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상처를 대하는 각자의 방식

< 영화 햄넷 >

by 밀밭여우


햄넷?

햄릿은 들어봤지만 햄넷은 처음인데… 뭐지?

포스터에는 분명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라고 적혀있기에

더 궁금했다.


상영 초반에,

17세기 전후엔 햄넷(Hamnet)과 햄릿(Hamlet)은

같은 이름으로 쓰였다고 자막에 나온다.


음… 궁금증을 바로 해결해 주니 참 친절하지만,

좀 김새는 기분이 들었다.

난 대체 뭘 기대했을까…?


이 영화는 ‘매기 오패럴’의 소설 [Hamnet]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도서명은 햄닛이다.

영어 스펠링 Hamnet을 우리말로는 햄넷 또는 햄닛으로

발음한 듯하다.


영화의 내용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가정사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에게는 쌍둥이 남매가 있었는데

11살에 아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걸 모티브로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이

탄생했다는 팩션(fact+fiction) 소설이 쓰였고

이번에 ‘클로이 자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숲 속에 사는 마녀의 딸이라는 별명을 지닌 ‘아녜스‘와

그녀의 이복동생들을 가르치는 라틴어 가정교사 ‘윌’의

첫 만남은 그저 평범했다.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한 마을에 사는 이웃집

처녀 총각이 만나 결혼했고,

아이 셋을 낳아 기르며 알콩달콩 살다가

아녜스는 남편이 희곡을 쓰는 일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도록 런던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럽을 휩쓴 전염병으로

11살짜리 아들이 죽자 일상이 무너져 내렸다.

(흑사병이라고 얼핏 나오지만

시대적으로는 좀 안 맞는 거 아닌가 싶다.

흑사병은 14세기 중반에 유행했으니…)


Anyway, (어차피 소설이니까~)

자식이 먼저 죽으면 그 부모는 살아있는 송장과도 같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하지 않던가.


아들의 죽음으로 오장육부를 토해낼 듯 오열하던 아녜스와

런던으로 떠나며 아들에게 엄마와 누나, 동생을 잘 지키라며

‘용감하게! (Be brave!)를 외쳤던 윌은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


넋이 나간 아내를 남겨두고 런던으로 돌아가려는 윌에게

아녜스는 그동안 참았던 외로움과 섭섭함을 분노로 표출한다.


윌은 윌대로

견딜 수 없는 상처에 런던의 부둣가로 뛰어가

당장에라도 바다에 뛰어들 듯 몸부림치며 외친다.

그 유명한 “To be or not to be!”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그 심정이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마침내 런던의 작은 극장에서

햄릿이라는 연극이 막을 올린다.


그 연극을 관람하던 아녜스의 표정 변화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무대 위의 햄릿은 마치 아들 햄넷이 살아 돌아온 듯

너무나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아역 햄넷과 청년 햄릿은 실제로 형제라고 한다.

어쩐지 아이가 쑥 자란 모습으로 나와

나 역시 깜짝 놀랄 만큼 두 배우가 닮았더라니~~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 노아 주프(Noah Jupe)와 자코비 주프(Jacobi Jupe) >


아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일하겠다고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이 조금은 눈 녹듯 녹았을까…?


아녜스가 침묵으로 견디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윌은 윌의 방식으로 치유를 모색하고 있었던 걸까…?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즐기는 존재라고 했다.

이 영화가 사실을 근거로 하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17세기 유럽의 풍경과

온몸으로 열연하는 ’ 아녜스‘역의 ‘제시 버클리’에

푹~ 빠져 잠시 먼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상영관도 많지 않고

상영 시간도 극히 제한적인 게 무척 안타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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