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ClassicFM에서 코로나로 인한 격리 기간 동안 뭔가 독특한 챌린지를 시도하겠다며, 하루에 말러 교향곡 전곡 듣기 도전에 나서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이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인데, 저도 소싯적에는 하루에 바그너 <링 시리즈> 다 듣기 같은 무모한 시도를 했던 경험이 있던지라 갑자기 없던 경쟁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처럼 월급 받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아닌지라, 똑같은 챌린지를 시도하기에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아, 물론 주말에 하면 안 되나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가족이 있는 가장이 주말 내 방에 틀어박혀서 혼자 음악이나(?) 듣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테니, 결국 출퇴근 시간을 붙여서 그들이 하루 동안 마라톤을 완주했다면 저는 이어 달리기로 뭔가를 끝내 보리라 마음먹고 어떤 챌린지가 좋을지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ClassicFM처럼 한 작곡가의 곡들을 다 듣기를 할까 아니면 와인 버티컬 테이스티처럼 같은 곡을 다양한 연주로 들어볼까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한 곡을 다양한 지휘자의 버전으로 들어보자로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방식을 결정하고 그러면 어떤 곡을 하나로 하루 동안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역시 <마술피리>였습니다.
어려서나 나이를 먹은 다음에나 한결같이 좋아했던 오페라이고, 그동안 나름 수집해온 <마술피리>의 Discography 정도는 돼야 이어달리기 챌린지를 할만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기 때문인데요, 챌린지를 하려고 여태까지 모으고 들었던(물론 중간중간 지인들한테 주기도 하고 중고로 팔기도 하고 해서 지금은 몇 종류 안 남았지만) <마술피리> 음반들을 정리를 먼저 해봤습니다.
1. Solti (69) - 빈필
2. Solti (90) - 빈필
3. Karl Bohm (64) - 베를린 필
4. Gardiner (95) -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트
5. Klemperer (64)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대사 삭제판)
6. Colin Davis (84)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7. Neville Marriner (89) -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마틴 인 더 필즈
8. Haitink (87) -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9. Otmar Suitner (70)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10. Thomas Beecham (37~38 모노 레코딩)
11. Furtwangler (49) - 빈필 잘츠부르크 실황 시리즈
12. Claudio Abbado (05) -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13. Rene Jacobs (09) -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14. karajan (80) - 베를린 필 (카라얀의 녹음은 꽤 많은데 전곡을 다 들어본 것은 이 녹음이 유일합니다)
15. Harnoncourt (87) - 취리히 오페라 오케스트라
16. William Christie (95) - 레자르 플로리쌍
17. Sawallisch (72) -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18. Arnold Ostman (92) - 드로팅험 궁전 극장 오케스트라
19. Roger Norrington (91) - 런던 클래시컬 플레이어
적다 보니 드는 생각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 다 듣기는 너무 무리니 이중에 어떤 것들을 다시 들어볼지 먼저 골라내야만 했는데,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하면 하루에 한 녹음씩 끝낼 수 있을 테니, 주말을 빼고 2주간 꼬박 도전한다면 10개의 녹음을 선택하면 될 듯했습니다. (현재는 음악 스트리밍 앱인 IDAGIO를 주로 이용하고 있으며 위의 리스트에 녹음들은 거의 다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낑낑거리며 10개의 녹음을 먼저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솔티 90년 재녹음, (밤의 여왕 중에 가장 좋아하는 조수미 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죠, 가끔 69년 녹음에 등장하는 도이테콤이 최고라는 독특한(?) 취향을 가지신 분들도 꽤 많지만 저에게는 조수미가 부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정확한 피치와 템포가 최고입니다)
칼뵘 64년 녹음 (뵘의 녹음은 꽤 여러 버전이 있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다른 것도 들어봤지만 이 64년이 가장 무난하지 않나 싶습니다. 죽기 전 프리츠 분덜리히의 마지막 스튜디오 레코딩(제가 알기론) 이기도 하고요)
클라우디오 아바도 (2005 - 영국 Gramophone의 오페라 권위자인 Alan Blyth가 William Christie의 녹음과 함께 최고로 꼽고 있는데 크리스티의 녹음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이 아바도의 마술피리는 저 역시도 콜린 데이비스 이후 최고의 연주라고 생각됩니다.
콜린 데이비스 (84) - 콜린 데이비스도 모차르트 오페라에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지라 실황을 비롯해 여러 녹음이 발견되지만 이 필립스에서 출시된 84년 녹음이 가장 좋습니다. 사실 아바도 이전의 녹음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음반이기도 합니다.
오트마르 스위트너 (70) -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부근 국내에서 꽤나 명반으로 소문났던 <마술피리>입니다. 솔직히 LP 시절 이 동독 지휘자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일본 잡지의 음반평에 근거해서 소문만 무성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 CD 시절로 넘어오면서 RCA의 염가 버전으로 출시되었을 때 기대가 커서 그런지 실망도 컸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래도 국내에서는 꽤 알려져 있던 녹음이니 이번 기회에 꼼꼼히 다시 들어보리라 고르게 되었습니다.
가디너 (95) - 가디너의 모차르트 오페라 녹음들은 대부분 추천 리스트의 상단에 자리 잡는데 (특히 피가로의 결혼과 티토왕의 자비는) 마술피리는 기대가 커서 그런지 생각만큼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디너이니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해서 10개 리스트에 들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크리스티 (95) - 처음 들었을 때 기대만큼은 아니었던지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제 음악 감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Alan Blyth가 꼽는 녹음이니 다시 한번 들어보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Alan Blyth에게도 약점이 있긴 합니다. 워낙 실황 연주를 많이 보는 분이니 각 녹음의 전후로 열리는 실황연주에서의 기억과 각 실황연주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레코딩된 음반 사이에서 좀 헤갈려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거든요.
Harnoncourt (87) 아르농쿠르가 한참 취리히 오페라에서 활약을 할 시점에 녹음된 음반이기도 하고 워낙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마술피리> 지휘를 많이 했던 지휘자라 기대가 컸었는데 아주 독특한 스타일입니다.
푸르트벵글러 (49) - 푸르트벵글러에서 모차르트가 쉽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49년에 잘츠부르크에서 <돈조바니> <마술피리> 그리고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하고 녹음까지 하고 있습니다. 음질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음악 애호가에게는 이 거장의 모차르트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51년 실황 녹음으로 EMI에서 출시된 것인데 제가 처음 들었던 CD는 Hunt라는 곳에서 나온 49년 실황 녹음의 해적판스러운 것이었고 현재 IDAGIO에서 들을 수 있는 것도 49년 녹음입니다. Orfeo에서도 출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지를 찾기가 힘들어서 EMI 표지로 올렸습니다)
르네 야콥스 (09) - 고른 음반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녹음되었는데요, 원전악기 연주 스타일 중에서도 아주 개성 넘치는 독특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다른 원전악기 녹음들도 많지만, 가장 극단적인 템포를 보여주는 이 르네 야콥스의 녹음이 기억에 남아있어서 이번 챌린지에 다시 들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워낙 재미있는 오페라이고 인기 있는 곡이다 보니 개성 넘치는 연주들이 참 많은데요, 자발리쉬나 매리너 그리고 원전연주 스타일 중에서도 로저 노링턴이나 외스트만의 연주도 넣고 싶었는데 10개 만을 뽑으려니 아쉽게도 이번 챌린지에서는 빼야만 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간단하게 오페라 전체의 음악 구조를 살펴보고, 본격적으로 챌린지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