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우주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영화와 책을 보는 각자의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그저 단순한 ‘재미’와 ‘시간 때우기’라도 말이다. 가끔 그것들을 즐기는 나를 보다가 ‘왜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을 할까’에 대해 생각해본다. 진실을 얘기하기 위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 등..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그중 최근 계속 나를 새로운 작품으로 이끄는 게 있다. 살면서 우리가 놓치거나 잊고 있는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상상도 못 한 새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언제나 설레고 신난다. 그러나 일상에 널린 흔한 소재에서 시작된 예상치 못한 전개는 더 놀랍다. 늘 접하는 ‘꿈’을 소재로 한 ‘인셉션’. 엄마의 광기 어린 모성애 ‘마더’ 등.. 이것들은 내 주위를 새롭게 한다. 그런 스펙터클을 불러올 요소들이 근처에 군데군데 있는 것을 보면 ‘특별한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따분한 것은 일상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내 시각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괜히 지방에 살고 있는 나의 삶을 괜히 위로해주기도 한다. 어떤 것이든 특별해질 수 있다. 아니 모든 것이 특별하다.
‘그래비티’도 이와 같은 영화다. 제목 그대로 중력이 중심 소재다. 우리가 살면서 늘 느끼고 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의식하지 못하는 힘. 우리 삶 속에서와 같이 영화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중력의 역할은 어마어마하다. 인물들이 둥둥 떠다니는 우주에는 중력이 없다. 하지만 그 중력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영화 속으로 강하게 잡아당겼고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나를 짓눌렀다.
그래비티는 ‘SF/재난’ 영화다. 오직 우주에서 고립되어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사투만을 다룬다. 다른 복잡한 플롯은 없어 다양한 인물들 간의 치열한 갈등도 없다. 이런 면에서는 최근 개봉한 ‘덩케르크’가 떠오른다(그래비티가 먼저 나온 영화다. 늦게 봤을 뿐..). 덕분에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인간과 그 공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봐온 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주는 공포는 ‘에이리언’과 같은 괴생명체 또는 ‘아마겟돈’ 같이 지구로 향하는 운석 등 우리에겐 낯설고 불가사의한 존재가 주였다. 그러나 그래비티가 주는 공포는 익숙한 것들의 부재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고립에서 왔다. 이는 더 강력한 괴물이 인간을 위협하지 않아도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을 한 없이 무력하고 약해 보이게 했고 긴장감을 조성했다. 무중력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는 인물들은 답답하고 애가 타게 했고 매트가 사라진 우주는 너무나 아득했다. 장소의 스케일이 커지자 이 감정들이 이 정도로 극대화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 디딜 땅과 그곳에 붙어 있게 할 중력이 없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물체를 지구에서 처럼 달리거나 뛰어올라 회피할 수 없다.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이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이동하거나 방향을 조정할 수도 없다. 게다가 관성을 멈춰줄 힘이나 장애물도 주위에 없어 한 번 외부의 충격으로 날아가면 다른 것에 부딪힐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우주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우주 속의 ‘완벽한 고립’ 뿐이다.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인간은 우주에서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없었다.
어쨌든 결국 닥터 스톤은 지구로 돌아온다. 강(바다?)에 낙하하고 헤엄쳐 뭍으로 올라와 드디어 땅에서 중력을 느낄 때, ‘Thank you’라는 말과 함께 흙에 키스를 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생사의 고비를 왔다 갔다 했던 그는 얼마나 그 힘이 그리웠을까. 이제 마음껏 친구들과 수다를 즐길 수도 있다. 그 순간 스톤에게 중력은 단순히 잡아당기는 힘이 아니라 지구가 끌어안는 힘일 것이다.
이것저것 많은 요소들이 추가되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은 굉장하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적으로 단 2명의 등장인물(또는 2명 같은 3명?)로 그 못지않은 긴박감을 만들어 낸 이 영화 또한 대단하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꽉 찬 사운드는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지만 서너 명으로 이루어진 밴드 음악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