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으로 보는 비극

< 연극 리어왕외전 >

by 밀밭여우
IMG_3432.jpg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지라도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우리가 풍문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는 그 내용은 이렇다.

리어왕이 나이가 들어 자신의 세 딸에게 자신의 왕국을 나눠주고자

딸들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묻는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은 달콤한 말로 아버지를 칭송하고 사랑을 노래하지만

셋째 딸은 '말은 그저 말에 불과하다'며 왜 그런 어리석은 요구를 하느냐고 묻는다.

막내딸의 입바른 소리가 듣기 싫었던 리어왕은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딸 둘에게 자신의 영토를 물려주지만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부터 두 딸은 태도를 바꿔 아버지를 구박하는 내용이다.

극단 마방진의 고선웅 연출가가

400여 년 전의 리어왕을 현대로 소환했다.


노인네 냄새난다,

왜 이렇게 오래 사느냐...는 둥,

서로 아버지를 모시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두 딸에 의해

쫓겨난 리어왕은 세상을 헤매 다니며 삶의 허망함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친다.

리어왕이 조용필의 노래 '허공'을 부르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는데

그 가삿말이 어쩌면 그리도 리어왕의 상황 그대로를 드러내는지 깜짝 놀랐다.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할 그날들

허공속에 묻힐 그날들"


IMG_3435.jpg


국립극장의 하늘극장은 관객과 배우의 호흡이 하나로 이어질 만큼

규모가 작은 편이다.

물론 개인이 운영하는 소극장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국립극장의 해오름, 달오름에 비하면 작다.

무대를 둥글게 만들고 객석 또한 무대에 맞게 180도가 넘게 펼쳐져 있다.

배우들의 동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배우가 등을 돌릴 때마다 대사가 들리지 않는 단점도 있었다.

옷에 끼우는 마이크라도 장착했더라면 좀 더 세심하게 들렸을 대사들이

그저 윙윙거리는 울림으로만 느껴져 그 점이 좀 아쉬웠다.



IMG_3436.jpg
IMG_3439.jpg
IMG_3443.jpg
IMG_3446.jpg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객석이 술렁이며 일어나는 순간

커다란 자막에 쓰인 [효도합시다]가 내 머릿속에서

리어왕의 셋째 딸이 호소한 '말은 그저 말에 불과하다'는 대사와 오버랩되었다.

오죽하면 효도하자고 자막으로 소리칠까.

무겁고 심각한 고전 비극을

조금은 가볍게 트롯으로 노래하며 풍자적으로 재해석한 [리어왕외전]은

초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쾌청한데

내 마음속은 구름으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90이 넘은 노모와

마흔이 다 되어가는 자식을 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연 극 : 리어왕외전

연 출 : 고선웅

공연장 : 국립극장 하늘극장

기 간 :2026.03.20~2026.04.12

작가의 이전글딱 한 글자가 주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