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Sep 08. 2020

모차르트 챌린지 - <마술피리> 2

<마술피리>는 시기적으로 몇 년 앞서 작곡된 이태리어 대본을 기반으로 한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그리고 <코지 판 투테>와 비교하면 대본 및 음악적인 구성 그리고 작곡의 동기 등에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술피리>가 초연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유럽의 극장들은 지배층인 황실 및 귀족 등 기존의 권력층을 고객으로 하는 정극 시장과 새로이 떠오르는 부르주아들 (이들은 극장에 가는 것이 기존의 권력층과 자신들 사이의 갭을 줄여주는 좋은 도구라고 여겼다고 하며, 사실 이런 허영에 바탕을 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정은 현재도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을 대상으로 하는 유흥이 강조된 희극 시장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는데, 정극 시장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지만 희극 시장은 완전히 관객에 의존해서 독자적으로 생존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 <도널드 서순 : 유럽 문화사>



<마술피리>를 의뢰한 쉬카네더는 빈에 소재한 자신의 극장을 운영하는 극단 운영자이며, 배우이자 대본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마술피리>는 당시 빈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희곡과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페어리테일 (이 당시의 페어리테일은 현재 아이들을 위해 쓰이는 동화와는 거리가 좀 있죠. 비슷한 시기에 그림 형제가 수집했던 페어리테일을 생각해 보시면 될 듯합니다)의 형태로 쓰이는데, 여기에 음악을 입힌 당시 독일어권을 중심으로 부르주아(당시 문화시장의 주요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징슈필" 형태로 완성되게 됩니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이태리 오페라 형태를 갖추고 전문 오페라 가수들의 공연을 염두에 둔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와는 음악적 구성을 많이 다르게 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전문 대본작가인 로렌쪼 다 폰테가 쓴 리브레또와 비교하면 오페라 서사에 있어서 개연성 등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죠.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제가 생각하는 <마술피리>에 대한 간단한 분석을 먼저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챌린지에 듣게 되는 각 녹음에 대한 비평은 바로 제가 생각하는 <마술피리>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질 테니까요.




먼저 주인공부터 둘러보면, 남자 주인공 타미노는 왕자라고 나옵니다. 사실 그것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말을 타고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시종이 따라다니지도 않습니다. 왕자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무장은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무기도 전혀 없어서 적을 만나면 무찌르라고 "피리"를 하나 받게 됩니다. (무장은 단지 무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군 당시 완전 무장한 갑옷을 갖추는 것은 현대로 비교하면 최고급 벤틀리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경제적 여유를 보여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왕자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위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거죠) 



일단 등장하는 장면부터 황당합니다. "Zu hilfe, Zu Hilfe~" 불을 뿜는 용 정도는 물리쳐야 공주를 차지할 수 있는 관습적인 이야기들의 주인공과 달리 뱀(물론 오페라 내용에 의하면 엄청 크다고 하긴 하지만)을 보고 겁에 질려 도와달라고 외치다가 기절하는 사람이죠. 



그렇다면 이런 캐릭터를 지닌 남자 주인공에 영웅적인 목소리를 지닌 테너가 등장하는 것이 맞을까요? 이 질문이 제가 타미노를 판단하는 데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문제입니다.


타미노가 불러야 하는 아리아는 2곡이 나오며, 곡의 성격 역시 감성적이고 부드럽습니다.


여자 주인공으로 눈을 돌려볼까요, 공주인 파미나 입니다. 타미노와의 균형을 위해 서정적인 목소리의 소프라노가 적합합니다. 특히 극 진행상 특별한 개성을 보여주는 역할은 아니다 보니, 약간은 감정적인(멜랑콜리한) 아리아 ""Ach, ich fühl's"를 소화할 수 있는 적합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파파게노와의 2 중창은 음악적으로 일종의 연결 부분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이라 여기에서도 개성이 많은 편 보다는 목소리가 예쁜 그리고 보컬 테크닉이 뛰어난 가수에게 더 좋은 점수를 주게 되는 것 같고요.


또 다른 여자 주인공인 밤의 여왕인데요, 막상 등장하는 장면의 시간은 길지 않지만 음악적으로 가장 존재감이 큰 역할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초에 작곡 당시 전문 오페라 가수가 아닌 코미디극의 배우들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어야 하는 파파게노(대본을 쓴 쉬카네더가 초연에서 맡기로 한) 같은 역이 극의 대부분에 등장하면서 희극적인 연기를 통해 오페라의 서사를 진행시켜야 하다 보니, 전문 성악가가 등장할 수 있는 역할에서 음악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리려고 한 것이죠. 1막과 2막에 걸쳐 한 번씩 중요한 아리아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캐릭터의 성격을 목소리로 보여주는 역할보다 순수하게 음악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소프라노를 개인적으로 더 높이 치는 편입니다. ( 쉽게 설명하자면 제 개인적인 견해는 솔티의 구버전에 등장하는 도이테콤의 극적인 노래보다 신버전에 등장하는 조수미의 완벽한 음정 밑 템포 컨트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 것이죠)



조연이지만 주연 못지않게 중요한 새잡이 파파게노가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설명드린 것처럼 희극 배우였던 극단장을 위한 역할이다 보니, 극의 전개사 많은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하지만 음악적으로 너무 과한 테크닉을 부여하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파파게노의 아리아나 2 중창은 평이한 멜로디를 독특한 리듬 등에 얹어서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방향으로 음악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파파게나와 부르는 마지막 2중 창인 "파~, 파~, " 같은 곡은 쉽지만 상당히 재미있고 인기도 높은 편이죠.



자라스트로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맡는 밤의 여왕에 대비가 되는 역이다 보니, 아주 낮은 저음을 부를 수 있는 베이스를 위한 역입니다. 빠르고 높고 기교가 필요한 소프라노와 느리고 낮고 풍성한 성량이 있어야 하는 베이스가 전체 음악의 밸런스를 맞추고 있는 셈인데, 그렇다 보니 소프라노가 극적인 표현에 치중하는 경우 베이스 역시 좀 더 표현력이 뛰어난 가수를 쓰는 것이 적합하고 그렇지 않고 순수하게 성악적인 부분이 강한 소프라노가 등장한다면 베이스 역시 좀 더 보컬의 퀄리티에 치중해서 캐스팅하는 편이 곡의 전체 밸런스를 위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3명의 시녀와 3명의 소년이 등장하게 되는데 간혹 이 3명의 소년을 소프라노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악이냐 극이냐의 선택에서 어떤 쪽에 더 중심을 둘 지를 지휘자가 선택하는 것인데 어떤 선택이 중요하냐 보다, 그 선택에 합당하게 전체적인 완성도를 갖춰나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소년들이 나와야 한다고 보는데, 이 3명의 소년들이 음악적인 의미로는 분위기 전환 내지는 환기를 담당하고 있기에 성인 가수들이 등장해서 더 세련되고 완성도 높게 부르는 것이 오히려 그 전후의 음악들을 망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리하게 되면 결국은 <마술피리>를 듣는 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는 지휘자와 밤의 여왕 그리고 자라스트로가 보여주는 음악성 그리고 나머지 출연진의 서정적인 하모니와 파파게노의 극적인 표현력 등이 될 듯합니다.


그럼 다음 편부터는 이런 제 개인적인 <마술피리>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 본격적으로 각 음반 별 챌린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차르트 챌린지 - <마술피리>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