 텐데, 이날의 전체적인 연주는 첼리비다케의 뛰어난 장점과 그가 가진 아쉬운 단점이 동시에 드러나는 연주였다고 나 할까요


하지만 연주를 한 당시 그의 나이를 생각해 본다면,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시키며 부분적인 디테일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기대하기는 조금 힘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2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바그너의 음악 스타일처럼 금관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부분에서 지휘자의  느린 템포에 호흡이 힘들어진 금관 주자들의 얼굴 표정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데, 계속된 느린 부분으로 전체적인 연주의 긴장감이 늘어지는 부분에서 카메라는 연주회장 내의 샹들리에와 내부 전경들을 보여주는 화면 구성으로 분위기를 다시 잡아 나가는 재미있는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59분 55초부터 2악장 마지막 순간까지 바그너 스타일의 장송곡이 느리게 마무리되는 장면에서는 다시 지휘자에 집중하며 음악의 하이라이트를 놓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의 연주를 현장에서 보게 되더라도 정말 좋아하는 곡이 아니면 관객들도 많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3악장의 스케르초는 박력 있게 밀어붙이는 거대한 총주가 만들어 내는 리듬감이 일종의 브르크너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첼리비다케는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자기 스타일을 밀고 나가고 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주제가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반복되는 부분에서는 관이 한 옥타브를 올랐다가 내려오는 연주를 하는 부분에서 마치 춤곡 같은 화사함과 세련된 리듬감을 보여주며 다시 생동감 넘치는 연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느린 트리오 부분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앞(Sehr schnell)과 뒤(Etwas Langsamer)의 템포 대비가 악보에서 요구되는 것처럼 두드러지지 않아서 밀려 올라가듯 흥분한 느낌에서 느리게 착 가라앉는 감정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조적인 프레이즈를 연결하는 연결 부분들이 이런 느낌으로 인해 산만하게 흩어지고 있으면서 

음악적 서사구조의 짜임새가 많이 떨어져 보입니다.


4악장 Bewegt doch nicht zu schnell의 도입부에서는 갑자기 감정적인 도발을 하는 것 같은 템포로 유도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1,2,3악장에서 보여주던 전체적인 템포의 스탠스를 잃고 있는 느낌이 강해지는데,

이렇게 템포가 흔들리다 보니 4악장 마무리 역시 깔끔하게 끝내지 못한 듯한 느낌이라, 전체 연주에 대한 

제 개인적인 평가는 무척 아쉽다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전체적인 연주의 퀄리티보다는, 그동안 헤어졌던 노 거장과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다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공연이 이루어진 당시, 동서독 재통합 이후 독일 사회에서 생겨나는 통합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에 대한 커다란 정치적 메타포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차피 지휘자가 활약하고 있었던 지역이 구동독도 아니고 뮌헨이라는 곳에서 지휘를 했던 터라, 재결합을 

하려고 했다면, 카라얀이 죽은 1989년의 이듬해 마침 1990년 동서독 통일과 맞춰서 이벤트가 이루어졌으면, 조금이라도 더 젊은 지휘자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이 공연 이후 발매된 DVD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많은 호평이 이어졌던 터라 더욱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되는 바람에 실망도(연주 자체에 대한)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브르크너 <교향곡 7번> 음반으로는 죽기 직전 카라얀의 마지막 녹음, 그리고 또 다른 독일 노 거장인 귄터 반트의 베를린 필 연주 등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칼뵘이 빈필과 녹음한 연주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칼뵘은 이상하게 무척이나 고집스럽다는 선입견을 갖게 하는 지휘자인데요, 사실 의외로 상당히 유연하면서 균형감각이 뛰어난 지휘자라고 생각됩니다.

그의 바그너 바이로이트 실황 리코딩 등은 그가 일반적인 스튜디오 리코딩 음반에서 보여주었던 템포와는

아주 다른 상당히 빠른 속도로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스튜디오 녹음과는 다른 실황 연주 상황에서 연주자들이 대면하게 되는 여러 어려움 등을 고려하고 있는 그의 사려 깊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 무대에서 움직이며 불러야 하는 오페라 실황에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정도의 템포로 음악을 끌고 갈 경우 특히나 바그너의 음악에 있어서 작곡자의 긴 프레이즈들을 한 호흡으로 불러내기가 무척이나 힘들어지는데, 이런 현실적 고려를 해주는 지휘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첼리비 타케와 연주를 하고 있는 베를린 금관 주자들의 얼굴 표정이 그런 부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게 호흡이 가빠지면, 총주로 지르고 있을 때는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잔잔하게 마무리되는 여린 부분에서 금관들의 피치가 흐트러지는 경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뮌헨에서 직접 뮌헨 필과 첼리비다케의 연주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 한국에서 전설로 여겨지던 것과는 많이 다른 유럽 현장의 현실이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뮌헨에서의 연주는 이미 관객과 그리고 오케스트라와의 사이에 매너리즘에 빠진 느낌이라, 이번 베를린 필 연주와 같은 전체적인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실망스러운 연주였고, 공연장의 좌석도 많이 비어 있는 것을 보며, 조금은 애잔한 감정이 생겼던 기억이 오늘 연주를 보며 다시 떠올랐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술 공연과 전시를 직접 접하기가 많이 힘들어졌지만 여전히 언택트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오히려 예술과 좀 더 친해지는 계기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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