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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Feb 05. 2019

Piano and

미니멀리즘

         "거대한 우주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의 존재는 특정 시간과 특정 장소에서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와의 관계로 특징지어 진다" 




 차가운 날씨 탓인지 커피 향에 끌려 가까운 카페로 향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와 금속소재의 단색톤을 주조로 한 Minimal 한 도시적 인테리어와 인테리어 용도 겸으로 놓인 것으로 보이는 키가 큰 B&O 스피커를 통해 좋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멋진 카페입니다.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걸 여태껏 모르고 있었네요.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빈 테이블을 찾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정신을 차리고 들어 보니, 많이 들었던 익숙한 음악들이 흘러갑니다. Michael Nyman의 대표곡 모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작곡가의 영화 Piano 주제곡은 아주 인기가 많았습니다. 



https://youtu.be/NsQBKr_x-P4 (주제곡 링크)

  

 워낙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작품이 많다 보니, 영화음악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Michael Nyman은 Minimal music이라는 현대 클래식 음악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음악 형태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시작합니다. minimal music이라는 표현 역시 이 작곡가가 최초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minimalism과 minimal music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기에 서로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미니멀리즘 미술사조는 한국 현대 미술사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흔히 단색화라고 표현되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중심에는 현재 미술경매시장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현존 작가인 이우환선생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모노하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이우환 선생은 그의 대표연작인 점과 선의 시리즈들을 통해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고, 일정한 패턴을 통해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살리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점으로부터 1973년



선으로부터 1974년


이런 과정이 결국 바람과 조응으로 연결되는데요, 감정보다는 논리, 그리고 자연이 가지고 있는 본질과 그 변용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줍니다.


 시각으로 인지하는 사물의 형태는 그 기본에 점들이 있으며, 수 많은 점들이 질서있게 연결되기 시작하면 선이 되는 것이죠. 이런 흐름은 작가에 의해 독특하게 바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요소를 통과하게 되고, 결국은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많은 요소들이 그 바탕에는 동일한 기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조응 1994년

그렇게 결론 내어진 작가의 '조응'시리즈에 그려진 커다란 하나의 점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 수 많은 점들과 선들이 일정한 리듬으로 질서있게 모여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으로  정확한 순간 ( 時 )과 정확한 위치( 空 ) 를 캔버스에서 찾아 나가는 이 작업은  


     "거대한 우주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의 존재는 특정 시간과 특정 장소에서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요소와   

      의 관계로 특징지어 진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해줍니다.


 이렇듯 전체는 그것을 이루는 작은 요소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의미를 지닌 미니멀리즘은 동양적 사고와 맞물려 이우환 선생뿐 아니라 동시대의 위대한 작가인 한국 단색화의 대가인 박서보 선생까지 다양한 현대 한국 미술의 토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박서보 <Ecriture No.060114>


다시 음악으로 되돌아 가보면, 미니멀 음악의 대표적인 음악가들로는 

 미국의 Steve Reich, Philip Glass 등과 유럽의 Michael Nyman, Henryk Gorecki, Arvo Part, John Tavener 등이 있습니다. 


 단선율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미니멀 음악의 특징은 멀리 그레고리안 성가와 바로크 음악 그리고 가까이는 현대 12음 기법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필립 글라스의 오페라 작품들 'einstein on the beach' 'Akhnaten'과 같은 전위적인 작품도 등장하지만, 좀 더 친숙한 클래식 음악인 아르보 패르트도 있습니다.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들도 영화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 작곡가가 바로 마이클 니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이클 니만의 대표작인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은 같은 제목의 심리학 임상실험 노트에 기반을 두고 작가가 직접 대본 작업에 참여한 단막 오페라입니다. 주 멜로디를 슈만의 '시인의 사랑' 중에 'Ich grolle nicht'에서 따와서 변용을 통해 오페라를 완성해 나갑니다. 


https://youtu.be/c5 W3 qGUa9 XU ( Ich grolle nicht 링크 )


https://youtu.be/UX8 UZiJKgNg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링크)


 

 이러한 음악적 실험도 많이 하지만 마이클 니만은 같은 영국 출신 영화감독 피터 그린어웨이의 다양한 작업에 참가하면서 영화 음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고 이후로 상당히 많은 영화 음악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런 일련의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의 새로운 시도들은 그 이후 세대들인 Johan Johanson, Max Richter 등 현대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이  대중에게 영화음악 작곡가로 인지되면서 현대 음악의 새로운 부흥을 가져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이런 현대의 작곡가들은 선배들의 음악에서 나온 듯한 미니멀 작곡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훨씬 더 형식적으로 자유롭게 음악을 확장해 나가며, 음악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무기인 감정의 자극에도 충실히 접근하고 있습니다. 


 Max Richter같은 경우는 직접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지만 그의 뛰어난 작품들을 다수의 감독들이 자신들의 영화 주요 장면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아일랜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어라이벌(컨택트)'에 쓰인  'On the nature of daylight' 등이 대표적입니다.


https://youtu.be/b_YHE4Sx-08


저음의 첼로들이 느리고 낮은 첫 주제를 반복하며 조금씩 변주해 나가면서 점점 더 높은 위치의 멜로디로 교체되는 순간, 높은 음역의 바이올린이 이전 보다 빠른 리듬의 멜로디를 베이스인 저음 위에 교차시키며 등장합니다. 그리고 두 바이올린이 서로 분리되어서 첫번째 바이올린은 나머지 첼로와 바이올린이 화음을 이루는 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듯이 튀어 오릅니다. 그리고 그 모난 부분들이 마침내 화합을 이루는 찰나, 모든 악기들은 하강을 시작하고 점차 느려지더니 조용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느끼는 불안, 기대, 회한, 초조 등의 감정이 교차되면서 흥분해 나가기 시작하다가 새로운 계기(외침, 빛)를 기점으로 점차 안정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수작입니다.


 이렇듯 현대에 이르러 대중과 화합을 이루어 나가는 음악계의 모습은 허나 그 과정에서는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미술계의 다양한 현대적 시도가 입체파, 미래파, 신조형주의, 다다이즘 등을 거쳐 자리를 잡는 것과 반대로 음악계의 현대적 시도인 12음 기법 등은 지금 와서 보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으니까요.


 어느 정도 예견이 가능한 사태였는데, 니체의 주장처럼 음악은 아폴론적인 미술에 비해 디오니소스적인 면이 훨씬 강하게 작용합니다 (비극의 탄생). 다시 말해서 음악은 우리의 감정에 훨씬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미술에서 느끼는 조형미는 감정만큼이나 이성이 작용하는 부분이 큰 영역이니, 현대로 오면서 현대 철학 발전과 함께 그 사상적 바탕을 이미지로 구현해 내는 새로운 표현 시도들이 대중에게 수용된 반면, 음계의 해체와 재배열을 통해 발전을 시도한 현대음악은 우리의 감정에 반하는 시도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을 막연하게, 무엇인가 대중과 격리된 저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상당히 큰 것 같습니다. 현대음악은 클래식 음악계와 대중 사이를 이런 편견을 통해 갈라놓은 가장 큰 원인중 하나였지만 위에서 들어 본 막스 리히터의 음악처럼 결국은 다시 우리 곁으로 온 음악은 이번 글의 처음에서 소개했던  마이클 니만으로 대표되는 다수의 미니멀 음악가들의 다양한 실험과 노력을 그들의 뒤를 이은 동시대의 뛰어난 음악가들이 이어 나가며 인간의 감정을 풀어내는 원천으로서 그 무한한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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