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자의 기억법 >
[살인자의 기억법]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범죄 추리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 보긴 하지만
이렇게 직관적인 제목이라니... 너무 섬뜩하지 않은가.
하지만 소설 내용은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알츠하이머(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에 걸린 화자가
가족이나 친구, 지인 등을
얼굴은 같지만 실은 전혀 모르는 타인으로 인식해
혼란스러워하는 '카그라스 증후군'으로
망상에 빠져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김병수, 일흔의 나이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망각도 막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세가 있다 한들
그게 어떻게 나일 수 있으랴.
그러므로 상관하지 않는다.
요즘 내가 마음에 두는 것은 딱 하나뿐이다.
은희가 살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내 모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 생의 업. 그리고 연."
(살인자의 기억법 p39)
치매로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워
늘 녹음을 하고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이지만
실은 이것마저도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화자는 평소 시를 써서 시인으로 불리기도 하고,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는
니체의 철학을 인용해 자신을 초인이라 여기며,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오디세이아> 같은 그리스 고전을 즐기는
그의 전 직업이 동물의 생명을 살리는 수의사였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성과 살인은 확실히 별개의 것인가 보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이십오 년 전,
..................(중 략)..............
아쉬움,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p7)
이 첫 문장부터 소름이 돋으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그르누이'가 떠올랐다.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두렵지 않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심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p142)
이 문장만 봐도 소설의 화자와 그르누이는 쏙 빼닮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언급하며
김병수는 자신의 동네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에 대해,
그 연쇄살인범의 다음 타깃이 자신의 딸 은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먼저 그를 찾아내 죽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은희를 살해하려고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박주태가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의심하는 형사임을
나는 처음부터 단박에 느꼈다.
그런데도 은희가 딸이 아니라 그를 돌보던 요양보호사라는 사실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철저히 나는
그의 망상 속에 함께 갇혀 헤맸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근친결혼을 한 범인을 잡으려다가
자신이 곧 그 범인이란 걸 알게 된다는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처럼
이 소설의 마지막은 거대한 반전으로 내 뒤통수를 쳤다.
"술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잔의 독주일지도."(살인자의 기억법 p73)
뒤통수를 맞은 김에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 끔찍하게 재미있다!!
도 서 : 살인자의 기억법
저 자 : 김영하
출 판 : 복복서가
발 행 : 2020.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