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then there were some.......
영국의 시인 William Wordsworth의 ‘The Ruined Cottage’라는 작품이 있다. 이 시에서 배경인 ‘폐허가 된 오두막’은 그냥 장소가 아니라 기억을 간직한 장소다. 시의 등장인물인 ‘도봇장수’가 그 집을 둘러보면서 그곳에 살았던 ‘마가렛’을 떠올린다. 장소와 사물은 사람들과 순간을 함께하고 그 시간을 채운 기억들을 간직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자신이 가진 추억을 함께 나눌 누군가를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영화 ‘더 테이블’은 한적한 동네 어느 카페의 한 테이블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같은 자리에 네 커플이 머물다 간다. 각각 다른 기대를 안고 다양한 목적과 사연이 부딪치고 어우러진다. 테이블만이 모든 상황을 묵묵히 바라보고 듣는다. 그들은 같은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눴지만 다른 기억을 갖고 헤어진다. 훗날 같은 테이블을 보고 다르게 추억할 것이다.
‘더 테이블’에 나오는 사람들은 참 인간적이다. 눈치 없고, 어리숙하고, 내성적이고, 뻔뻔하고, 우유부단하고…. 인물들의 직업을 보면 평범하다고 할 순 없지만 어딘가 불안정하고 느슨하고 결핍된 부분이 있어 괜히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사람 냄새를 풍기는 인물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고민과 사정을 갖고 만나서 대화를 한다. 일상적인 말을 주고받으면서 묘하게 변하는 감정선이 재밌다. 처음에는 불안하게 겉도는 대화와 설렘, 어색함, 불편함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본래 목적이나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감정과 태도가 바뀐다. 분노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설렘이 되기도 하고, 찐한 감동이 되기도 하고, 더 큰 미련과 아쉬움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태어나서 떠난다는 관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작과 끝이 같다고 모두가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다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보인다. 하물며 ‘카페’라는 한 장소에서도 우리는 다른 이유들로 와서 다른 결과들을 안고 나간다. 그러고 보면 카페는 참 흥미로운 장소다. 음료를 시켜야 한다는 것 말고는 딱히 지켜야 하는 의무가 없다. 그래서일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하는 사람, 쉬는 사람, 얘기하는 사람,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많은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을 접하고 나만의 소소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더 테이블’은 우리 일상 속 한 부분을 포착한 영화다. 부드러운 색감. 깔끔하고 아담하면서 이쁜 장소와 소품.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배경에 녹아드는 배우들의 연기. 이렇게 별 특별하지 않을 것 같던 일상을 정성스럽게 담은 영화는 고맙다. 평범한 내 삶 속에서도 특별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처럼 큰 감정과 에너지 소모는 없었지만 카페가 마감할 때까지 편하게 휴식을 잘 취하고 온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