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세계는 참으로 희한해서 본질을 알기 전에는 이것이 과연 미술작품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 같습니다.
유사한 예는 아니지만 잭슨 폴락 역시 저에게는 많은 궁금증을 일게 하는 그런 작가 중에 한 명입니다. 흘리고 뿌린다는 이미지가 (선입견) 너무 강해서 그런 회화의 기법 하나가 어떻게 미술이 된단 말인가 하고 궁금했었던 것인데요, 지난번 로스코와 고전주의 음악(모차르트)에 이어 미술과 음악의 관계에 있어서 또 하나 유명한 일화인 잭슨 폴락과 재즈에 대해 살펴보면서, 제가 느끼는 잭슨 폴락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상미술을 '본질에 대한 도전'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기 때문에, 몬드리안, 로스코 그리고 김환기 같은 단순함을 통해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의 명료함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잭슨 폴락은 음... 제가 내린 정의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던 작가입니다.
그러던 중, 잭슨 폴락과 프랙털과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프랙털이란 단어는 제 기억으로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대중에게 관심을 끌기 시작한 과학 용어입니다. 사실 소설 속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거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이 생소한 단어를 마케팅에 사용한 출판사의 아이디어 덕에 아이들을 위한 과학 만화 시리즈에 까지 등장하곤 했습니다.
프랙털은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를 말합니다. 자연물에서 뿐만 아니라 수학적 분석, 생태학적 계산, 위상 공간에 나타나는 운동 모형 등 곳곳에서도 발견되는 기본적인 구조이며, 이를 통해서 불규칙하며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상을 배후에서 지배하는 규칙도 찾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보여 드리면, 번개가 치는 장면을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 보면 그 각 부분들이 전체 번개의 모습과 동일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상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복잡한 전체 구조가 아닌 확대된 일부분을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요?
이러한 혼돈 이론을 잭슨 폴락의 페인팅에 적용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그의 작품들 전부는 다 프랙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잭슨 폴락의 위작 분석에도 이 프랙털 분석법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현상을 최초로 연구한 팀은 잭슨 폴락 그림이 가지고 있는 패턴의 프랙털 현상을 찾으려는 시도를 통해 그의 작품성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데는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으며, 오히려 폴락의 그림이 실제 자연이 보여주고 있는 많은 프랙털 현상을 이미지화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어느 것이 그의 작품이고 어느 것이 실제 자연현상을 찍은 사진인지 조차 구분하기 어려운데요, 이런 관점으로 폴락의 작품을 바라본다면 제가 고집하고 있던 '본질에 대한 도전'이라는 명제가 폴락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위대한 예술인 자연의 모습을 그 만의 새로운 방법을 통해 정확하게 구현해 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해 자연이 가지고 있는 상생하기 위한 조화의 모습, 그러니까 각 객체들이 불규칙한 모습으로 커나가는 것 가지만, 결국은 전체를 이루기 위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삶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폴락과 재즈를 말씀드리려다 보니, 간단하게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되었는데요,
그가 재즈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리 큰 비밀이 아닙니다. 뉴욕의 유명한 재즈바에 자주 방문을 했다고 하고, 스스로가 찰스 파커, 엘라 핏제랄드 등을 좋아했다고 밝혔으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비밥 스타일의 음악을 들으며, 그 리듬감에 맞추어 물감을 뿌리고 흘리는 작업을 이어나갔다는 기자들의 증언도 많습니다.
오래전, 한 유명 사물놀이패의 공연 뒤풀이에 따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감상하려면 (그러니까 쉽게 말해 어떤 게 잘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알아내는지) 어디에 초점을 맞춰 봐야 하는지 였습니다.
팀 리더인 꽹과리 연주자는 독특한 설명을 했는데요, 사물놀이는 재즈와 비슷하다. 맘대로 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엄격한 음악적 룰이 있고 그것을 지켜나간다. 그러나 연주를 완성하기 위해 매 순간, 나 이외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고, 거기서 생기는 순간의 빈 틈을 메워나간다는 생각으로 연주를 한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좀 더 쉽게 부연 설명을 해주었는데요, 누군가가 템포가 빨라지면 그 옆에서 좀 더 느리게 당겨 주고, 누군가가 쳐지고 있으면 강하게 밀어주고 하면서 순간순간 조화를 잘 이루어 나가는 팀이 좋은 연주를 하는 팀이란 말이라고요.
이 설명은 사실 재즈 연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재즈도 즉흥연주라고 하지만, 정해진 룰이 있고 (베이스) 그 위에 각 악기들이 서로 어울리며 곡을 완성해 나갑니다. 누군가가 쳐지만 다른 악기가 나서 주고, 누군가가 나서고 있으면 잠시 빠져주면서, 곡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지요.
잭슨 폴락이 작품 활동을 하는 시기에 유행했던 재즈 스타일은 Bebop이었습니다. 이전의 빅밴드 스타일이 전체적인 균형감을 중시하고 댄스곡 풍의 리듬을 주로 연주했다면, 찰리 파커가 열었다고 알려진 비밥의 시대는 좀 더 개별 악기의 개성이 중요시되고, 그러다 보니 위에서 설명한 각 악기 간의 조화가 상당히 중요해지는 스타일입니다. (거기에 복잡한 조성 및 빠른 템포 등 잭슨 폴락의 작품 경향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잭슨 폴락을 설명했던 것을 여기에 대입해서 굳이 그가 개별체의 조화를 중시했으니 비밥을 좋아했다고 해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잭슨 폴락은 그림에 인간의 본성과 음악적 리듬을 담고 싶어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런 그의 본성과 시대적 유행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어떤 문화적 사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지적인 탐구 방향으로 새로운 문화 사조가 펼치지는 걸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잭슨 폴락은 이전 시대의 큐비즘 등으로부터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고 느낀 동시대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이런 음악을 좋아하고, 이런 새로운 미술 세계를 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잭슨 폴락을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재즈에 맞춰 춤을 추듯 캔버스 위에서 움직이다가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는 생각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샘 록웰의 dance와 비슷해 보입니다.
샘 록웰은 다양한 영화에서 그 만의 독특한 dancing을 보여주는 데, 그것을 통해 장면의 연결과 전환, 그리고 다른 배우들 연기와의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재미있는 장기라고 생각됩니다.
https://youtu.be/_oyP0QHjty8
미녀 삼총사 2
https://youtu.be/3_nlWpT8Lz0
아이언맨 2
https://youtu.be/SB7Vb2_QpA0
댄스 모음
미녀삼총사, 아이언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등 샘록웰은 인물의 성격과 상대역과의 조화등을 이루는 과정에서 Dancing 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춤이 갖는 리듬과 템포를 통해서 배우 나름의 나레이션을 보여주는 건데요, 영화에서 대사나 장면만으로 만들어 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생성해 내는 특출난 재주를 지닌 배우인 것 같습니다.
그 만의 리듬을 통해 연기를 해나가는 샘 록웰의 춤추는 장면에서 우리는 위대한 작가 잭슨 폴락이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자신의 작품을 그리기 위한 리듬과 템포를 찾고 있는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로스코나 몬드리안이 자신들이 보는 세계의 본질을 단순화를 통해 통일감과 균형으로서 보여주고 있다면,
잭슨 폴락은 무질서하고 복잡해 보이는 모습을 통해 (자연을 닮은) 그 속에 속해있는 각각의 개별자들이 조화를 통해 전체를 이루어 나가는 방식에 대한 다른 방향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