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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Feb 14. 2021

숨겨진 보석 찾기 <워터쉽 다운>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뽑힌 이후로 새로운 시청 패턴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생겨서 TV 앞에 앉게 되면 리모컨을 돌려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로그램들부터 검색하게 된 거죠.     


그렇게 만나게 된 <워터쉽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진정한 숨겨진 보물이었습니다. (제목에 왜 열한 마리가 들어갔는지 궁금했는데 원작 소설을 찾다 보니 한글로 번역될 때 역자나 출판사에서 원작의 제목인 워터쉽 다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덧붙여졌네요)


1972년 발표된 리처드 애덤스의 판타지 동화 <워터쉽 다운>은 환각상태에서 미래의 일들이 그려지는 비전을 보는 파이버와 그의 형 헤이즐을 중심으로 토끼 마을의 이웃들이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서는 모험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주인공에 토끼가 선택되고, 모험담이 담긴 이야기이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만화 영화로 오해할 수 있지만 시리즈는 12세 이상 관람가인 청소년과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입니다.


1. CG


그렇다 보니 다양한 기법을 섞어가며 장면과 캐릭터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데요, 시작 부분에서는 그림자극 기법을 활용해 이 판타지 스토리의 세계관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이미지들이 발전하고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을 내레이터의 설명과 연결시켜 복잡할 수 있는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직관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 중 <죽음의 성도들> 편에서도 유사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그림자극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이 사용된 적이 있죠.

 


몇몇 위와 같은 특수한 장면들을 제외하면 시리즈 내내 거의 실사에 가까운 화면을 보여주는데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실사 같은 배경 위에 등장하는 토끼 캐릭터들의 이미지들이 서로서로 너무 비슷해서 화면 속의 이미지 만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뭐 실제로 동물원에서 토끼들을 볼 때도 한 마리 한 마리 구분이 쉽지는 않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해하기 위해 각각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없고 오로지 출연 배우들의 목소리로만 구분하기에는 원어민이 아닌 우리에겐 큰 장애물로 다가옵니다. (심지어 미국 영화 평론가들도 유사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이는데, 출연진들이 영국 내에서는 다들 많이 알려진 배우들이다 보니 영국 언론들의 리뷰에서는 여기에 대한 불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구성 자체가 one이 아닌 all을 아우르며 진행되는 까닭에 약간의 갑갑함을 누르고 화면을 주시하다 보면 어느덧 화면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듯한 흡입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보이스 연기


보이스 연기를 맡은 배우들의 면면이 꽤나 화려합니다.

주인공 헤이즐 역에는  제임스 맥어보이가 등장해서 영화 엑스맨에서 보여주었던 잉글랜드 남서부의 정통 발음을 구사하고 있고(애니메이션이니 왠지 토크쇼에서 보여주는 그의 구수한 스코틀랜드 악센트가 나왔어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동생 파이버는 니콜라스 홀트가 맡아서 여리고 불안한 어린 토끼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핀을 연기한 존 보예가, 영원한 악당 벤 킹슬리(1982년 영화 간디의 주인공을 기억하신다면 이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 변신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현재 <더 크라운>에서 여왕을 맡고 있는 올리비아 콜만, <킹스맨>의 태런 애저튼, <닥터 후>의 피터 카팔디(갈매기를 맡은 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배우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잉글랜드 남부의 토끼들과 다른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서 스코틀랜드 악센트로 갈매리 목소리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겟 아웃>의 다니엘 칼루야, <나를 찾아줘>의 로자문드 파이크 등등 대단한 연기력을 보유한 영국의 많은 남녀 배우들이 BBC 시리즈로 기획된 이 작품에서 목소리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극 등을 통해 다져진 영국 배우들의 기본기와 연기력은 등장하는 토끼들의 모습이 비슷해 캐릭터를 구분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목소리만으로도 드라마의 내러티브가 포함하는 다양한 색깔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데요, 

영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색다른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3. 톨킨 스타일의 판타지물


물론 톨킨의 판타지 소설이 보여주는 거대한 세계관과 비교하면  이 <워터쉽 다운>의 세계관은 훨씬 규모가 작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도 인간 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요정이나 신이 아닌 힘없는 토끼들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반어적으로 더 인간적인(?) 내러티브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이 가지는 다양한 모습에 대한 개인들의 솔직한 태도, 선과 악이라는 거대한 윤리적 프레임보다는 개개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담담하고 객관적인 생의 철학, 주인공들이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자연에 순응해가는 현실적인 모습 등을 토끼라는 연약한 캐릭터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는데, 하지만 의외로 상당한 스릴과 서스펜스를 부여하며 이야기에 긴장감을 유지해 나갑니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모순인 규제와 체제 등에 대한 불만을 가진 주인공 헤이즐은 그렇기에 동생이 환각의 이미지를 통해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았다며 정든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쉽게 동의하며 행동에 옮기는 데, 이런 캐릭터적인 배경은 <매트릭스> 속 '네오'를 떠오르게 하네요.


물론 시대적인 특징 탓인지 굴을 파기 위해서는 암토끼가 필요하다는지 그리고 암수간에 계급이 나누어져 수토끼들이 지배적인 계급을 차지하고 있는 등 현대적인 개념으로 차별적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 전체적으로 어찌 보면 필요 이상의 폭력이 포함되어 있는 탓에 12세 이상 관람가의 등급으로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지만, 이런 장면 전개를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듯싶습니다. 



위에서 보이는 토끼와 비둘기, 그리고 토끼와 사냥개 또는 서로 다른 토끼 집단 간에 발생하는 생과 사의 모습이 어쩌면 너무 현실적이기에 보는 시각에 따라서 폭력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원작자가 소설 속에서 꺼내 든 문제제기에 대한 영화적 묘사일 뿐입니다.



“Animals don't behave like men, If we have to fight, we fight; and if we have to kill we kill. But we don't sit down and set our wits to work to devise ways of spoiling other creatures' lives and hurting them. we have dignity and animality.”

동물들은 사람들과 달라, 우린 싸워야 하면 싸우고, 죽여야 하면 죽이지. 하지만 인간처럼 앉아서 다른 생명체를 망치기 위해 지혜를 사용하진 않아. 우리에겐 존엄성과 동물성이 있잖아 


작가는 생존을 위해 행하는 본능적인 일에는 여전히 존엄성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고, 폭력이란 이런 존엄성이 제거된 상태의 행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삶의 여정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 토끼들을 통해 던져지는 질문들은 그리 무겁지 않은 무게에 비해 담백하고 직설적으로 우리의 삶에 걸쳐있는 문제들을 제대로 돌아보게 하는데요, 그렇듯 <워터쉽 다운>은 쉬지 않고 달려가는 토끼들의 긴장감 넘치는 생존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의 여정을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였습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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