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장편소설 : 가녀장의 시대 >
가.녀.장
참 낯선 단어다.
'가부장'의 가운데 글자 '부(父)'대신 '녀(女)'자를 넣었을 뿐인데
그 딱 한 글자가 주는 힘이 태산 같다.
3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고명딸이자 장손녀로 태어난 주인공 슬아는
할아버지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가부장(家父長)의 무소불위한 권력 또한 목격하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슬아는 삼십 대가 되어 스스로 가녀장(家女長)이 되었다.
작가이자 1인 출판사 사장이 되어 사무실 겸 자신의 집을
자신이 번 돈으로 직접 샀다.
아빠 '웅'이와 엄마 '복희'를 자신의 출판사 직원으로 채용해
웅이에게는 청소와 운전을,
복희에게는 집밥과 가사를 담당시키며
월급과 직원 복지 차원의 보너스까지 지급한다.
근무시간에는 서로 존댓말을 하고
웅이와 복희는 슬아를 깎듯이 상사로 받든다.
각자 잘 하는 것으로 묵묵히 일하며
서로의 일에 간섭이나 참견 따윈 없으니
매우 합리적인 조직이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다.
한 회사의 사장과 부하 직원으로서도,
한 가정의 가족으로서도,
그들 사이에 불만족이나 갈등이란 없다.
그야말로 지상낙원인 셈이다.
이슬아 작가의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아버지가 가장으로 존재하던 전통적 관습을 깨고
딸이 가장이 되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모의실험하는
시뮬레이션 소설 같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실제 작가 자신의 가족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현실감 있어 보이지만
아무런 갈등이 없는 가족 관계가 과연 있을까 의문이 들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웃음만 있고 눈물이 없는 삶은 지나치게 편집된 영화의 한 장면일 뿐
실제 인생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이런 발칙한(?) 상상력에 배꼽 잡으며 TV 시트콤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런 이야기를 TV 가족 드라마로 보고 싶다고 썼다.
"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를 지나,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빠들의 시대를 지나,
권위를 쥐어본 적 없는 딸들의 시대를 지나,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가장(家長)이란 무릇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존재다.
동시에 가족의 행복도 책임져야 하는데
그동안 가부장들은 경제적 부담에
정신적 돌봄은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가족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가장 크다는 말이 왜 나왔을까.
그 점이 나는 늘 안타까웠다.
너무 가까운 나머지 타인보다 덜 조심하고, 덜 배려하고, 덜 관심을 준 건 아닐까.
하지만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선을 넘지 않으면
겉으로는 갈등이 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왠지 각자 고립된 섬처럼 외롭다.
지지고 볶으며 희로애락이 적당히 버무려졌을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게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내 가족들과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산다.
선을 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인간관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적당히'라는 그 애매모호함을 조율할 수 있는 용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
갈등 뒤엔 다시 화합하는 용기.
[가녀장의 시대]와 같은 시트콤을 보며 한바탕 웃고 나서
돌아서면 다시 애증으로 마음이 복잡해지더라도
잠시나마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소설이다.
도 서 : 가녀장의 시대
저 자 : 이슬아
출 판 : 이야기장수
발 행 :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