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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Nov 29. 2020

추억에 내포된 감정의 외연들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기억들은 그저 단지 추억만으로 사진첩 한편에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요?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 행복했던 순간의 감정들이 어떻게 소리와 이미지로 변환되어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예술작품으로 발전하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국의 조각가인 바바라 헵워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유려한 곡선들은 그녀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경험한 굽이치는 시골길 그리고 도로가 가로지르던 푸른 벌판과 나지막한 언덕의 이미지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Mother and Child 1934



그녀는 자신의 작품들이 "아름다운 생각들을 담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아름다운 생각들이 바로 그녀의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Oval Sculpture (No. 2) 1943



그녀는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평온하고 따뜻한 자연의 풍광을 전달하고자 했다는데, 위의 1943년작 oval Sculpture를 보면,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에 둥글어진 바닷가의 조각돌이 연상되죠. 

어린 시절 함께 물제비 놀이를 하며 깔깔대던 행복한 웃음들과 그 웃음을 밝혀주던 햇볕에 반사된 반짝이는 수면들, 우리 모두가 돌아가고 싶은 따사로운 감정의 순간들이 아닐까요? 






구스타프 말러 역시 그의 음악 속에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골목의 소리, 숲 속의 벌레들,  새들의 지저귐 같은 다양한 추억의 감성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교향곡 3번>을 통해 우리는 추억에 담겨있는 감성들이 멜로디와 리듬을 통해 발전해 나가며 거대한 음악적 구조를 이루어 내는 소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곡은 다음과 같이 총 여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악장 Kräftig. Entschieden (힘차고 단호하게)

2악장 Tempo di Menuetto, Sehr mäßig (매우 적당하게)

3악장 Comodo. Scherzando. Ohne Hast (서두르지 말고)

4악장 Sehr langsam. Misterioso (극히 느리고 신비스럽게)

5악장 Lusig im Tempo und keck im Ausdruck (활발한 속도로 대담하게)

6악장 Langsam. Ruhevoll. Empfunden (느리고 평온하게 감정을 풍부히)


최초 작곡 당시에 작곡자 스스로가 각 악장별로 다음과 같은 부제를 붙이기도 했는데


1악장 "Pan Awakes, Summer Marches In" (목신이 잠을 깨우고 여름이 행진해 온다.)

2악장 "What the Flowers on the Meadow Tell Me" (목장의 꽃이 내게 들려주는 것)

3악장 "What the Animals in the Forest Tell Me" (숲의 동물들이 내게 들려주는 것)

4악장 "What Man Tells Me" (인류가 내게 들려주는 것)

5악장 "What the Angels Tell Me" (천사가 내게 들려주는 것)

6악장 "What Love Tells Me" ([자연]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


30분 이상 연주되는 1악장에서 그의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소리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Yr720ftjaA



<1악장 감상>


혼의 첫 주제를 제시하면 곧 혼의 소리를 끌어당기는 듯한 타악기들의 출현이 이어진다.

곧이어 등장하는 트럼펫과 첼로의 대화는 흔들리는 강한 기류의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 긴 여름날의 하루, 그 변화무쌍한 산속의 날씨


금관들이 강한 바람을 한 차례씩 불어 올리고 서로 엇갈리며 분위기의 주도권을 호심탐탐 노린다.(4~5분 사이)


갑자기 잠시 침묵이 흐르지만 곧 관의 등장으로 침묵이 깨지며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되고 나면, 바이올린 솔로가 메인 주제를 상큼하게 반복한다.


곧이어 등장하는 스네어 드럼의 '타르르' 울리는 구령 소리.

- 멀리서 다가오는 무엇인가의 발자국 소리들이 아련하게 깔리고


트롬본 솔로가 호기심과 두려움에 찬 방랑자의 감정을  표출한다. 

곧 나머지 트롬본들이 총주로 솔로에 힘을 더하고 트럼펫이 예상치 못한 짓궂은 돌풍을 불어낸다.


다시 침묵에 빠진 숲 속.


조용히 귀를 기울이니 이제야 숲 속의 다양한 소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조금 더 경쾌해진 금관에 이어 현이 상승과 하강을 통해 다채로움을 예고하고 각각의 목관들이 연습하듯 한 마디씩 소리를 보태며 점차 차분해지는 가운데 조금씩 숲 속의 상황에 익숙해지는데, 


이윽고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진 방랑자의 귀에 다채로운 자연의 소리들이 들어온다. 

수풀 속의 벌레와 작은 동물들이 움직이는 느낌이 스네어 드럼의 경쾌한 리듬 위에 가볍게 뛰노는 현과 목관들로 표현되다가 중간 크기의 총주가 한 줄기씩 나뭇잎 사이를 비추는 햇빛처럼 하늘에서 빛을 발한다.


트렘펫이 새로운 기운을 힘차게 불러 댄 후 분위기가 바뀌며 기쁨과 즐거움의 상승이 잠시 지속된다.


짧은 환희의 순간을 뒤로하고 곧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면 두터워진 대기의 밀도와 습도가 감지되고

이윽고 더 두껍고 긴 여운을 전해주는 금관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대한 새로운 분위기를 암시한다.


(16분 전후) 관악기들이 튀어나오려다 말고 사그러 들면서 다시 잠시 조용한 휴지부가 미지의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암시하고 나면 또다시 가벼운 바이올린 솔로가 주위를 환기시킨다.


피콜로가 이제까지 없던 색다른 소리로 적막을 깨기 시작하면 현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듯 서서히 분위기에 활력을 가져온다.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나오는 현 위로 바이올린 독주가 다시 한번 정막을 깨는 귀여운 작은 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오케스트라 전체가 서서히 주변의 상황이 변화하는 것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목관들이 리드미컬한 현의 위로 경쾌하게 활기를 불러 넣기 시작하면 멀리서 캐스터넷의 흥겨운 따닥 거림이 보태지며 완전히 경쾌한 행진곡 리듬을 다양한 악기들이 돌림으로 보여주다가 좀 더 많은 악기들이 군악대와 같이 힘찬 행진을 만들어 내고 흥분된 목소리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볼륨을 높이는데 그 사이를 정갈한 드럼의 리듬으로 정리하고 다시 최초의 주제로 돌아가게 만든다.


좀 더 상황에 적응하게 된 익숙함 일까 아니면 갑자기 데자뷔를 본 것일까


그리고 잠시 정막이 흐른 뒤 익숙한 환경이 다시 한번 재생되는데 더 이상 데자뷔 같은 느낌이 아니다.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 첫 대면에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미세한 대기의 움직임들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28분 지점) 짧은 정막이라고 여겼던 지점을 지나며 여리지만 떨림이 큰, 숲 속의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되는 것이 방랑자의 몸에 느껴지기 시작한다.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반복되는 북소리의 리듬으로 기운을 북돋운 다음 좀 더 귀를 기울여 숲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노래를 듣기 시작한다. 그 노래들은 처음과 달리 서서히 애착이 가고 조금씩 그 안의 감정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방랑자가 느끼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숲의 목소리도 훨씬 밝고 맑아지며  둘 사이의 보다 긍정적인 기류가 형성되며 믿음이 쌓이고 있다.


(33분 하프부터 1악장 엔딩까지) 숲은 이제 자신을 활짝 열고 내면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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