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와 씨름 한 판!

< 미스터리 추리 소설 :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

by 밀밭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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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제목 자체가 미스터리한 스릴감 있어 엄청 기대하며 읽었는데

산만하고 정신 사나운 전개로 읽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

원래 범죄 스릴러물이 기분 좋을 리 없는 내용이지만

인간 내면의 심리묘사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며

반전을 기대하는 묘미가 있어 평소 좋아하는 장르인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당최 모두가 사이코패스처럼 혹은 덜떨어진 사람들처럼 행동해

읽는 나로서는 ’뭐 이런 미친?’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 기복이 심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호수 아래에서 수많은 발 동작으로 헤엄치는 수고와

고요한 호수 위를 우아한 자태로 노니는 백조처럼

뭔가 잔잔하고도 은근한 서스펜스를 기대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요란법석 난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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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없는 이메일 한 통을 받은 주인공 '도나'는

사채업자로부터 도망 다니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왔기에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석해달라는 이 초대장이 잘못 온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장례식장에서 사망자의 이름을 보는 순간 그녀는 공포에 휩싸인다.

그 이름은 바로 자신의 본명인 '앨리스 앤더슨'이기 때문이다.

나는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 않나?" 싶었지만

문제는 누군지도 모르는 장례식장에 자신이 초대받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만큼 등골 오싹한 일이 또 있을까.

장례식을 주관한 사람은 사망자의 상사 ’맥스‘로

그의 집에서 열린 추모 다과회에서 다짜고짜

죽은 ‘앨리스 앤더슨'이 비서로 일했던 업무를

’도나'에게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정말 어이없는 설정이 아닌가.

상사의 집에서 숙식까지 제공하는 일자리인데

처음 보는 그녀의 이력서조차 요구하지 않는 고용주라니.

이건 말이 안 돼도 너무 심하게 안된다.

도나에게 초대장을 보낸 이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난생처음 부촌의 저택에서 지낼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을 도나는 쉽게 승낙한다.

비현실적인 이 상황 자체가 이미 미스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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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개념이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에선 거의 폭발할 것 같았다.

새벽 5시에 찾아온 손님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뒤

'도나'가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아침에

맥스와 타라의 딸 ‘한나'의 행방을 묻자

'타라'는 어젯밤부터 그녀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분명 새벽에 모두가 함께 그 자리에 있었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이건 작가의 의도된 오류라고 하기엔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럼 대체 뭘까 싶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친구가 전혀 없다고 말한 '한나'는 며칠 만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도나'앞에 나타나는데 작가는 끝내 한나가 어디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비로소 다만 더불어 짐작하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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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연극의 한 장면(scene)처럼 모든 상황이 툭툭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한다.

읽을수록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되는 한 가정의 막장 드라마에

주인공 '도나', 아니 ‘앨리스 앤더슨’의 초대형 막장 가족사까지 겹치며 혼란은 가중된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다음과 같은 출판사 리뷰를 읽고

내가 제대로 걸려들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소설의 묘미는 독자를 기다려주지 않는 속도감이다.

사건은 예고 없이 터지고, 인물은 작가의 손을 벗어난 것처럼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며 움직인다.

독자는 무슨 일인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한다.

생각할 겨를 없이 사건의 뒤를 쫓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다.

‘숨 돌릴 틈이 없다’는 표현은 이 소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랬다.

내가 어이없어하는 사이에 계속 일어나는 사건들로

숨 돌릴 틈 없이 소설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끝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기대했던 스릴보다 거칠고 지독한 속물들의 아귀다툼으로

‘도나’처럼 한바탕 돼지우리에 갇혀 오물을 잔뜩 뒤집어 쓴 기분이다.

돈이 인간을 대체 어디까지 끌어내릴 수 있는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함정에 소름이 돋는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에겐 독배를 한 잔 들이켜는 수준의 소설이다.




도 서 :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저 자 : 헬렌 듀런트

출 판 : 서사원

발 행 : 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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