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도 어느덧 두 달째 돌입, 내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먹는 약이 줄어들었다는 것.
기본적으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약에 대한 거부감이나 과도한 걱정을 접어두는 게 맞기는 하겠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내심 걱정이 되지 않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리라. 마약성 약물에 대한 의존성 문제나 장기간 약물 복용에 따른 간 건강 문제 등등.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당장 주저앉는 것보다는 낫기에 애써 모른 척하는 불편한 걱정들이다.
"가슴 두근거림이나 수면장애도 거의 없어지신 듯 하니, 이제 약을 좀 줄여보는 건 어떠세요?"
그러던 와중에 의사 선생님의 제안은 한줄기 희망처럼 보였다.
'나도 나아지고 있구나, 쉬기를 정말 잘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낮에 먹는 신경 안정제를 줄이는 거랑, 밤에 먹는 수면 유도제를 줄이는 거랑 어떤 거를 해보시겠어요?"
"그래도 최근엔 잠은 그럭저럭 잘 자는 편이니 수면 유도제를 줄여보겠습니다."
오전엔 와이프와 함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신경 안정제를 줄이지 못한 건 이제는 비교적 잠을 잘 자는 것도 있지만, 아이와 와이프도 잠들고 혼자만의 시간이 될 때마다 불현듯 떠오르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당장의 부담과 내일의 걱정이 없는 휴직생활이니 나아지고 있지만 내년 복귀가 다가올 즈음 다시 나빠지지는 않을까? 이런 쉼에 익숙해져 복직하고 나서 조직에 다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이라면 쓸데없는 걱정.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태복음 6:27
미리 걱정한다고 뭐 달라질 일이야 있겠나, 달라지게 할 수나 있을까? 닥친 뒤에 버둥거려도 늦지 않을 것을...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한번 상념에 사로잡히면 헤어 나오기 힘든 모양이다. 게다가 마음의 감기에 걸린 정신질환 환자일수록 더더욱.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동안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던 과거의 나는 내가 앞으로 가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미리 끌어다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말도 안 되는 걱정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자신감에 총량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출하듯 미리 끌어다 쓰는 게 무슨 헛소리일까.
하지만 늘 성공만을 바라보며 외줄 타기처럼, 넘어지면 실패라고 여기면서 모든 일에 완벽하려고, 최선을 다하려고 자신을 깎아내며 시간을 보내왔던 나이기에 이런 긴 쉼이 오히려 부담으로도 느껴지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신경 안정제는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겠다. 혼자만의 시간, 교통사고처럼 불현듯 머릿속을 채워가는 불안감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 내려놓아야 하는 걱정이라는 걸 알지만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고처럼 내가 어찌하지 못하기에 더더욱 목이 멘다.
그리고 이 상념이 나를 지배하면 간신히 찾은 수면도 다시 잃어버릴까 더욱 두렵다.
종로 공예박물관에서 도자기 체험을 하고 난 뒤 돌담길에서...
그러니 당분간은 잡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좀 더 바쁘게 지내보려 한다.
언젠가 고통이 나를 찾아오더라도 이겨낼 추억을 쌓기 위해서. 인간은 힘들 때마다 행복한 추억을 되새김질하면서 위로를 받고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