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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Aug 04. 2017

[코스모스-칼 세이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

위대한 인간의 호기심

The known is finite the unknown is infinite
(아는 것은 유한하고 모르는 것은 무한하다)


우주에 관한 책이다. 여기서 우주는 지구 밖과 여기 이곳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곳을 뜻한다. 교양 과학책으로서 단순히 과학 지식만 알려주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역사와 철학도 알려주면서 ‘우리는 여기까지 알아났는데, 넌 뭘 알고 싶니?’라고 묻는 듯했다.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간의 알고자 하는 능력을 예찬하는 책에 가까웠다. 인간의 호기심이 참 새롭고 대단해 보였다.


There will come a time when our descendants will be amazed that we did not know things that are so plain to them.

(언젠가 우리의 후손들이 놀랄 것이다. 이미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우리가 몰랐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이 생각하고 있는 지식들은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세상에 나왔던 학자들이 수 없이 관찰하고 실험한 덕분에 얻어낸 결과물들인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이해하는 것. 이 패턴이 인류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쳐왔을까.

내가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그들은 어떤 입신양명을 꿈꾸고 했다기보다는 정말 순수하게 우리 주변을 이해하고 싶어서 ‘왜’ 그런지 알고 싶어서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미친 듯이 몰두하는 모습들은 수염이 무성한 어른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젊게 산다는 건 꼭 나이 먹고도 선글라스에 청자켓을 입어야 하는 게 아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키운 꿈은 지금 달에 발을 딛는 데까지 인류를 이끌었다. 밤하늘에 달과 별이 떠있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 ‘왜?’라는 질문은 우주로 가는 길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혜택에도 기여했다. 처음부터 쓸모 있는지 따졌다면, 지금 어떤 쓸모 있는 것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과학을 단순한 법칙과 원리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배경과 알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 그리고 시대에 따라 발달된 과정을 함께 알고 나니 훨씬 더 흥미로웠다. 어떤 학문이든 역사와 철학은 뺄 수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과학수업이 이랬다면, 조금 더 흥미를 갖고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My aim in this is to show that the celestial machine is to be likened not to a divine organism but rather to a clockwork….

(이 책에서 내 목표는 천체가 신성한 조직체가 아니라 차라리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와 닮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Johannes Kepler -


무엇보다 ‘물리’가 이렇게 매력적인 과목인 줄 몰랐다. 내가 학창 시절에 배운 물리는 그저 물체의 가속도와 중력 따위나 계산하고 배우는 딱딱한 학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물리(物理)라는 글자 그대로 만물의 이치를 공부하는 학문이라니….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물리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까. 물리학적 질문이 철학의 시작이라 봐야 할까.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물리도 공부하고 싶고 ‘인터스텔라’도 다시 볼 계획이다.


The same laws of gravity applies everywhere in the universe.

(똑같은 중력의 법칙이 우주 모든 곳에 적용된다.)


부끄럽지만 난 정말 ‘과알못’이다. 무슨 이유에 선지 모르지만 크게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중력이란 지구에만 작동하는 원리인 줄 알았다. 그래서 칼 세이건이 ‘우주 전체에 적용되는 법칙’이라는 말을 했을 때,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가슴이 서늘했다. 그 상상하기에도 벅찬 규모의 법칙은 이 조그만 행성의 티끌 하나에까지 미친다. 걸을 때 발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는 것도, 비가 내리는 것도 다 달리 보였다. 나는 비록 방 한 구석에 있지만, 그 법칙을 이해하고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지구 밖 우주에 있는 느낌이었다.


An oak tree and I are made of the same stuff. If you go far enough back, we have a common ancestor. The living cell is a regime as complex and beautiful as the realm of the galaxies and the stars.

(떡갈나무와 나는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충분히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리는 똑같은 조상을 가진 것이다. 살아있는 세포는 은하계와 별들의 왕국 못지않게 복잡하고 아름다운 정치체제다.)



게다가 우리는 저기 있는 별들과 똑같은 성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은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지게 했다. 우주와 하나가 된 느낌? ‘물아일체’를 이렇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인류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똑같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떤 것도 중심이 아니고 각각이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정말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난 정말 한낱 미물에 불과한 존재다. 난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주의에 빠졌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래서 사는데 용기를 얻었달까. 난 엄청 중요한 임무를 띠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아무 의무도 무거운 책임감도 없고 그래서 더욱더 하고 싶은걸 해보면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선택이 불러올 사건들은 어떤 경험을 나에게 안겨주고 어떤 느낌을 느끼게 할까. 건방지게 그지없지만 살면서 겪게 될 모든 감정을 느낄 준비를 해본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커봤자 먼지일 뿐이고 길어봤자 찰나에 불과하다.

또 교양 과학 도서면서도 소설 못지않은 감정의 기복을 느끼기도 했다. ‘Blues for a Red Planet’ 챕터는 화성을 향한 인간의 애정(?)을 다룬 부분이다. 이 챕터에서 수많은 가능성과 계산을 하고 예측한 뒤에도 조금의 운을 바라면서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내용이 나온다. 너무 몰입해서 읽는 바람에 나도 그들과 한 팀이 되어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리고 뒤 따라오는 ‘for the first time in human history, spacecraft had touched down, gently and safely, on the red planet.’이라는 문장을 읽었을 땐 정말 나도 같이 성공한 듯했고 온몸에 전율로 소름이 돋았다.


They remind us that humans have evolved to wonder, that understanding is a joy, that knowledge is prerequisite to survival.

(그들은 우리에게 인류가 놀라워하고 호기심을 가지기 위해서 진화했음을, 이해하는 것이 즐거움임을, 지식은 살아남기 위한 필요 전제조건임을 상기시켜준다.)



지금 쓰면서도 놀랍다. 내가 과학책을 읽고 이렇게 쓸 말이 많을 줄이야. 칼 세이건의 과학을 비롯한 모든 지식을 향한 사랑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책 초반부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칼 세이건은 우리가 그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그 말,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공부해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그가 사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세상은 앎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공부한다고 한다. ‘미래에는 기술이 발달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연구할 수 있겠지’ 라며 기대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 또는 글자 그대로 순수한 학자 그 자체였다.


We have broadened the circle of those we love.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의 영역을 넓혀왔다.)



마지막 장 'Who speaks for Earth'는 정말 문장마다 문단마다 감동이었다. 그 제목은 곧 ‘Who speaks for Us?’라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우주를 위해서 우리 주변을 더 아끼고 사랑해야 된다고 말한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E. H. Carr도 그렇고 모든 학문의 바탕은 일단 사랑이 있어야 하는가 보다.

공부와 사랑을 얘기하다 보니 이와 관련해서 문득 든 생각인데, 뉴스를 보면 참 배울만큼 배우시고 공부할 만큼 공부하신 분들이 왜 그러실까 싶다. 어쩌면 사랑 없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남을 꺾고, 이를 통해 얻을 보상을 위해 공부를 해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겐 공부는 즐거움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견뎌야 할 관문이자 과정일 것이니까. 그들이 공부를 통해서 배운건 지식보단 이득을 위해 참아야 할 것, 버리고 포기할 것들 인지도 모르겠다.


Pale Blue Dot


우연히 SNS에서 발견한 카드 형식의 짧은 글이다.

Pale Blue Dot. ‘창백하게 푸른 점’ 또는 ‘pale’이 담고 있는 의미를 살리면 ‘연약하게 빛나는 푸른 점’ 정도 되겠다. 칼 세이건이 그 지구의 사진을 본 뒤에 한 소감에 가슴이 찡했다. ‘저 조그만 곳에서 우린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우린 정말 광활한 우주의 티끌만큼 보이지도 않아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정말 또 소중한 존재기도 하다.

이 글 덕분에 칼 세이건이 어떤 사람인지 검색해봤고 대표적인 저서로 ‘Cosmos’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멀리한 과학을 다룬 책이란 것을 알면서도 지적 허영심과 허세가 충만한 나는 호기롭게 원서로 주문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두 가지 다 만족시켰다. 오래간만에 정말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글을 읽은 것 같다. 내 상상력의 폭을 넓혀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훨씬 넓고 깊고 또 높게 해줬다. 읽은 후 느낀 점과 정리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과학에 관심 없는 사람도 과학에 뜻이 있는 학생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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