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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02. 2021

<마이어로위츠>영화 속 영화

Feat. Cindy Sherman (신디 셔먼)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가 극 중 주인공인 해롤드의 손녀 일라이자가 만드는 단편영화들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군데군데 삽입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라이자는 극 중에서 할아버지 해롤드가 조각 강의를 했던 Bard College에서 Film을 전공하는 대학 새내기로 등장합니다)



일라이자는 아빠와 함께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딸입니다. 그녀가 유지하고 있는 이런 스위트한 부녀 사이는 5살 먹은 유치원생이 아닌,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해서 독립하기 시작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놀랍게 다가옵니다. 더군다나 아빠 대니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작은 아버지 매튜와도 문자를 주고받고 있으며, 고집불통인 괴팍스러운 할아버지에게도 많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죠(영화는 엔딩에서 일라이자가 친구들과 휘트니 뮤지엄을 찾아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조각 - 해롤드의 마지막 자존심일 - 이 잘 보관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장면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다정다감한 소녀가 1인 다역을 맡아서 연출과 편집까지 해낸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영화 속의 단편영화는 하지만 본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녀의 성격과 달리 무척이나 과감한 이야기와 그로테스크한 장면들로 가득 찬 실험영화인데요. (본인의 아빠, 삼촌, 고모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리는데 심지어 누드와 정사씬이 등장하기도 하네요)






이렇듯 독특하고 난해한 B급 아방가르드 무비가 왜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속에 삽입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일라이저의 캐릭터 보여주기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삽입 시간과 횟수가 많은데요,


감독이 던지고 있는 힌트를 찾다 보면, 영화의 오프닝 부분에서 이런 장면과 만나게 됩니다.


할아버지 해롤드의 뉴욕집에 도착하지만 주변에 주차공간이 없어서 대니는 계속 짜증 섞인 욕설을 하며 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아빠의 모습을 보던 일라이저는 갑자기 아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요 


"Do you know the photographer Cindy Sherman?" (자막은 좋아하냐고 나오네요)


"Yes, I like Cindy Sherman" "(작가를 아냐고?) 당연하지 나 신디 셔먼 좋아해"


(오호, 아빠는 딸에게 이미 2년 전에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딸은 아빠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다정다감한 그리고 기꺼이 아빠와 함께 피아노 앞에 앉아서 2 중창으로 노래를 부르던 딸조차 아빠의 2년 전 이야기는 기억에 없네요. (사실 이런 부분이 이 영화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극작가로서 노아 바움백이 보여주는 천재성이죠. 많은 평론가들이 즉흥적인 대사라고 생각하는 엉뚱하게 등장하는 영화 속의 모든 수다들은 정밀하게 계산되어 전부 각본에 등장하는 라인들이라고 하는데요, 전혀 영화의 전체 내러티브와 상관없을 것 같이 보이는 이런 작은 수다들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냇물처럼 점점 모여서 커다란 강을 만들어 내고 서서히 엔딩이라는 영화가 향하는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게 됩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기적이고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할아버지 해롤드의 잔재가 전체 가족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위와 같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사랑스러운 딸 조차 아빠와의 대화중에서 자신의 판단하에 필요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귀를 닫고 있었던 것이죠 - 대니의 대사"If he isn't a great artist, that means he was just a prick"처럼 이들은 모두 자기애가 강한 재수 없는 괴짜이거나 아니면 진정한 예술가인 것일까요?)

 

 결국 대니는 이런 아버지로 붙어 물려받았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원죄(예술성을 빙자한 재수 없는 괴짜스러움, 못된 성격 등등)에 대해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서 아버지 해롤드를 향해 "I forgive you, forgive me. Thank you and Goodbye"라고 말하며 그 짐을 벗어던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과정들이 영화 전체에 걸쳐 치밀하게 계산된 일상의 대화(수다)들을 통해 잔잔하게 보입니다.




권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우리의 모습에서 정체성을 발견하자


이렇듯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 감독이 던져내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적인 장면들은 (모마에서 입장을 거절당하는 장면이나, 시고니 위버가 등장해서 작가와 인사하는 부분 등) 상당한 블랙코미디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우디 알렌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감독이 원하는 영화 스타일일까요?)


이런 방식의 원조는 카프카의 소설에서 그리고 현대로 오면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권위의식이 만들어 낸 사회 시스템 속에서 고결한 예술적 그리고 철학적 허상이라는 허무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을 뿐, 그 실재는 사실 좀스럽고 재수 없는 괴짜로 등장하는 영화 속 예술가 아버지와 아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런 부자 관계에 존재하는 콤플렉스가 지니고 있는 지난한 역사를 극복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일라이자의 영화는 이런 극복을 독려하기 위한 또 하나의 메시지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방법론에 있어서 바로 사진작가 '신디 셔먼'을 오마주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관객들의 무의식 속에 신디 셔먼이라는 작가가 표방하는 기호(symbol)를 담은 아방가르드적인 단편영화를 삽입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던지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신디 셔먼은 누구일까요?




1. 가장 비싸게 팔린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중 한 명


Untitled #96, 1981. Chromogenic color print, 24 x 48inches


위의 사진 작품은 경매에서 팔린 가장 비싼 작품 10위안에 들고 있습니다. 


가장 비싼 작가가 가장 뛰어난 작가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런 사실은 사진이라는 예술장르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는 충분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2. 여성들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작가는 1977년에서 1980년까지 <Untitled film stills>라는 시리즈 사진 작업을 통해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작가 스스로를 모델로 삼아서 촬영된 사진이지만 작가는 이 작품들이 "Self-Portraits"임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50~70년대 사이의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 속 상황을 재구성하고 그런 특정 장면에 포함되어 있을 법한 여성 배우의 역할을 작가 스스로가 맡고 있는 방식을 통해,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여성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그리고 사진 속의 특정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그 상황 전과 후에 걸쳐 어떻게 취급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내며,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 상품화되는 여성의 모습을 망가진 인형들을 통해 재구성한 <Sex pictures> 시리즈 역시 미술계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입니다.


   


작가는 이런 망가진 모습의 인형들이 바로 많은 남성들이 바라보는 포르노 속의 여성의 모습이라며, 이 사진들을 통해 다시 포르노 속의 여성들을 본다면 그들의 망가지고 상처 받은 모습에서 구토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밝힌 적도 있습니다.




이런 신디 셔먼의 작업 방식을 오마주한 일라이자의 영화 속 영화는 그렇기에 일라이자가 1인 다역을 맡아 다양한 전통적 캐릭터의 특징을 뒤틀고 병치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렇듯 사회 속에 개인들이 보이는 모습과 실제로 개개인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그려내고자 했던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필수조건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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