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뭐니, Money~~~

2022년 여름

by 아버지의 일기장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여~" 어릴 적부터 자주 들어온 어른들의 금언이다.


좀 더 이 말의 맥락을 분석해 보면, 있다가 없는 것도, 없다가 있는 것의 주어는 "돈"이 맞는데, 그 주체는 사람이다.


돈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고 그것을 가졌던 사람의 처지가 바뀌는 것이다. 그런 말이 생겨난 이유를 생각해 보면 대략 80% 정도는 있다가 없어진 사람을 위로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고, 20% 정도는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언제든 없어질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돈의 힘은 너무 막강해서 인류 가운데 그 힘을 우습게 알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법정스님 급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그 위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본인의 DNA 중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 거기서 더 나아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더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 소유한 것을 가지고 휘두르고자 하는 사람, 더 소유하고자 하나 딱히 방법이 없는 사람 등등 돈을 축으로 사는 방식이며 만족감 갈등 등의 크기가 달라진다.


나름 돈이라는 게 있다가 없어보니, 결국 인간 사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지만,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다 거기서 이탈해 나와 그곳을 다시 돌아보게 된 순간 내가 과연 뭘 하고 살았던 건가라는 생각도 하고, 전직 교사 전직의사 전직판사들과 다르게 전직 대표는 참 비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큰 차이가 있는 것이 그네들은 나이가 들어 은퇴를 했지만 자기 자본을 까먹지 않았고 전직 대표, 더하여 망한 사장네들은 금융자본이 다였기에 모든 것을 까먹어 버린 허명만 남은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성경에 쓰인 바로는 예수께서 나지막한 언덕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하셨다. 어릴 적부터 알던 얘기지만 지금까지 명확하게 이건 이런 뜻이다 하고 규정짓질 못하겠다.


과연 마음이 가난하단 게 뭘까?


마음에 개기름이 흐르지 않고, 번들거리는 탐욕으로 넘쳐흐르는 마음이 아닌 최소한의 삶의 여유에도 만족하는 것? 절대적 기준과 상대적 기준으로 나눈다면 이 정도면 마음이 가난한 거라 쳐 줄 수 있어라는 가난한 상태의 기준점은 누가 어떻게 잡아주지? 상대적으로 생각하면 그나마 규정짓기 조금 편하긴 한데 세상 사람들 중 주변과 비교하지 않거나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아 저 사람은 진짜 물욕이 없어"하고 얘기할 수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느껴지기에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닌 게 틀림없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천국이 그런 사람들의 것이라 했는데. 죽어서 가는 그런 천국 말고. 가족과 소소하게 기쁨을 나누고 무엇인가 더 가지지 못해서 안달하지 않는 그런 천국이 오늘 저녁에 또 내일 저녁에도 임한다면 그게 아마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나 싶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한 막내아들이 지방의 국립대학에서 전통금속 공예를 공부하고 있던 작년 말 아빠의 생일을 앞두고 전화로 야심 차게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고 기대하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폭설로 인하여 생일날 상경이 무산되고 선물 전달 또한 못 받았다.


나는 이전처럼 초상화를 그려준다거나, 지금도 최애 잔으로 쓰고 있는 술잔을 만들어 주거나 하는 류의 선물을 주려나 보다 하고 짐작하고 있었다.


몇 주 뒤 설날, 100세를 넘기신 어머니 댁에서 세배가 끝난 후 문제의 막내가 내게 다가오더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뭐냐? 그랬더니 생신날도 못 오고 설날이고 해서요... 한다. 난 그런가 보다 하고 받은 봉투를 뒷주머니에다가 집어넣고 형들과 술잔을 마저 기울였다.


어머니 집에서 돌아오는 길.

일찍 독립한 첫째도 둘째도 약속이 있어 자기 갈 길들 가고 막내마저도 학교 기숙사로 바로 내려가 버려서 운전대를 잡은 집사람이나 옆에 앉은 나나 뭔지 모를 허허로움을 내색 않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집을 향하던 중, 도착 무렵 마침 문을 연 가끔 가던 정육점이 보이길래 내가 소고기나 사서 와인이나 한잔 더하자 하고 집사람과 문 닫을 채비를 하고 있는 매장엘 들어갔다.


안심 조금과 등심 조금을 사고 젊은 사장한테 우리 아들이 준 세뱃돈으로 결재하겠다고 자랑하면서 봉투를 열어보니 수표 한 장이 들어있다. 난 당연히 십만 원권 수표이겠거니 하고 그걸 꺼내 지불을 하고 거스름 돈도 야무지게 챙겨 받아 나왔다.


차에 시동을 거는데 아까 그 사장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아조씨~~~ 이거 백만 원짜리예요~~


순간 입에서 학교로 내려간 아들을 향해 이 자식 미쳤나 봐? 소리가 나왔다. 집에 와서 사건 당사자와 통화를 했는데, 일본에서 전시회를 한 실적으로 장학금 150만 원을 받았는데, 그중 2/3를 아빠를 준거였다.


집에서 충분한 지원도 받지도 못하고 춥고 배고픈 입장에서 갑자기 생긴 현찰 150... 그중에 100을 보낸다? 나는 받았는 줄도 모르는 돈인데?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그 정도 비율로 내가 내 부모님에게 해본 적이 있었던가? 부끄럽다 아들한테...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인 우리 막내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회사가 망하고 나에게 붙은 수식어인 회사 말아먹은 남자. 집구석의 돈까지 빚잔치 하는데 가져다 쓴 덜떨어지고 영악하지 못한 얼치기 낭만주의자였단 자괴감. 그로 인해 점점 섬이 되어가고, 나를 향한 익숙지 않은 무시와 무관심에도 분노보단 그런가 보다 하며 덤덤함을 택하고 애써 못 본 척, 모른 척하며 자존감을 땅에 처박아 버린 내게, "아 내가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 하는 자각을 준 소중한 사건으로 이 날의 일은 내 맘에 깊게 새겨졌다.


그중 일부만 받고 나머지는 다시 돌려보내는 걸로 마무리했지만 더 큰 잔액으로 남은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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