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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30. 2020

세 가지 색 - Yellow, Red, Blue

Various artists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행위는 정확히 말하면, 어떤 물질 또는 물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빛에 의해 반사된 효과를 보는 것입니다. 


대상물들의 특징은 모양과 색 그리고 표면의 질감 정도로 요약될 텐데,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아마도 색이지 않을까요? 가까운 거리에서 자세히 관찰할 경우라면 모양 역시 색만큼이나 대상을 구분하는 주요한 특징이겠지만 원거리에 있는 물체를 보게 되면, 모양은 색만큼 그 차별적 요소를 구분해 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색들의 기본이 되는 삼원색을 중심으로 관련된 예술 작품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영상이나 인쇄의 경우에는 빛의 3원색인 RGB (Red, Green, Blue)나 인쇄잉크의 기본 안료인 CMYK(Cyan, Magenta, Yellow, and Black)을 뜻하겠지만, 이글에서는 몬드리안이 선택한 3원색 Yellow, Red, Blue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갈까 합니다.




첫 번째로 Yellow입니다.


 아이슬란드 작가 Olafur Eliasson의 <Gravity stairs>입니다.


아마 이 사진을 보시면서 "아! 이거구나"하시던지 또는 "어! 이거 어디선가 본 듯한데" 하시는 분들 꽤 있으실 텐데요, 2014년 리움에 설치된 작품입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리움 홈페이지에 있는 설명을 보면

"자연을 미술관 안으로 들여온 설치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태양, 물, 이끼, 안개, 비, 무지개와 같은 자연의 현상 그 자체를 다룬다. 작가는 도시의 사람들이 날씨와 자연을 경험하는 방식이 다방면에서 도시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지만 제대로 지각하지는 못하는 자연과 매우 유사한 물리적 현상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작품으로 연출한다. 2003년 테이트 모던에 설치한 <날씨 프로젝트>로 명성을 얻었으며, 미술관 공간뿐 아니라 실제 삶의 공간으로까지 그 실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LED로 형상화된 태양계 행성들은 천장과 전면의 거울로 인해 완결된 구형으로 보이지만 사실 절반 혹은 4분의 1만 실재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거울과 거울에 반영된 관람자의 모습으로 관계의 미학을 형성했던 엘리아슨의 대표작 <날씨 프로젝트>를 환기시키며 관람자를 작품의 세계 속으로 몰입시킨다. 거대한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의 위치는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다른 행성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경험할 수 있다"


다 좋은데, 리움의 자신감이 좀 떨어져 보입니다. 자꾸 2003년을 언급하고 있네요. 물론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테이트 모던 2003년 설치 작품 <The Weather project>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기 시작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한데, 이 이면을 좀 더 들여다보면, 2003년 'Unilever'후원으로 이루어진 테이트 모던의 작품은 영국과 영국인들에게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Weather' 였기 때문입니다.


 Tate의 홈페이지에 작품의 기획의도를 설명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영국인들에게 날씨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에서 시작해서, 각 도시별로 날씨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테이트 모던에서 설치된 작품에는 안개처럼 습기가 피어오르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점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왜 우리는 즉 리움은 그들의 복도에 우주를 재현하고 싶었는지가 설명이 되었더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설치 작품들은 대부분 commission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니, 즉 주문자의 의도에 따라 미술가가 어떻게 미학적으로 그것을 구현해 나가는 가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일 텐데요  (그 유명한 시스틴 성당의 천지창조를 미켈란젤로가 '나는 천지창조를 꼭 저기에 그릴 거야'라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즉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작가가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 내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인데, 리움의 설명을 보면 반대로 작가가 하고 싶은 것이 마침 그 복도에 알맞은 아이디어라서 한 것 아니야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동대문 DDP가 우리가 요구한 것을  자하 하디드가 구현한 것인지, 자하 하디드가 하고 싶었던 것을 우리가 수용한 것인지 많이 헷갈리는데, 요즘 들어 동대문에 뜬금없이 놓여 있는 그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더 자하 하디드가 하고 싶었던 것을 우리가 엉겁결에 끌어안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건물 자체의 미학적인 의미를 떠나서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괴기한 형상이 되어 버리는 느낌은 저에게만 드는 것일까요?  )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보면, 태양계를 구현한 작품답게 'Yellow'색상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런던 테이트에 설치된 작품이 사진으로 보면 좀 더 오렌지 느낌이 강한데, 그렇다면 여명에 떠오르는 태양의 느낌이 더 부여된 것일까요?


사실 리움에 설치된 작품의 색은 자연 속의 태양계라는 느낌 보다, 뭔가 사원이나 조용한 기도원 같은 특수한 공간 속에 우주의 기운이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매일 우리 곁에 (사실은 우리가 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텐데) 존재하는 그렇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신비한 기운들, 뭔가 우리가 초월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동양적인 관점의 종교에서는 자연에 존재하는 신비한 힘에 대한 인식이나, 거대한 우주 안에 미약한 스스로의 존재감을 인지하는 것 등이 중요한 특이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리움의 작품은 오히려 그런 관점으로 개별 관람자들이 빛의 환영이 만들어 내는 가상의 천체 속에서, 실재와 실체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하는 계기 그리고/또는 나의 내면적 자아라는 것에 대한 이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는 진정한 나인지 아니면 지금 이 복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의 생각이 만들어 내는 환영에 불과한 것인지 같은)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Yellow의 두 번째 작품은 점박이 호박입니다. Yayoi Kusama의 <Yellow Pumpkin>이죠.



회화가 아닌 설치나 조각의 경우에는 작품 자체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에 더해, 그 작품이 놓여 있는 공간과 작품이 함께 만들어 내는 이미지 역시 상당히 중요한데, 이 사진은 그 두 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입니다.

야오이 쿠사마는 1994년 처음으로 공공장소에 그녀의 호박 설치를 시작하며, 사진에 등장하는 나오시마 섬의 작품이 그 첫 번째 스타트입니다.



낮과 밤의 이미지가 무척이나 다른데, 밤이 되면서 변신하는 호박의 이미지에서 누군가는 신데렐라를 태우러 온 멋진 마차의 이미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뚜껑이 열리며 핼러윈의 괴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공포의 이미지가 보일 것만 같은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2015년 한 인터뷰에서 호박에 관한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답을 하고 있는데요

""I love pumpkins, because of their humorous form, warm feeling, and a human-like quality and form. My desire to create works of pumpkins still continues. I have enthusiasm as if I were still a child.” 그렇다면 아마도 작가의 눈에는 신데렐라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나 봅니다.

 



올드 스쿨 스타일로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습니다.   


<해바라기>를 아주 좋아하는 지인 덕분에 런던의 National Gallery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박물관을 다 찾아서 보고 왔던 기억이 노란색의 밝고 따뜻한 느낌으로 떠오릅니다.


 

National Gallery


Van Gogh Museum




아쉽게도 Yellow가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클래식 음악은 없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살포드 대학에서 행해진 <A Colour and Sound Association>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며 각 음악마다 연상되는 색상을 고르는 실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순간 Yellow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화사하고 따뜻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색상이어서 일까요?


꼭 클래식 음악이 아니더라도 Yellow가 제목에 들어간 유명한 노래들이 있죠.


콜드 플레이가 부른 <Yellow>와 비틀스가 부른 <Yellow Submarine>은 각기 사랑의 감정과 환상과 동화의 느낌을 잘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P72Ib2e9I 


https://www.youtube.com/watch?v=m2uTFF_3MaA





Blue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브 클랭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진한 청색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알려진 그는 심지어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색에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IKB)>라는 이름을 붙이고 1960년 5월 자신이 만들어 낸 고유한 색으로 프랑스 특허청에 등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진한 매트 느낌의 청색과 사랑에 빠진 계기는 프랑스 니스의 파란 하늘빛이라고 하는데, 니스의 바닷가에서 바라본 하늘과 바다의 색이 너무도 진한 하늘빛이기에 둘 사이의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그래서 무한히 계속되는 파란색의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브 클랭은 독특한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전라의 여성 모델들이 이브 클랭의 블루를 몸에 묻혀서 캔버스 위에 이미지를 남긴 작품이 있습니다.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이런 퍼포먼스는 하지만 이후 패션 등 다양한 방면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Celine 2017 S/S 컬렉션 )


이브 클랭은 사실 그의 작업 스타일 등이 불러일으킨 센세이션과 달리 동양 사상 등에 심취했었고 그런 사상적 배경을 이미지로 나타내고자 했다고 알려지는데, 이런 의미에서 블루는 그에게는 가장 순수하고 무한하며 ‘사물의 무()’에 근접한 색채였다고 하죠. 



또 다른 Blue를 대표하는 작가는 Larry Bell입니다.


<Bay Area Blues>


박스 형태로 된 유리 재질의 오브제와 빛을 사용해서 공간과 빛이 만들어 내는 투영과 잔상 그리고 그로 인한 환영 등을 작품의 주된 표현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18년 작품으로 블루와 foggy white 처리된 유리가 겹쳐져서 만들어진 글라스 박스를 안과 밖에 설치하여, 박스와 박스 사이 그리고 각 박스 안의 색들이 서로 겹치고 퍼지고 하면서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그 색을 바꿔가는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작가가 작업을 하던 미국 서부 해안에서 파도가 높이 이는 날, 바닷속에 들어간 서퍼의 눈에 바다의 위와 바다의 아래가 파도를 따라 물 위로 그리고 물아래로 잠기면서 겹쳐지는 환영의 느낌이 표현된 것 같이 보입니다. 


숙련된 서퍼에게는 물과 하늘 사이의 경계를 자신이 주도적으로 점유해 나간다는 자신감이 발견되는 지점일 테고, 초보 서퍼에게는 물과 하늘이 만드는 혼돈 속에서 자칫 삶과 죽음의 경계가 보이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Blue는 Blues라는 불리는 재즈 장르와 강하게 연결되며, 이런 미국 흑인의 대표 음악인 재즈를 클래식 음악홀로 불러 올린 조지 거쉰의 <Rhapsody in blue>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jVh5cZ_ZvM


이 곡은 역시 재즈의 잠재력을 알아채고 자신의 작품에도 이용했던 번스타인의 지휘가 가장 일품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Red에 관한 작품입니다.


Red는 정열과 사랑 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연상은 불이 아닐까요?

세계 곳곳에서 분쟁으로 인해 타오르는 불길을 포착한 Mona Hatourm의 <Hot Spot> 이런 측면에서 가장 인상적입니다.



Mona Hatourm은 레바논에서 태어난 팔레스티나인 입니다. 현재는 이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의 이슈로 상대적으로 조용하지만 사실 20세기 후반의 세계 역사에 가장 심각한 분쟁지역 중 하나였던 곳이죠.

이런 지정학적 특징을 숙명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작가이기에, 분쟁과 갈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작품에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는 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다루는 소재 (이미지 및 재료)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주 흔한 이미지와 소재들을 가지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저에게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이 느껴집니다.


위의 <Hot Spot>은 거대한 지구본에 Red와 Orange의 네온사인이 켜져 있습니다.

관람자 대부분의 머릿속으로 종교적, 인종적, 경제적, 정치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의 현재 모습이 직접적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점차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의 환경 이슈 역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부른 이유는, 많은 현대 미술 작품은 보는 순간 쉽게 그 의미들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전 학습이 필요하고, 작가나 평론가들의 설명들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상당히 어려워 보이고, 그리고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미지들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그에 반해 등장한 미니멀리즘은 반대로 너무 단순해서 직관적인 이해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로 뽑히는 Donald Judd처럼 그냥 보고 있으면 '예쁘다' 이런 느낌이 드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뭔가 '예쁘다' 또는 '마음에 든다' 같은 쉬운 표현을 쓰기에 버거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Mona Hatourm의 위 작품은 미니멀리스트 작품들처럼 쉽고 단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 막상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처음에 어떻게 저런 소재와 이미지를 가지고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달걀의 껍질을 깨서 똑바로 세운 콜럼버스와 같이 생각의 전환을 통해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Red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Anish Kapoor의 <Sky Mirror, Red>가 떠오릅니다.



아니쉬 카푸어는 이브 클랭이 'IBK'를 소유하고 있듯이 완전한 'Black'의 독점적 사용권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리움 미술관 전시를 통해 아주 친근해진 아니쉬 카푸어는 볼 때마다 어디서 저런 상상력이 나올까 하는 감탄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작가이죠.


마치 외계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물체 같은 형태와 재질, 그리고 거대한 크기. 특히나 그의 공공 조각 작품들은 작품이 놓여야 하는 공간과의 조화나 균형을 고려한 느낌이 전혀 없고, 그 거대한 면적을 캔버스 삼아 아주 독특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펼쳐놓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요, 작품을 직접 보신 분들은 다 느끼셨겠지만, 그의 작품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죠. 작품에 점차 다가갈 때마다 작품이 우리의 시선을 왜곡하고 비틀어버리는 느낌에서 완전히 압도당하게 되는데,


그렇지만 이상하게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나 거리가 아닌 아주 원거리 또는 높은 위치에서 전체를 잡아낸 사진들을 통해서 보게 되는 이미지들은 그런 개인적인 시각과 반대로 이상하리만치 그의 작품을 담고 있는 공공 공간과 그의 설치물이 하나가 되어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른 Red를 대표하는 작가는 바로  한국의 박서보입니다.


Ecriture(描法) No.070429 : 2007, Mixed Media with Korean Paper on Canvas / 97.5cm x 130cm, 2007


선생의 작품이 꼭 레드인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레드 작품들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작가이며 동시에 미술이론가인 이우환은 박서보의 묘법 작품들에 대해서 "이미지를 그리지 않으려는 저항, 이미지를 단념시키는 작업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행위가 순수한 행위 자체로 정화하게 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작가 스스로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그림은 치유의 도구여야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비워낸 골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입체적 색상이 신비한 느낌을 주며, 묘하게 가벼워짐을 느끼게 합니다. 


똑같이 자신의 그림이 치유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면 했던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서 만나게 되는 레드에서는 한 없이 내부로 침잠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지만 박서보 선생의 레드에서는 오히려 공기처럼 가벼워져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색들이 합쳐져 최종적인 색을 만들어 낸 로스코와 색이 가득한 곳에서 그 색들을 지속적으로 비워나가는 박서보 선생의 작업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Red작품으로 처음 소개했던 Mona Hatourm의 <Hot Spot>에서 타오르는 불꽃들이 연상되신다면 베르디의 <레퀴엠>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Dies Irae - 진노의 날'이 품어내는 에너지를 한번 느껴보시면 어떨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up0t2ZDfX7E


관현악과 합창이 뿜어내는 열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하죠.


이렇듯 소리를 통해서도 온몸으로 색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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