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Apr 14. 2021

<나의 엄마>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되는 <나의 엄마 - I am Mother>는 제목에서 갖게 되는 선입견과 달리 인류가 멸망한 이후의 시대를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SF 영화입니다. 


사실 넷플릭스 검색 화면에서 이 제목을 봤을 땐 그리 관심이 생기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한 지인의 추천으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막상 보고 나니 제 예상과 달리 아주 독특한 SF 영화였습니다.


전체적인 영화의 스토리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SF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최종 편을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도 <파운데이션>을 끝까지 완독 한 독자라면  영화 <나의 엄마>가 어떤 결론을 향해 나아갈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예상될 듯한데,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지점은 그런 결론을 예상하는 것에 놓여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단편영화도 아닌데 등장인물은 단 2명뿐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는 Mother는 극 중에서는 로봇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두 명의 여성과 로봇, 지구가 멸망한 이후 새로운 인류를 재건하기 위해 남겨진 이들을 통해 과연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무엇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까?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행동이란? 이런 이타적인 행동이 아무런 오류 없이 프로그램만으로 AI에게 녹아들 수 있을까? AI는 결국 인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서게 될 것인가?


그런데 이런 많은 의문점을 넘어서 정작 머릿속 한복판을 차지하기 시작한 궁금증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과연 감독은 'Mother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사회 속에서 집단으로 생활하는 현재의 우리 인류는 사회생활을 통해 집단으로서 습득해 나가는 지식들이 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거울삼아 나를 돌아보며 배우고 반성하고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결국 내 생의 일부가 되어 가는 것이지요. 엄마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사람들, 나보다 먼저 아이를 기른 사람들, 그리고 나와 함께 아이를 낳아 나와 같은 시기에 아이를 길러내는 부모들. 사회 속에서 우리는 결코 혼자이지 않죠. 절대 혼자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의 엄마(로봇)와 딸은 아무도 없는 새로운 세상에서 로봇에 저장된 기계적인 지식만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나가야만 합니다.


되돌아보니 이브가 단지 최초의 여성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최초의 여자이자 동시에 최초의 엄마였던 이브, 그런데 생각해 보니, 훨씬 더 위대하고 더 많은 책임감을 짊어졌어야 하는 최초의 엄마라는 타이틀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방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MS의 본사에 위치하고 있는 이 차음 공간은 너무나 외부 소리에 대한 차단이 완벽해서 그 안에 들어가 있다 보면 자신의 혈관을 피가 흐르며 만들어 내는 맥박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완벽한 고요 속에서 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불안감 그 미지에 대한 불안감이 우리를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게 하는데, 아무도 없는 이 지구에 홀로 남아 엄마가 돼야 한다는 (새로운 인류를 키우고 보살펴야 하는) 그 막중한 부담감..




새로운 인류를 위해 최초의 엄마가 되어야 할 딸, 이 막중한 부담감을 이겨내야 하고 또 진정으로 자신의 후손들을 사랑해야 하는 그 딸의 동기부여를 위해 엄마(로봇)는 모든 것을 계획해 놓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신과 갈등을 빚고 있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여성까지 말이죠.


그리고 로봇은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며 완벽한 인류가 재현되도록 자신이 프로그램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로봇의 말처럼 정말 인류를 위해 완벽한 로봇이 가능한 것일까요?


영화는 로봇 역시 반복되는 학습(경험)을 통해 좀 더 완벽해져 나아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딸이 태어나기 전에 많은 태아들이 선택되었지만 그들은 재로만 남아 있습니다). 


동시에 그런 반복이 요구하는 시간으로 인한 사용년수의 누적으로 로봇에게도 기능적인 퇴화가 생기고 있는 부분도 보여주고 있죠.


이 많은 이야기들을 한정된 공간 속에서 치밀하게 펼쳐나가는 감독(극본 역시 공동 집필하고 있습니다)의 창의력이 아주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너무도 많은 연기를 피워내는 바람에, 정작 아궁이 위에 끓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요리가 완성된 이후에 그 냄새를 정확히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로봇의 정체성에 대한 AI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는 영화로 보이겠지만, 저에게는 다시 혼자가 된 하지만 엄마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있는 딸이 짊어질 최초의 엄마가 걸어가게 될 대 서사시의 서문으로 읽히는 영화였습니다. 그렇게 돼야만 영화의 제목도 번역된 <나의 엄마>가 아니라 원제인 "I am Mother"인 것이 더 타당해질 것 같습니다.




과연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다시 사회를(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이 인류에게 내린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인지? 영화가 끝난 후까지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드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이어로위츠>영화 속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