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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un 04. 2019

화려함이 주는 즐거움들

데이비드 호크니와 오페라들

 2019년 8월 4일까지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는 서울 시립 미술관과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가 공동으로는 주최하는 '데이비드 호크니'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시회의 마케팅 포인트중 하나는 '가장 비싼 작가'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5월 마침내 호크니가 가지고 있던 현존 작가 작품 중 최고가 타이틀은 미국의 제프 쿤스에게 넘어갑니다. 그의 작품 'Rabbit'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1.1 Million USD에 낙찰된 것이죠.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에게 호크니가 어떻게 비치고 있나에 대한 의문이 생겨서였습니다.


 호크니 연구 관한 권위자인 마르코 리빙스턴은 호크니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호크니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이며 이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묻고 있습니다.


'사회가 호크니를 진지한 미술가라기보다 그저 사회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작품에 관심을 표하면 저술가와 출판인으로서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귀스타브 쿠르베 시대 이래로 그리고 20세기에는 전력을 다하는 진지한 미술가는 시대의 취향과 상반된다고 여겨진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논저 예술의 비인간화에서 진지한 새로운 예술은 비대중적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반-대중적'이라는 건해를 제시했다. 이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예술의 진지한 업적은 그 인기와 반비례하여 평가된다. 이 둘이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이유는 아마도

호크니의 작품은 구상미술이어서  어떤 측면에서는  접근이 수월했고 그리도 여가와 이국적인 정취라는 내용이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그의 작품에 진지한 목적의식이 있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에게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일반 미술 애호가들에게) 호크니는 어떤 작가일까요?


  그럼 본격적으로 호크니의 그림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호크니의 대표작인 'A bigger splash'는 미술 애호가를 자처했던 저에게 큰 장벽이었습니다. 김환기나 로스코 작품들과 같이 우리의 감각을 혼동시키고 있는 사물의 외관을 정제해 나가면서 대상의 내부에 실제 자리 잡고 있는 본질을 보여주는 방식을 선호했던 지라, 호크니가 보여주는 단순화되고 밝고 그리고 고요한 이미지는 뭔가 계산이 안 섰던 것이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한 비평가들이 이야기하는 그림에서 다이빙 보드가 전체 구도를 어떻게 나누고, 좀 더 강력해진 색상 표현이 캘리포니아의 밝음을 나타내고, 풍덩하고 일어나는 물결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색상과 흰색의 물감을 어떤 기법으로 어떻게 썼는지는 사실 일반 애호가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 미사여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이 자신은 호크니를 좋아한다며, 가장 좋아하는 작가 3명 중에 하나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왜 호크니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습니다.


 "호크니의 화면은 고요하고 풍요로우며, 사막 위에 펼쳐진 끝없는 하얀 모래밭과 그위로 나란히 전개되는 푸른 하늘 같은 끝없는 자유가 느껴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들이 아주 럭셔리하다는 말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호크니가 런던에서 미국으로 특히 캘리포니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정확하게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느 정도 고민이 해결되며 저에게 남겨진 호크니의 잔상은 바로 "위대한 개츠비"와 "싱글맨"의 합성 사진이었습니다.


 디자이너 톰 포드가 영화감독으로서 창조해 낸 캐릭터인 '조지'는 아주 세련된 게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영화 속에서 그가 가진 삶에 대한 허무나 상실은 제거를 하고, 오롯이 캐릭터의 장점인 세상의 아름다움(풍요로움과 고요함)에 대한 안목만을 가지고 와서, 옆집 이웃인 개츠비가 주최한 궁극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는 파티 장면을 바라본다고 상상을 해 봅니다.


싱글맨 조지와 짐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캔버스 위에 존재하기에 시간마저 멈출 수 있습니다. 모두의 잔에 샴페인이 흘러넘치는 바로 그 장면이 등장합니다. 수영장에는 하얀 포말이 일고 화면 전체에 샴페인의 기포들이 넘쳐흐르는 바로 그 시점에 화면을 pause 시키고, 파티에 참가한 초대객들을 하나씩 캔버스에서 제거해 냅니다. 그리고 '조지'가 사랑했던 그의 연인 '짐'의 그림자를 그림 속에 집어넣고, 짐이 그 매력적인 몸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리스 조각 같은 모습을 뽐내며 파란 수영장으로 풍덩하고 다이빙을 하는 바로 그 순간 눈을 떠 보면, 우리 눈 앞에는 죽은 '짐'의 영상은 보이지 않고 고요한 수영장의 물결과 대비되는 하얗게 솟아오르는 물보라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팜스프링 스타일의 고급스러운 '미드 센추리 모던' 양식의 고급 건축물이 들어오게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건축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 정도의 상상력은 다들 가지고 계실 테니까)

 

2013년 위대한 개츠비


1974년 위대한 개츠비


 이렇게 'A bigger splash'를 해체하고 재구성해보니, 호크니의 평면적인 그림에서 오히려 움직이는 동영상을 연상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동영상은 저에게 사막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모습 (고요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끝없는 자유)를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호크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가 사진처럼 보인다고 여깁니다. 나는 사진이 대부분 맞지만, 그것이 놓치고 있는 약간의 차이 때문에 사진이 세계로부터 크게 빗나간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 내가 찾고 있었던 바입니다'

 그는 또한 우리는 기억과 함께 본다라고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즉 같은 공간에 대한 당신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그의 고백을 토대로 본다면, 사진과도 같은 A bigger splash 안에는 사진기로는 포착할 수 없는 그 시간과 기억에 대한 부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관람자로서, 나의 기억과 나의 상상을 추가한 사진으로 치환해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호크니와 오페라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기본적인 호크니에 대한 이해 (제가 하고 있는 이해)를 먼저 보여드렸습니다.


 호크니는 12살 때 처음으로 부모를 따라서 오페라를 관람한 이후 오페라와 사랑에 빠졌다고 밝히고 있으며, 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이주를 한 이후부터 꾸준히 오페라를 보아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약 20여 편의 오페라 무대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가 한 최초의 작품은 글라인드본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된 스트라빈스키의 "The rake's progress"입니다.

글라인드본 극장은 우리에게는 친숙치 않지만 영국에서는 축제 극장 (페스티벌 같이 특정한 시기에 벌어지는 행사 시기에만 공연을 주로 하는)으로 꽤나 유명합니다.  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덕에 영국 귀족들의 별장들과 가까워서 그들은 겨울에는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로 그리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이 글라인드본 오페라 극장에서 소셜 활동을 유지합니다.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아가사 크리스티도 그의 자서전에서 이 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호크니는 학창 시절 그림 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미대 판화과에서 무료로 제공해 주는 판화판을 가지고 판화에 처음 입문을 하게 되며, 이 시기에 호크니는 미국 출신 작가인 키타이로 부터 스토리와 이미지의 연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그 과정에서 선을 주로 사용하는 판화라는 방식이 스토리를 이미지로 옮길 수 있는 좋은 매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작품으로 탄생된 것이 바로 rake's progress 입니다.

 The Rake's progress 는 원래 18세기 영국의 작가 윌리엄 호가스의 연작 작품으로, 스토리와 이미지를 연결한 좋은 작품 예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알런 파커는 이 윌리엄 호가스의 Rake's progress가 최초의 스토리 보드라는 이야기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 역시 이 윌리엄 호가스의 작품에 베이스를 해서 만들어진 오페라 대본을 가지고 동명의 오페라를 완성해 낸 것이니 사실 호크니의 첫 오페라 시도는 그와는 많은 인연이 있는 작품인 셈이었습니다.


 

윌리엄 호가스 작

 

호크니 작


오페라 무대 이미지 by 호크니
오페라 세트 by 호크니



호크니는 자신이 이런 무대 미술에 참여하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무대는 공간 속에서 환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무대는 3차원적인 회화에 매우 가깝다'


 그는 계속해서 글라인드본에서 모짜르트 마술피리를 작업하게 됩니다.






 The rake's progress에서 판화적인 기법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면 마술피리에서는 좀 더 다양한 그의 회화 양식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의 무대 미술에 대한 관점은 점차 완성이 되어 나가고 마침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업할 때는 화가로서 3차원적인 회회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완벽에 가까운 무대 미술가로서 능력을 보여주게 됩니다.


 1987년 LA opera house premiere 버전에서 처음 선보인 호크니의 무대는 이후 시카고 리릭 오페라 등으로 옮겨가 재 공연되게 됩니다.



호크니는 이 트리스탄과 이졸데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가상의 효과를 지니고 있는 소품들을 활용해 3차원 원근법을 실현해 내고, 무대에 비치는 빛의 효과뿐 아니라 광원이 어디에 위치해야 실제적인 공간감이 생기는지에 대한 이해를 실제 구현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약 20여 편의 오페라 무대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거대한 작업을 통해 그의 작품이 캔버스 크기에 국한되었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고, 또한 평면을 통해서 표현했어야만 했던 회화의 한계에서 벗어나 실제로 입체적인 작업을 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호크니는 대중에게 진지한 예술가로서 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접근된 경향이 컸던 이유는 그 자신의 자신감과 대중과의 거리감에 거리낌이 없었던 성격도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서민 예술이기보다는 귀족과 부자를 위한 예술로 오해를 받아 왔던 오페라를 좋아하는 특성 등에서 받은 영향으로 화려함과 부유함이라는 대상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진지한 예술가로 평가받던 동시대 혹은 선배 작가들에 비해 거부감이 없었던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음악극이라는 형태의 장르는 일부의 특권층을 중심으로 시작되어서 Music Hall이라는 물리적 형태 변환을 거쳐 현대에 와서 Musical로 발전하기까지 과정을 보면 우리가 오해하는 것보다 훨씬 대중적이며, 그리스 비극에 대한 니체의 해석( 현실에 대한 아픔을 잊기 위해 신들의 모순과 비극을 보게 된다는)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당극이 양반을 대중의 즐거움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처럼 오페라 역시 많은 대중들에게 상류사회 역시 대중의 삶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보편성을 부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호크니의 많은 작품에서 풍요와 부가 표현되었다는 것이 반드시 그가 그런 문화에 대한 취향과 동류의식을 가져서만이 아닌, 일반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소재를 통해서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이미지를 구현한다고 보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런 생활을 실제 누리지 못하더라도 많이 동경하고 있다는 실체와 현실을 그저 작가는 자신이 보고 있는 대로 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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