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몰랐던 이탈리아 현대미술 전시

<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

by 밀밭여우


2026.03.12(목)

평일 오전인데도 마이아트 뮤지엄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이나 뉴욕, 도쿄에 있는 뮤지엄에 가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실버 세대들이 조용히 그림 감상을 하는 모습을 보며

"참 보기 좋다,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그들 못지않게

그림 전시 감상 연령대가 상당히 높아진 것 같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지만

세계가 지금 K-컬처에 주목하고 있는 이때,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노령층에서도

문화 예술을 즐기고자 하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하는 전시는

평일 오전 11시, 오후 1시와 3시.

이렇게 세 번 도슨트 투어를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이번 전시는 제목에 화가 ‘클림트’ 이름이 크게 적혀 있어서

클림트 작품 위주의 전시인 줄 알았는데 클림트 작품은 단 한 점만 있어서 좀 의아했다.

도슨트 설명에 의하면,

오스트리아 출신의 클림트는 워낙 작품을 많이 그리지 않은 데다

이탈리아에서는 단 3점만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한 점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왜 전시 제목에 클림트를 앞세웠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탈리아 미술을 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들만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 아는 이름은 거의 없을 텐데

이번 전시 자체가 이탈리아의 귀족 '리치 오디 가문'이 소장했던 현대 미술 작품이고

클림트의 작품 한 점이 '리치 오디 현대 미술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 내가 낚인겨…?ㅎㅎ)


게다가 클림트의 작품 '여인의 초상'이 1997년 도난당했다가 무려 22년 만에

미술관 외부의 허름한 창고 안에서 발견되어 기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더 특이한 점은

리치 오디가 액자를 몹시 중요하게 생각해서

먼저 액자를 만든 뒤 화가에게 그 안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당시 액자는 견고한 목조 액자가 아닌,

대량 생산이 가능한 석고틀을 이용해 만든 석고 액자에 금색 칠을 했는데

석고가 부서지는 특성이 있어 자세히 보면 액자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부분이 보인다.

< 영상으로 보는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전경 >


리치 오디 현대 미술관은 이탈리아 피아첸차 지역의 귀족

‘주세페 리치 오디'(1869~1937)의 개인 소장품을

문화유산으로 남기고자 설립된 것으로 미술관 건물 자체도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영상을 통해 미술관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 안토니오 폰타네시(1818~1882) : 토리노의 포 강가에서 (1875년)>


19세기 이탈리아 미술은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교감하는 낭만주의 화풍으로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안토니오 폰타네시'가 대표적 작가이다.

리치 오디는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해 80점 이상을 수집했다고 한다.

19세기는 프랑스에서도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하던 시기로, 우리가 잘 몰랐을 뿐 이탈리아 역시 사실주의와 고전주의를 벗어나

낭만적 화풍을 프랑스에 앞서 시도했다.

< 빈첸초 카프릴레 (1856~1936) : 인물이 있는 나폴리 풍경 (1910년 작)>


초기 나폴리 미술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풍경화가 주를 이뤘지만

19세기 중반에는 프랑스 리얼리즘의 영향으로

자연과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화풍이 등장했다.

화려한 도시의 뒤편에 가려진 가난과 사회적 부조리, 개인의 고독과 침묵에 주목하며

민중의 삶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 조르지오 벨로니(1861~1944) : 황금빛 반사(1907년 작)>


조르지오 벨로니는 토스카나 해안의 바다를 핵심 주제로 그린 화가로,

이 '황금빛 반사'는 빛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리듬을 시적으로 응축한 대표작이다.

< 자코모 그로소(1860~1938) : 거울 앞(1914년 작)>


자코모 그로소는 20세기 초 부르주아 초상화를 그린 대표적 화가로

우아함과 관능미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나체를 자신감 있게 바라보는 여인의 표정을 통해

현대 여성을 탐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엄청 부러운 몸매…ㅠ.ㅠ)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여성이 비로소 독립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때는 도시 문화와 패션이 번성했던 "벨 에포크(Belle Epoque)"시대로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장식적 미학이 더해져

현대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여성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 구스타브 클림트(1862~1918) : 여인의 초상(1916년 경)>

숨겨진 이중 초상설, 도난과 기적 같은 회수의 미스터리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 맨 끝부분에서 만날 수 있다.


< 리치오디현대미술관 외벽에 있는 작은 창고 >


전시장 밖에 있는 포토존에 이 사진이 있는데

이 안에서 22년 전 도난 당했던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 발견되었다니...

나는 아무리 봐도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하나의 마케팅 아닐까? ㅎㅎ~)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클림트의 작품이 단 한 점만 있다 하더라도

이번 '리치 오디 현대 미술관'의 컬렉션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리치 오디의 예술 철학과 수집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가 이탈리아의 현대 작품들을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역시 마이아트 뮤지엄의 전시 기획은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다음 전시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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