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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Jul 29. 2017

[역사란 무엇인가 - E. H. Carr

그래도 역사는 흐른다

미래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은 과거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온다. 
루크레티우스(기원전 96?-55. 로마의 철학자, 시인) 


누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한 때, 역사 또한 여러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과거의 어떤 개인이든 사회든 그 선택의 결과들이 지금의 사회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 선택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과거의 옳은 선택이 어떤 지점에서 어떤 시각에 의해 변질되고 바뀌었는지 찾아보는 것. 그렇게 돌아보고 방향을 수정하고 앞으로도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감히 그렇게 얕은 생각으로 역사를 정의했었다.

그러다, 영화 ‘변호인’을 보던 중 영화에 이 책이 나왔다. 꽤나 중요한 역할로. 그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에 이끌려서 언제 한 번 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읽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역사 공부를 하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대표적인 이 말로 너무나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은 이 한 문장을 위해서 쓰인 책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또 읽으면서, 작가(Carr)가 공부하는 학문에 대한 애정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고, 인류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느낄 수 있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국사를 다시 공부하고 싶어 졌고, 최소 역사 관련 책도 한 번 읽어볼 계획이 생겼다. 또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내 인생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그의 시적인 정의가 맘에 들었고, 그 정의에 이르기까지의 논리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았다. 부담스럽게 긴 문장과 문단 그리고 딱딱한 번역체로 읽기 힘들었지만, 딱히 이해되지 않거나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던 부분은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의 대화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대를 초월하는 어떤 기준이 있어서 단순 사실과 역사를 구분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과거 사실도 역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역사가는 자신이 처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 사실들을 찾아보고 연구하고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정보도 찾기 때문에, 그가 속한 사회와 현실 그리고 그의 선택이 곧 그 기준이다. 우리도 우리 인생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거나 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과 같다.


역사의 인과관계

얼마 전에 읽었던 ‘행운에 속지 마라’라는 책 때문에, 어떤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 적이 있다. ‘’의 무시할 수 없는 작용 때문에, 먼저 일어났다고 원인이 아니고 뒤에 일어났다고 그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는 생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Carr는 그런 우연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던 나를 구해줬다. 무슨 일의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주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그저 아무 연관 없는 특별한 사건들의 집합밖에 안된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자명한 명제는 우리 주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의 한 조건이다.
 p.129


단, 합리적인 원인과 우연적인 원인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같이 역사적 사건들에는 우연적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역사가는 그 우연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우연은 그 사건을 촉발시켰을 뿐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돈이 없을 때 고민 해결을 위해 ‘로또 당첨자’의 조언을 깊이 새겨듣지 않는다.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Carr는 고정적이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며(진보든 퇴보든)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이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바라봤다. 완벽한 것도 정해진 것도 없다.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면서 우리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다.(이 맥락에서 Carr는 과학과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역사는 움직인다

두 번의 참혹한 세계대전과 세상을 종말로 몰고 갈 핵무기를 본 뒤, 많은 지식인들이 인류에 대해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졌다. 하지만 Carr는 그래도 인류의 진보를 믿었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연루되고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역사는 시작된다.
p.184


그는 이성의 발달을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았다. 처음 인류는 세상을 불가사의한 신의 섭리와 신비스러운 명령으로 생각했다. 그다음 세상은 이성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법칙이 되었으며, 열심히 탐구하기 시작했다. ‘헤겔’ 같이 자의식의 발전 속에서 현실의 본질을 통찰하는 철학자도 나오게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이성을 이용해서 사회와 사회 구성원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까지 번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산업혁명의 가장 광범한 사회적 변화는 이성의 확장으로 자신들의 이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다.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理性)에 눈뜬 지금, Carr는 다음 단계의 인류를 기대한다. 그는 역사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진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항상 앞으로만 나아가지는 않는다.


진보의 시기뿐만 아니라 퇴보의 시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게다가 퇴보 이후의 전진이 똑같은 지점에서 혹은 똑같은 길을 따라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일 것이다.
p.160


그러면서 Carr는 당대 지식인들에게 지배적이던 인류를 향한 회의적인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결국 세계의 주류를 이끌던 지식인들의 추상적인 이론에 불과하며, 그것마저도 서양사람들의 관점에 치우쳐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진보인지 퇴보인지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19세기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에겐 20세기 초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 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않고 현존 질서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해서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그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 것.
p.210

그들이 아무리 세상의 끝이 왔다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 짓더라도, Carr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인류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웹툰 ‘송곳’에도 비슷한 대사가 있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기어이 한 발을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세상의 진보는 그런 지배적을 틀을 깨는 사람들에 의해서 변하고 발전해왔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


내 인생의 역사

Carr가 말한 진보에 대한 관점은 나의 삶도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아무리 내가 긍정적이라도, 더 이상의 발전과 비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앞으로 가는 것도 또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나에게 큰 힘과 깨달음을 줬다. 그의 말대로 일단 중요한 것은 변화, 즉 변하고 멈추지 않고 흘러가려는 의지인 것 같다. 늘 어떤 문제를 안고 있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면서 살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꽤나 많은 일들이 있다. 밝고 소중한 역사도 있는 반면 부끄럽고 지우고 싶은 흑역사도 있다. 흑역사를 흑역사라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또 성장했고 변했다는 뜻이 아닐까. ‘흑역사가 없음’을 불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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