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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Jul 24. 2017

[덩케르크] 라이언 30만명 구하기

드디어 놀란표 전쟁영화

출처 : 다음 영화

이름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들은 ‘특별할 것 없을 소재’에 그만의 특별한 감각이 더해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단기 기억 상실증’으로 반전 스릴러물을 만든 ‘메멘토’. ‘꿈’을 소재로 한 독특한 세계관과 초대형 규모의 액션이 합친 ‘인셉션’. 슈퍼 히어로를 현실로 끌어내려 인간적인 문제에 고뇌하는 모습을 그린 ‘배트맨 시리즈’까지.. 이 정도만 봐도 그의 이름이 걸리면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그가 이제 ‘덩케르크’라는 전쟁영화를 찍었다. ‘놀란표 전쟁영화’라니.. 그는 전쟁을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을 말할까?


덩케르크?

영화 ‘덩케르크’는 세계 2차대전 때 프랑스의 항구도시 덩케르크에서 벌어진 ‘다이나모 철수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파죽지세의 독일군에 의해 서쪽 해안 끝가지 밀려 고립된 영국군을 무려 30만 명이나 구해서 조국으로 돌려보냈다. ‘덩케르크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망 없던 일을 실현시킨 작전이다. 특히 ‘민간인들의 참여와 희생이 대단했다’고 한다. 

사실 당시 독일군이 그냥 공격했더라면 연합군의 작전도 실패하고 피해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잘 풀리자 찝찝했던 히틀러의 ‘공격 정지 명령’이라는 천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역사적 사건이다.

이렇게 땅과 생명을 뺏고 뺏는 작전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고향의 품에 안겨주기 위한 작전을 그린 전쟁영화다. 개인적으로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좋아하는데, 의무병 ‘유진’이 주인공인 에피소드(6편)를 제일 좋아한다. 그 총탄이 빗발치는 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치료해주는 모습이 눈물겹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덩케르크’도 비슷한 맥락이다. 수많은 화약 폭발과 긴장으로 도배한 영화가 아니라 다른 휴머니즘적인 주제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


놀란의 전쟁영화

조그마하고 한적한 마을을 걸어가는 군인들의 뒷모습. 하늘하늘 떨어지는 독일군이 뿌린 전단지. 이상하게도 이 장면의 색감과 미장센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적어도 총소리가 나기 전까진. 

전투복만 입었을 뿐이지 그 종이를 바라보던 그 군인은 마치 어린아이가 동네 골목을 걷는 모습이었다. 그 아기자기하고 예쁜 동네가 위험이 도사리는 전쟁터라는 것이 역설적이다.

그는 위험을 피해 휴양지 못지않게 넓고 아름다운 바닷가에 도달한다. 하지만 앵글이 서서히 돌아가자 어김없이 늘어선 군인들이 등장하며 이곳 역시 전쟁터라는 걸 알려줄 때는 쓴웃음이 지어졌다. ‘덩케르크’의 오프닝은 이런 선명한 대조를 통해서 관객을 전장으로 이끌었다.

영화는 세 가지 다른 시점에서 시작해 끝에서 합쳐지는 구조로 진행된다. 잔교에서 일주일, 바다에서 하루, 비행기에서 한 시간. 그리고 세 가지 관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는 공습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하는 육군.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으면서 전쟁터로 향하는 민간인 일행. 언제 연료가 고갈될지도 모르는 채 작전을 방해하는 적기와 싸우는 공군.

다짜고짜 폭격이 시작되고 바로 본론에 들어간다. 기승전결을 나누기에도 애매하다. 인물들에 대해서 알 시간도 별로 없다. 어쩌면 한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누가 누구인지 각각의 사연과 개성을 파악할 여유는 관객에게도 사치인지 모른다. 사실 그런 건 긴박한 상황에서 반응하는 각각의 다른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짧고 단순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은 완벽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계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면서 독일군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전투기 몇 대로 출현하고 마지막에 포로를 잡기 위해 잠깐 슬며시 나올 뿐이었다. 생명의 소중함과 희생정신이 감동을 만들었던 ‘덩케르크의 정신’을 얘기하는데 그런 ‘위대한 영국’과 ‘나쁜 독일군’은 필요 없었다. 중심은 ‘영국군’과 ‘귀국을 방해하는 위험’의 싸움이었다. 전쟁에 대한 미화나 스펙터클은 과한 장식일 뿐이었다.

이렇게 전쟁의 미사여구를 최대한 줄인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마음에 들었다. 전쟁이라는 소재가 가진 스케일과 긴박감과 참혹상은 영화 줄거리로써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흥미와 액션으로 바라보기엔 무거운 소재다. 특히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일어난 전쟁일 경우에는 비참한 기억을 가진 당사자들도 있고 그 영향이 현재 사회에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승패보다 중요한 목숨

그렇게 정신없이 휩쓸리며 전개되는 와중에 선명하게 남은 또 다른 감정이 있다면 역시 ‘감동’이었다. 특히 그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뭉클하다. 위험하다는 말에도 ‘혹시 살아있으면?’, ‘늙은이가 일으킨 전쟁에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둬선 안되지’라며 도슨을 포함한 일행은 ‘덩케르크’로 향한다. 어느 특정 나라의 군인이 아니라 그저 젊은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민간인들이 이 전쟁영화의 주인공이자 영웅이었다.

많은 희생과 시련을 넘어 결국 청년들은(전부는 아니지만) 고향으로 돌아간다. 패잔병으로서 사람들의 실망과 질타를 기대했던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따뜻했다. 어리둥절한 그들은 어느 눈먼 노인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저 살아 돌아왔을 뿐인데요?" 그러자 그 노인이 말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는 영국군이 아니라 프랑스군 심지어 독일군이라도 같은 말을 해줬을 것이다.

이와 함께 ‘덩케르크 작전의 성공’이라는 신문 보도가 눈에 띄었다. 후퇴작전이고 사실상 패배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고 ‘승리’로 여기는 그 반응과 분위기가 감동이었다. 게다가 작전의 성공은 어느 특정 부대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젊은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민간인들의 공이 컸지 않은가. 역시 전쟁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었다.




솔직히 괜찮았지만 대중들의 입맛에 맞을 재미있는 영화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그동안 보여줬고 기대했던 스타일과는 달랐다. 어쩌면 '다크나이트'나 '인셉션' 같이 인물들의 심리와 대결, 그리고 여러 사건이 얽히고 섥히는 촘촘한 구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었기 때문에 봤고 그렇기 때문에 흥행할 것이고 호평을 들을것이다. 영화가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의미로 말한 것도 아니다. 그가 만들었다고 항상 대중적인 흥행요소를 가진 영화일 필요는 없다. 그 덕분에 평소에 손이 잘 가지 않을 영화도 보게되었고 그런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그의 생각이 담긴 많은 다양한 영화가 계속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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