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음악이라는 어떻게 보면 시각과 청각이라는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진 예술에서 우리는 다양한 공통점 또는 공유할 수 있는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미술작품을 통해 음악의 이해를 높일 수 있고,반대로 다양한 음악 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바탕으로 화가가 표현하려는 시각적 이미지의 느낌을 좀더 확실히 알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로스코와 그가 그린 작품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일것 입니다.
우리는 그의 아들이 펴낸 로스코 전기를 통해 로스코의 작품이 펼치는 광활한 세계관과 그의 색상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적 감성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로스코가 사랑한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통해서 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어떤 모습이 로스코를 사로잡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로스코의 그림과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로스코는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로 알려져 왔습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구도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15년 그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스코가 쓴 마크 로스코 전기가 출간됩니다.
<Mark Rothko, From the Inside Out>
제목 그대로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내부인인 가족의 눈으로 인간 마크 로스코를 재조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책에 나온 내용 그대로 보여드리면 a painter “who aspired to be a musician” 이 우리가 몰랐던 마크 로스코의 숨은 비밀이었습니다.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항상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흘러나오는 작업실 광경을 익히 알고 있었고, 모차르트는 그에게 작품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 원천이라고 합니다.
로스코는 고전주의 음악의 간결함과 형태의 미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그런 고전주의 음악가 중에서도 간결함과 형식미만을 통해서 인간이 가진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과연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어떻길래 이 세계적인 미술가를 사로잡고 그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었을까요?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에 대표작인 <Don Giovanni-돈지오반니>, <Le Nozze di Figaro-피가로의 결혼>, <Die Zauberfloete-마술피리> 이렇게 3 작품을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3개의 주요 오페라 가운데, 제일 처음 완성된 <피가로의 결혼>은(그의 전체 오페라 중에는 중반 이후에 해당합니다) 바리톤이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수많은 오페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남자 주인공의 역은 테너가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돈 지오반니>와 <피가로의 결혼> 등의 주인공을 모두 바리톤 또는 베이스바리톤의 저음 가수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마술피리>나 <코지판투테>의 경우에도 오페라의 구조상 어떤 역이 단독 주인공이라고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주요 배역을 바리톤, 베이스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음악적 완성도가 중요했던 모차르트에게 일반적인 (심지어 모차르트 이후에 등장한 작품들 마저도 당연히 답습했던) 이태리 오페라 스타일은 성에 차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리히 클라이버의 명반도 있지만, 실비아 맥네어의 수잔나를 런던에서 직접 본 인연으로 제일 아끼는 녹음입니다)
일반적인 오페라의 경우, 극의 진행을 레치타티보 등으로 빠르게 넘기고 중요한 부분에 등장하는 아리아를 주인공이 멋지게 부르는 방식이 가장 보편적입니다. 그럴 경우에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큰 아리아들은 관객들이 가장 좋아할 테너와 소프라노가 불러야 할테고 그렇다면 당연히 테너와 소프라노가 주연으로 등장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톤이 주연을 하게 되면, 뭔가 맑은 고음을 멋지게 뽑아내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테너의 아리아는 불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바리톤들은 테너에 비해 일반적으로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이 넓은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모차르트는 한 두곡의 아리아로 관중을 즐겁게 해주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음악을 통해 전체 스토리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주인공역을 창조하는 데 더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작품으로 돌아가, <피가로의 결혼> 1막 첫부분을 한번 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Y9gSwBWj6E
서곡이 끝나고 막이 오르면 피가로가 등장해서 결혼식을 앞두고 신방으로 사용할 방의 치수를 재며 수잔나와 함께 즐거워하는 쾌활한 노래로 시작합니다.
"Cinque, dieci, venti" 그러다가 남자(피가로)와 여자(수잔나)의 생각 차이가 나타나고 수잔나는 백작에 대해 걱정스럽지만 피가로는 계속 쾌활한 "Se a caso madama la notte ti chiama"
https://www.youtube.com/watch?v=W1i0GGnMPaI
하지만 점차 수잔나의 이야기를 통해 백작의 음흉한 속셈을 알아채고, 그에 대해 나름 준비가 돼있음을 알리는 Cavatina "Se Voul Ballare signor contino"까지, 처음 등장해서 극의 전체 분위기에 대한 암시를 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성격의 노래를 3곡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노래를 통해 전체 극의 진행을 끌고 가고자 했던 모차르트라면 주인공에 테너를 배치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첫 동영상은 1994년 글라인드본 실황으로 동일 프로덕션이 하이팅크의 지휘로 음반이 나와 있습니다.
두번째 영상은 90년대 초 파리 공연 영상인데, 이 가디너 지휘의 "피가로" 역시 음반이 나와 있습니다. 두 녹음 다 좋아하는데, 가디너 판에서는 당시 런던과 파리 그리고 베를린까지 유럽을 잡아 먹던 브라이언 테어펠의 초기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뉴욕에 진출할때는 시사 주간지 타임즈의 전면에 등장했던 대단했던 가수 입니다. 2020년 메트에서 바그너의 <방황하는 화란인> 출연이 예고 되어 있었는데, 발목 부상으로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차르트도 당시의 관객 호응 등을 위해, 테너 아리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 돈지오바니>에 나오는 돈오타비오(테너)의 아리아 "Dalla sua pace"인데요, 이 곡은 최초 공연 시에는 없다가 이후에 추가로 삽입된 곡이라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테너 아리아 중에 테너 리사이틀에 공연되는 곡이 그나마 이 아리아와 마술피리의 "Dies Bildnis ist bezaubernd schon" 정도 인걸 생각해 보면 모차르트의 이런 배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DCaMVxjRs
다시 "피가로"로 돌아와 그 스토리를 보면 중세 시대의 악습인 초야권과 이 작품의 전편에 해당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이루어진 백작과 백작부인의 사랑이 식었다가 다시 피어나는 동안 생기는 에피소드와 러브라인, 그리고 피가로가 지고 있는 사채와 그를 해결하기 위해 발생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피가로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등 오페라 중에서는 상당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극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모차르트는 이 많은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다양한 중창을 통해 음악적으로 서사구조를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다양한 중창) 극의 구성 및 음악적 완성도도 상당히 높이는 그야말로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해결하는 대단함을 보여줍니다. (대사 처리를 일반적인 레치타티보로 하게 된다면 등장인물들의 많은 이야기들로 인해 음악 부분의 연결성이 떨어져 전체적인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피가로의 결혼>은 극과 음악의 일치를 통해 오페라의 완성도를 그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전혀 다른 새로운 지평으로 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이 발표된 그 이듬해 곧바로 <돈지오반니>가 발표됩니다. 이 오페라는 돈 후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당시의 일반적인 사고나 윤리의 틀을 뒤집는 스토리 덕분에 음악 자체의 얘기보다는 철학적 해석이 더 분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잘못을 뉘우치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반박하는 주인공을 지옥의 문이 열려서 끌고 내려가는 부분은 당시 구체제하의 계급사회가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하는 시대상황을 생각할 때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그렇지만 작곡가가 원했던 건 그런 철학적 분석이 아닐 겁니다.
(줄리니의 이 오래전 녹음은 많은 지지를 받기도 하고, 저 역시 최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악에만 집중해서 보더라도 이 돈지오바니 역시 아주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두 명의 바리톤 (또는 바리톤과 베이스)이 주인과 하인으로 등장하는 포맷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분량도 사실 주인공(돈지오바니)과 조연(레포렐로)이 별반 차이가 나질 않습니다. 거기에 3명의 소프라노가 등장하는 데 각각의 성격이 (드라마틱, 리리코 스핀토, 수브레토 - 소프라노의 목소리 스타일에 따른 분류로 아주 강하고, 강하지만 표현이 다양하며, 가벼운, 이런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확연이 틀린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각 소프라노의 파트너 격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사장(베이스) 돈오타비오(테너) 마제토(바리톤 또는 베이스)인데 기사장은 훨씬 무거운 음질로 노래하고(Dramatic basso profondo) 테너는 가벼운 성격(leggero) 그리고 바리톤 역시 가벼운 성격의 가수가 불러야 합니다. 돈지오바니는 기본적으로 높은 바리톤이 하는 것이 맞고 레포렐로는 좀 더 낮은 음역의 하지만 코믹하고 리드미컬한 목소리가 불러야 하는데, 이렇게 보면 등장인물마다 부여한 음악적 성격이 얼마나 서로 다른 지 알 수 있습니다.
(돈지오반니가 부르는 세레나데)
https://www.youtube.com/watch?v=INF9r5jju0A
(레포렐로가 부르는 카탈로그의 아리아)
현대의 완성도 높은 소설을 보더라도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의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해서 전체적인 구조가 완벽한 작품이 흔치 않은데, 이걸 음악적으로 균형을 잡고, 캐릭터간의 대칭적 관계를 음악을 통해 완성시켜 나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의 기반은 고전주의라는 형식미가 중요한 음악적 양식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균형과 대칭 등은 로스코도 아주 좋아한 컨셉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점 (단순하면서 균형과 대칭이 잘 이루어져 있는)을 통해서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음악가를 꿈꾸었던 위대한 미술가에게 영감의 샘물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마지막으로 <마술피리>가 있습니다. 이 <마술피리>는 독일어로 대사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독일 음악극인 징크슈필의 전통에 따라 음악이 수반되지 않는 순수한 대사 부분도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외의 지역에서는 이 대사가 삭제되고 연주되거나 현지어로 번안되어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 <마술피리> 역시 음악적으로 상당히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스토리 상으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조수미가 밤의 여왕을 맡은 솔티의 두 번째 녹음 음반입니다. 평론가들의 평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저는 역사상 성악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한 밤의 여왕을 한국인이 해낸 이 녹음을 제일 좋아합니다.)
1막과 2막에서 "밤의 여왕" 캐릭터의 성격이 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요 출연자인 <자라스토로>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등에 대한 여러 논란은 역시나 여러 가지 세계관을 대표하는 철학적인 분석으로 시끌벅적합니다.
마술피리가 등장하면 빠지지 않는 것 하나가 바로 '프리메이슨'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스토리에 3과 관련된 많은 내용 (‘세 개의 문’, ‘세 개의 계율’, ‘세 개의 교훈’, ’세 개의 시련)등을 프리메이슨과 연결하고, 서곡의 첫 부분이 3개의 화음으로 분리돼서 시작하는 것도 프리메이슨과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너무 억지스럽지 않은가 싶습니다. 만약 모차르트가 진짜 극 안에 프리메이슨을 넣고 싶었다면 모든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이렇게 뻔한 방법으로 집어넣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당시 유행하는 프리메이슨이 가지고 있는 이국적 분위기를 (모차르트도 프리메이슨의 일원이라는 소문도 돌았다고 하며, 진위야 아무도 알 수 없는) 오페라의 흥행 요소로 집어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모차르트가 의도적으로 했다고 하기에는 그의 wit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방법이니까요. 그리고 사실 스토리상의 3의 의미가 계속 나오는 것은 모차르트가 만든 게 아니고, 대본을 쓴 Emanuel Schikaneder인데 이렇게 대본에 계속 3의 의미가 나오는 것을 음악적으로 보여 준 것 일거라는 생각이 좀 더 원래의 모차르트와 가깝지 않을까요?
이렇듯 어떠한 스토리가 오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전주의 양식의 음악적 언어(simple and balanced)를 통해 재창조된 새로운 감정을 청중에게 불러일으킨 모차르트처럼, 로스코도 본인이 겪은 많은 인간적인 슬픔과 좌절 등의 많은 스토리를 자신이 창조한 단순화시킨 멀티폼(색의 블록) 이란 형식 안에서 녹여내어 그걸 보는 사람들이 로스코와 감정의 동화가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순간들을 창조해낸 인류 역사의 위대한 천재중 한 명입니다.
Red on Maroon 1959
위의 작품은 로스코가 런던 테이트 모던에 기증한 작품입니다.
원래는 뉴욕 시그램 빌딩에 오픈하게 될 포시즌즈 레스토랑으로 부터 의뢰를 받았던 프로젝트 였습니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제안을 받고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던 로스코는 그가 원하는 바를 그림으로 표현하더라도
포시즌즈라는 공간에서는 자신의 그림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프로젝트를 취소하는데요,
그가 원하는 것은 레스토랑에 오는 고객들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정신적 순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부자 고객들이 자신의 그림으로 부터 얻고자 했던것은 거장의 손길이 만들어 낸 고가 미술품이라는 부의 상징 이었다는 것을 알아낸 순간 바로 취소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프로젝트를 위해 작업했던 작품들중 일부를 영국 테이트에 기증하는데, 이는 당시 미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이 미국 미술관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에 대한 항거의 의미와 동시에 그가 존경했던
터너에 대한 애정이 합쳐진 결과라고 합니다.
터너가 이루어 낸 색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서 일까요?
로스코 역시 평생에 걸쳐 색들간의 관계나 조합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 온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렇게 거대한 색의 블록들을 심플하게 교차시키거나 대비시키거나 또는 조화를 이루게 하는 방법을 통해 그림을 보는 우리들의 감정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간혹 로스코의 작품을 보는 순간 그 앞에 주저앉게 되는 경험을 하는 분들이 계시는 데요,
아래 이미지는 제 지인이 MOMA에서 보고 주저 앉는 경험을 한 작품입니다.
Untitled(1969) 102*67
로스코 스스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나는 색과 형태의 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비극, 황홀경, 운명같이 근본적인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
- 많은 이들이 내 그림을 보고 울며 주저앉는 것은 내가 이러한 근본적인 인간 감정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관람자 각자의 다양한 경험이 로스코의 작품을 보는 순간 그 작품에 표현된 다양한 감정들과 공명을 시작하며 누군가는 울며 주저앉게 되고, 누군가는 망치에 머리를 맞은 듯이 온몸이 정지되는 듯한 느낌을 받고, 누군가는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져 나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텐데, 그런 관람자의 경험들이 로스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모차르트와 로스코는 형식이 가지고 있는 가장 단순한 요소들을 통해 인간이 가진 감정을 밑바닥에서 최상부까지 전부 보여 주고 있으며, 서로 다른 형태의 예술이라도 그 근원에서는 동일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정확하게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한국에서 열린 로스코전은 가보신 분은 다 아시는 것처럼 흥행에 성공한 5일장 분위기라 거장의 그림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기회가 생겨 로스코를 보러 런던이나 휴스톤에 갈수 있다면, 꼭 <돈지오반니>를 귀로 들으며 그의 그림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