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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29. 2020

<All is true>와 <세 개 오렌지들의 사랑>

4월 23일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가 태어난 날입니다. 우연하게 이 이야기를 접하고서 '음! 4월 23일의 사주는 천재들이 태어날 운명인가?'라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일 년이라고 해봐야 고작 365일밖에 없으니 (얼핏 생각해봐도 세계 역사에 천재라고 불릴만한 위인들이  365명 보다는 훨씬 많을 것 같다는 결론 하에) 천재가 태어날 기회는 매일매일 생기고 있겠구나 라고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결국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하여튼 한날 태어난 운명 덕분인지 두 명의 천재가 합작으로 만들어 낸 명작이 있습니다.

프로코피에프의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합작이 아니라,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영감을 얻은 셈일 텐데요, 거기다가 더해서 첫 작곡은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을 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작곡 당시의 소련 상황이 예술가들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던 탓에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당국의 비난 등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체코에서 초연이 열리게 되었고, 여기서 큰 성공을 거둔 후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키로프 극장에서 소련 초연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초연 역시 작곡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악보에 많은 수정이 가해 지는 등 작곡자에게는 그리 편치 않았던 작품인 듯합니다. 


현재는 작곡자가 발레 전곡에서 발췌한 관현악곡 버전으로 연주가 많이 되고,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곡도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곡은 아마도 발레 전곡에서 13번째에 해당하는 <기사들의 춤>일 텐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Z_hOR50u7ek  


https://www.youtube.com/watch?v=asWU3OzOrK8


두 명연주가 발레의 반주를 기반으로 하는 관현악곡과 연주회용으로 편곡된 피아노곡의 성격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르기에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훨씬 더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연주가 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키신의 연주는 웅장하고 느린 템포를 취하고 있는데, 피아노와 관현악의 차이점에 더해서 이런 곡이 가지고 있는 성격차이를 느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면, 키신의 피아노 연주로는 춤을 추기에 조금 버거울 듯싶은데, 이곡이 무대를 위한 곡이 아닌 연주회를 위한 피아노 곡이기에 키신의 무겁고 거대하게 흘러가는 템포 선택은 나름의 이유가 충분해 보입니다. 

오히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빠르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발레 공연의 반주로 연주된다면, 이 정도의 템포가 정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커리어의 시작을 오페라하우스에서 한 덕에 게르기에프는 실제 무대에서 공연이 되고 있는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느낌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로코피에프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은 오페라 <amour des trois oranges ( 3개 오렌지들의 사랑)>입니다.


마법에 빠진 왕자의 모험에 왕과 왕위를 노리는 적들 그리고 각각 그들을 돕는 마법사들, 마법에 걸린 오렌지들 그리고 이태리 전통 연극 형태인 Commedia dell'arte가 결합된 탓에 등장하는 어릿광대들 까지, 다양한 동화적 요소가 빠른 템포의 직선적인 관현악 선율과 어울려 편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eaa-8hCzP4


시간이 좀 흐르긴 했지만, 처음 초연 당시 많은 찬사와 호응을 불러왔던 Kent Nagano 지휘의 리옹 오페라 프로덕션입니다. 영상으로 접하기 전에 레코딩을 먼저 접했었는데, 음악이 주는 흥미로움 때문에 실황을 보고 싶은 욕구가 엄청났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영국 글라인드본 축제극장 프로덕션은 <Where the wild things are>으로 유명한 아동 동화 작가인 Maurice Sendak가 무대디자인을 맡았는데, 그의 동화책에서 느껴지는 짓궂은 장난기를 오페라 무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zMnZl6xxns  

(안타깝게도 퀄리티는 나쁘지만 모리스 센닥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의 화풍이 이 오페라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습은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싶습니다)




프로코피에프와 같은 날 태어나서 그의 발레 작품 탄생에 기여를 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일생과 관련된 영화  <All is true>가 최근에 넷플릭스에 올라왔습니다. RSC(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헨리 5세>로 스타덤에 오른 후, 동일한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서 영화계에 등장했던 캐네스 브라너가 다시 셰익스피어로 돌아온 작품입니다.



헨리 5세




<All is true>는 캐네스 브라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꼭 볼만한 영화인데, 당대 최고인 세명의 뛰어난 연기자가 나와서 연기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삶의 단편들을 연결해서 영화적인 fiction을 구성하고 있는데, 부인과 그의 자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헨리 8세> 이후로 더 이상 글을 남기지 않고 있는 부분과 그의 소넷에서 시작된 동성애 관련 에피소드 등을 잘 버무려 잔잔한 드라마로 완성시키는 과정도 아주 흥미롭고,

특히 이안 맥컬런과 마주 앉아서 셰익스피어의 소넷을 낭독하는 장면에서는 하나의 시가 낭송하는 사람에 따라 저렇게 까지 다르게 느껴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그의 팬이 아니라면, 연기에 너무 자신이 넘치는 나머지 주인공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연극적인 대사처리 장면들을 롱테이크로 가져가는 연출 방법이 지루하게만 느껴질 텐데, 이번 기회에 한번 새로운 영화 감상 방법을 발견한다고 생각하시고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케네스 브라너의 명연기 장면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최근 출연작 중 영화 <덩케르크>에서 적기가 몰려오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기억 속에 떠오르는데,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난 제 지인 중 한 명이 이 장면을 보고 나서는, 케네스 브라너의 눈빛에서 적기가 하늘에서 날아오고 있는 거리감이 느껴진다라고 까지 말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연기 스타일이 영화 쪽에서 스타플레이어가 되기는 적합하지 않다 보니, 오히려 <형사 월랜더> 같은 드라마로 더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한데



형사물임에도, 범인을 추격하는 과정이나 수사에 관한 장면보다, 형사의 인간적인 고뇌와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등 다양한 감정을 얼굴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도 아주 진행 속도가 느리며, 이 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돼서 그의 연기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아주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지루하고 어찌 보면 연기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드라마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캐네스 브라너보다 훨씬 더 스타가 된 톰 히들스턴의 아주 풋풋했던 신인시절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이 드라마를 보는 색다른 즐거움일 듯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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