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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Aiden
Sep 03. 2024
이 정도면 조기교육 성공 아닐까?
여자애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당신은!
요즘 나의 일과는 딸아이의 등교 및 하교와 함께한다.
최근에는 슬슬 아빠가 마중 나오지 않더라도 혼자서도 오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딸아이지만, 왠지 아직은 조금 더 딸아이의 어리광을 보고 싶은 아빠의 미련인지 별다른 일정이 없을 땐 딸아이의 등하교를 책임지려고 한다.
딸아이의 하교를 기다리며... (feat by. wife)
함께하는 시간 만큼
아이는 요즘 들어 부쩍 안겨들고 뽀뽀가 늘었다. 심지어는 수염이 멋지다며 자르지 말라고, 자기도 수염이 났으면 좋겠다는 망언(?)까지 아빠의 마음을 녹이는 터다.
그리고 아빠가 하는 건 하나같이 다 함께 하고픈 모양인지 최근에는 프라모델을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지난번 함께했던 반다이 엑스포의 프라모델 조립 체험 이후로 내가 사각사각 프라모델을 깎고 있노라면 옆에서 잔소리처럼 속삭였다.
"아빠 장바구니 담은 거 주문했어?"
"어, 응 쉿,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택배가 오면 빤히 들킬 비밀이지만, 적어도 배송이 오기 전까지는 와이프의 눈총을 유예받고 싶었다.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던가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그리고 마침내 택배가 도착할 무렵, 안타깝게도 아이는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예전 같으면 나는 출근을 해야 하기에 한동안 아이와 생이별한 격리생활을 했겠지만 이제는 뭐든 어떠랴, 아픈 딸아이가 외롭지 않게 더욱 안아주고 함께 있어주는 게 가능했다.
고열이 오르고 식욕이 떨어져 기운이 없을 때도 아이는 내 품을 파고들었다. 휴직이 아니었다면 아이를 밀어내고 안아주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다시금 지금의 상황이 감사하다.
딸아이가 갖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프라모델
그렇게 며칠을 고생한 뒤 딸아이의 컨디션이 나아지고 난 뒤에 선물처럼 꺼낸 프라모델.
아직 미열이 가시지 않은 몸인데도 한사코 오늘 다 만들겠다며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꼬물락 댄다. 힘을 줘야 하는 부분이나 어려운 부분은 아빠한테 도움을 청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집중력을 보이는 아이.
내심 편견 담은 마음으로 걱정반, 여자 아이에게 로봇에 흥미를 들이게 하는 게 좋은 일일지 저울질하고 있을 무렵에 아이는 다 만든 프라모델을 다다다다 종종걸음으로 자기 방에 갖고 들어가더니 잠시 뒤에 아빠를 오라고 소리친다.
딸아이가 마련한 프라모델 전시구역
"아빠! 여기가 내 건담 전시하는 곳이에요"
뿌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기가 막혀하는 와이프에게 웃음 가득한 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조기교육 성공 아닐까?"
"아니 여자애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당신은!"
아무래도 꼰대는 나 혼자만이 아니었나 싶다가 불현듯 내 방의 프라모델을 떠올렸다.
나의 프라모델 컬렉션 (일부...)
아무래도 와이프는 고리타분한 성 역할에 대한 고민보다 부녀간에 쌍으로 하는 짓이 기가 막힌 모양일지도 모르겠다.
뭔들 어떠리, 아이에게 아빠를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함께한 평생의 추억을 쌓아줄 수 있다는 지금의 현실에 감사해야지.
그리고 여운처럼 와이프의 걱정 어린 한마디가 나를 더욱 미소 짓게 만들었다.
"아이가 만든 건담 전시공간에 빈자리가 많은 건, 아빠처럼 채워 넣겠다는 소리일까?"
우리 딸... 행복한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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