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인의 사막

< 기다림의 끝판왕! 영화 >

by 밀밭여우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할 자격이 없다.

영화 상영관이 극히 적고 상영 시간대 역시 나랑 맞추기가 너무 어려운

아침 9시대 아니면 밤 10시 이후, 그것도 하루 한 번 상영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꼭 보고 싶었다.


매일 메가박스 앱에 들어가 상영 스케줄을 살폈다.

그러다 드디어 낮 시간대 상영하는 행운을 만났다.

금요일 오후 1:55분.

점심을 먹고 부랴부랴 달려가 앉았는데 영화 시작 전부터 식곤증이 밀려와 졸음이 날 엄습했다.

안돼!! 내가 이 영화를 얼마나 어렵게 보러 왔는데~~


두 눈 부릅뜨고 스크린을 응시하자 광활한 사막에 말 탄 군인 한 명이 유유히 나타난다.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드로고' 소위가 첫 부임지 바스티아니 요새로 가는 길이다.

사막과 높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국경지로 젊은 장교라면 야망을 품을만한 곳이다.


타타르인이 언제든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요새의 군인들은

어딘가 모르게 다들 조금씩 이상한 면모를 보인다.

마치 기다림에 지쳐 환영을 보고, 심지어 적이 쳐들어오길 열망하기까지...살짝 미쳐가는 느낌을 준다.


군인으로서 적을 물리치는 일만큼 큰 업적은 없으리라.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공적을 위해 적을 기다리며 세월을 죽인다.


드로고 소위는 그 이상한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전출을 희망하지만 그 또한 순조롭지 않다.

인생이 내 맘대로 안되듯이 드로고 소위의 삶 또한 그렇다.


2시간 30여분의 긴 상영 시간 중 나는 중간 중간 자주 졸음에 빠졌다.

고개를 들어보면 드로고 소위는 그 사이 중위가 되어 있고

다시 또 고개를 들어보면 드로고는 대위가 되어 있으며

어느새 부사령관이라는 직책에까지 올라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아무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은 채 영화는 계속 되었다.


문득 작년에 보았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올랐다.

고도가 누구인지조차 모른채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기다림으로만 채워졌던 연극.


이 영화 [타타르인의 사막] 또한 그랬다.

타타르인이 실제로 있는지, 아니면 한낱 전설의 존재인지 아무도 모른 채

언젠간 그들이 올거라는 막연한 기다림으로 가득 채웠다.


그동안 [고도를 기다리며]가

기다림에 대한 얘기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에 버금가는, 배틀을 해도 결코 뒤지지않을 작품이 바로 [타타르인의 사막]이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을거라는 걸 알면서도 오늘을 사는 우리가 기다리는 이유는 뭘까?

내일은 단순한 미래의 시간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자 오늘을 버티게 하게 힘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끝내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 지루함에 ‘엔리오 모리꼬네’의 감미로운 음악이 더해져 신생아도 잠재울만큼 조용한 자장가 영화다.


평소 조용하고 지루한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영화를 보면서 도중에 잠들어버리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인생의 덧없음과 허망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영상미 100점, 배경음악 100점, 배우들의 표정연기 100점을 주고 싶다.


지금은 대부분 고인이 되었을 옛날 배우들의 진지한 표정 연기와 40여 년전에 만든 작품을 최근에 디지털로 복원한 작품인만큼 아날로그 감성 듬뿍 담긴 명화다.


단, 식곤증 주의!!^^*


극장을 나서며 드는 생각.

carpe diem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라)

enjoy the present (현재를 즐겨라)





영화 장르: 소설 원작 드라마 / 이탈리아

상영시간 : 148분

개봉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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