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he 하거나 Brand-New 한 것들의 함정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장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게 바로 이 경우인데, 평소 이야기를 나눠보면 분명 어느 정도 분석력도 갖추고 있고 그만한 실력도 받쳐주는 친구인걸 아는데 정작 포트폴리오를 만들다 보면 좀체 방향을 잡지 못한다.
수년간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며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이런 친구들의 공통점은 상당히 트렌디 Trendy 하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옷을 잘 입고 분위기가 세련되다는 그런 게 아니라, 프로젝트 주제 선택에 있어 상당히 신선도가 높은 주제를 들고 온다는 이야기다. 분명 최근 화두가 되고 있거나 사회적으로도 각광받는 그런 주제를 선택한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하다. 그만큼 시장의 시류나 분위기를 빠르게 캐치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간접적인 어필과 함께, 그렇게 화제가 되는 주제는 평가관으로부터 공감을 받는 것도 유리하니 말이다.
다만 이게 자칫하면 상당히 니치 한 Niche 영역으로 들어가거나 지나치게 새로운 Brand New 소재일 경우에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 채식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거와 달리 근래에는 식량 생산의 환경이 고도화되면서 육류의 생산과 접근이 매우 손쉽게 되었고, 식단의 서구화로 자칫 위험하리만큼 육류를 지나치게 섭취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심혈관 질환이나 성인 질환의 비중으로도 손쉽게 증명 가능할 정도다. 그렇다면 분명 이는 엄연한 문제점 Pain-Point이 존재하는 영역이며 당연하게도 문제 해결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 여기서 눈치 빠른 친구들은 주제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잡았을 때는 문제 또한 모호해지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조금 더 주제를 재단해서 적정한 크기 Scale로 재정의를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 중에 어떤 친구들은 ‘채식주의자의 식단 관리를 위한 서비스’와 같은 프로젝트 진행에 적합한 사이즈로 다듬고서 기분이 좋아진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시장에서는 채식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고, 육류 대량 생산을 위한 산업 체계가 환경 파괴를 야기한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로 사회적 인식 또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채식주의자인 본인이(보통 이 주제를 고르는 친구들을 보면 스스로가 채식주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생활하면서 채식주의를 올바르게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채식 음식 메뉴에 대한 시장 접근성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해결하기만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상상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채식주의가 아직도 시장에서는 주류의 Major 문화라 취급될 정도의 인식이 갖춰진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게 바로 니치 한 영역으로 빠질 때의 문제점인데, 최근 채식 식단의 매출 증대나 채식주의자를 표방하는 인구의 수도 증가하고 있지만 여기엔 숫자의 함정이 존재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채식주의자들 중에는 정말 열성적으로 채식을 하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코스플레이 Costume-Play를 하는 인구도 꽤 된다는 점과, 그리고 적정한 수준의 채식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채식을 시도해 봤지만 그렇다고 육류를 절식할 정도로 하드코어 한 단계로 진입하거나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못하는 인구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 사람들이 겪는 채식주의자로의 불편함은, 약간 아쉬운 정도의 문제이지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정도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결국 이를 진심으로 해결하려 덤벼드는 친구들의 프로젝트에 큰 관심이 없다-공감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이렇게 까지 광적인 수준으로 채식을 해야 하나? 그냥 고기를 덜 먹으면 되는 거 아냐?‘
또 다른 관점에서는 새로이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주제는 이를 증명할만한 시장의 데이터 또한 많지 않다는 게 맹점이다. 정말 풀만 먹는 비건이나, 우유는 먹지 않지만 계란은 먹는 오보 베지테리언 그리고 생선까지는 섭취하는 페스코 베지터리언과 같은 채식주의자의 분류를 보고 있자면 (실제로는 더 많은 분류가 존재한다) 나 또한 채식이 그저 단순한 취향의 문제인가 싶을 정도로 인식이 치우쳐질 때가 종종 있다. ‘우유는 먹지 않지만 계란을 먹는 채식주의자라는 건 그냥 유당불내증 환자의 또 다른 이름인가?‘와 같은 무식과 장난이 버무려진 혼잣말과 함께 말이다.
나도 나름의 변명을 해보자면, 이런 세분화된 채식주의자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적합할 거라는 대중화된 데이터나 연구 결과가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조선 말기 이제마 선생이 주창한 사상의학으로 대변되는 한의학의 한 영역보다 체계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물론 나의 무관심과 무지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오히려 채식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육류 섭취를 권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과, 이 영역에서 확실한 매듭을 지을 정도로 완성된 데이터가 없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 영역에 대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해결해야만 할 만한 가능성을 인식시킬 만한 확고하고 객관적인, 어쩌면 이런 시늉을 하는 가벼운 리서치조차도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학생들의 시도를 뒤로 할 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만은 확신한다.
앞선 장들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데이터로 증명 불가한(또는 주니어의 수준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주제에 대해 무슨 수로 논리적 근거를 만들고 돌파할까?
그러니 포트폴리오를 가만히 넘겨보며 고민해 보라. 내가 다룬 주제들이 과연 지나치게 개성적이지 않고 적당하게 대중적이면서, 논리적으로 증명 가능한 데이터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숙성되었지만 그래도 화제성은 높은 그런 절묘한 영역에 놓여있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