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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03. 2019

문자의 아름다움

When do words become arts?

  얼마 전 강남에 위치한 한 백화점에 쇼핑을 갔다가,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급하게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백화점의 화장실 안에는 예술작품을 카피한 조그만 액자를 이용한 인테리어가 유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 날 제 눈에 들어온 액자는 오래된 책의 한 페이지 위에 뭔가 이미지를 겹쳐서 프린트를 하는 Old dictionary art형태의 작품을 흑백으로 카피한 그림이었습니다.


 

 text가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하는 건 '개념미술'이 본격화된 1960년대를 전후해서입니다.


 1917년 세상을 뒤엎은 그 유명한 마르셀 뒤샹의 변기 이래로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새로운 해답을 추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시시대 동굴 속 벽화는 미술인가요?"

 "상점에서 파는 소변기가 미술인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예술에 대한 생각들, 즉 균형과 조화를 통해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을 재 창조한다는 개념은 신이 창조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유사하게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하던 그리스어 Techne에서 라틴어 ars를 거쳐 art가 되었고, 독일어 Kunst 역시 수공 기술을 의미했으며, 예술(藝術) 이란 단어에 쓰인 예와 술 모두가  각기 기술 또는 재주를 의미하였던 것과 괘를 같이 해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철학자들은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으며, 칸트이래 '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증가하였고, 이런 사상적  변화 아래, 점차  그림을 그리는 기술적인 그리고 형식적인 측면보다 작품의 구상을 위한 관념이나 개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들이 주류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미술에서만 이런 움직임이 있었을 리가 있을까요? 당연히 음악에서도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등장합니다.

4분 33초로 유명한 존 케이지가 바로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미술에서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이 조화로운 자연의 외형을 모방한 것이었다면, 음악에 있어서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잘 조합된 황금비율 주파수들의 모임이었습니다. 한 옥타브 안에 존재하는 음들 중에서 서로 완벽한 화합을 하는  음들의 모임 (화성)이 있는가 하면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음들의 모임도 있었으며, 좋은 음악은 결국 이 좋은 음들의 모임을 적절한 리듬과 형식으로 모아 놓은 것이었죠. 

ㅈ일상의 소음들은 대부분 좋은 화음을 이루지 못하는 음들의 모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랜 역사 속에 이들은 음악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인데, 존 케이지는 우리가 보편타당한  음악의 아름다움이라고 여겼던 이런 전통에 틈을 내고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4분 33초는 연주자가  등장해서 청중에게 인사를 하고 연주를 위해 피아노에 앉은 후 정확히 4분 33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연주를 끝내는 것입니다.


https://youtu.be/gN2zcLBr_VM

 공간에는 소리가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그 소리들 (또는 소음들)이 이루는 것 역시 음악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존 케이지의 이 질문은 마르셀 뒤샹에 버금가는 황당(?)한 그러나 음악이 새로운 예술로 미학(철학)적인  전환점을 찾게 되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렇듯 20세기 초에서 20세기 중반까지 걸쳐 나타나는 예술의 새로운 움직임들은 격변의 20세기와 함께 시간을 두고 발전해 나가면서 20세기 말부터 점차 일반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마냥 어색했던 예술의 극단적 변화도 점차 대중에게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2013년 런던 tate modern에서는 "When do words become arts?"라는 제목으로 관람객의 반응을 보는 기획도 열렸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을 기획 전시하면서, 이 기획전을 보러 온 사람들이 When do words become arts? 란 질문에 자신만의 답변을 올릴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https://www.tate.org.uk/context-comment/blogs/tate-debate-when-do-words-become-art

 이 링크를 열고 들어가 보시면 좀 더 다양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게 어떻게 예술이란 말인가 하던 대중의 분노는 점차 이것도 예술이구나 하는 호기심으로 변해 갔으며 이제는 드디어 미술관을 찾는 우리들,  다시 말해 일반 애호가들도 각자의 목소리로 어떻게 텍스트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되어 버린 것이죠.


테이트 모던이 소장하고 있는 텍스트를 사용한 작품들을 찾아보니,  1922년 Francis Picabia "The Fig-Leaf"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개념미술'의 등장으로 드디어 우리는 문자가 가진 예술성을 느끼기 시작한 걸까요? 최근에는 문자는 미술의 주요 도구로 인식되고 있고, 디자인 등의 영역으로 활발하게 폭을 넓히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패션에서의 사용도 유행이 되고 있으며, typography 역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서두에 백화점에 걸려 있는 Book(Text)  art  소개를 했었는데, 그렇다면 오리지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Fab Funky라는 예명을 쓰는 영국의 interior art작가입니다. 초기에는 200년 이상된 앤틱 백과사전을 분해해서(200년 이상된 백과사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습니다) 그중에 상태가 깨끗한 페이지 위에 자신이 작업한 일러스트 이미지를 판화 작업을 통해 오버랩시킨 작품들을 만들어 내곤 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비록 판화 작업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지만 사용된 백과사전의 모든 페이지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판화임에도 모든 작품이 동일할 수 없는 유니크함이 있었습니다.


 런던의 사치 갤러리 아트샵에서 판매를 하며 유명세를 탔는데,  아마존 등에 많은 유사품들이 등장하면서 작가 본인도 비용이 많이 드는 오리지널 백과사전 종이가 아닌 스캔받은 이미지 위에 작업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200년이 넘은 오래된 종이를 직접 소장하는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즐거움이 컨셉을 따라 하는 베끼기 명수들 덕분에 사라지고 말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그 싸구려 카피 제품이 한국의 백화점 화장실에 까지 마구 걸리게 되니, 이제는 작가가 최초 시도했던 아이디어의 독창성마저 흐려지게 된 것 같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영국에서는 문자를 사용한 또 다른 독창적인 art 상품이 있습니다. '철자 기호의 수는 25개다'라는 보르헤스의 원리처럼 문자의 기본인 철자들이 사용되는 가장 종합적이면서 궁극의 예는 바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해체해서 (당연히 보르헤스와는 다른 관점으로) 재구성하여 멋진 art poster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인지 궁금하시죠.



 이 멋진 포스터는 책의 모든 문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문자만을 사용해서 재구성해냈습니다.

영국의 spineless classic이란 회사의 엄청난 성과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한 편의 책을 벽면에 걸어 둘 수 있는 멋진 일이 벌어진 거죠.


 

 


당연히 출판사 또는 작가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상품들이다 보니 해리포터 시리즈도 있었습니다.

( 계약 갱신을 하지 않아 더 이상 신상품으로는 구입이 어렵고 e-bay를 뒤지면 이전에 판매했던 것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책의 길이에 따라 포스터의 사이즈도 다양하게 나오고, 책의 내용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도 상당히 독창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안타까움이 생깁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가지고 제작된 두 장의 서로 다른 포스터를 한번 보시죠.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포스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이세요?


 시대정신이 만들어 낸 새로운 예술의 영역은 이렇듯 점차 대중의 삶 속으로 녹아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은 전에 없이 예술적인 풍족함이 넘쳐 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풍요와 작품에 녹아있는 예술적 가치의 수준이 항상 비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예술과 상업의 경계선 상에 서있는 이런 좋은 아이디어들이 그것을 올바르게 향유할 좋은 소비자를 만나지 못해서 퇴보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역시 풍족함 만큼이나 넘쳐나는 건 저자만의 기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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