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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하우스군 Jan 25. 2021

에필로그 1. 우울증에 걸렸대요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참 이상한 시간

 그나마 가장 최근에 글을 언제 업로드했나 보니 작년 8월(2020년)이었네요. 그동안 계속 글을 올려야지 올려야지 하면서도 평일에는 무한 야근에 지치고 주말에는 저도 제가 이상할 만큼 무기력하게 가만히 누워만 있었던 시간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딘가 고장 난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 돌이켜 보니 이 때는 사람 만나기도 싫었고 주변 사람들한테 뭔가 긍정적인 대화를 한 기억이 거의 없는 시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되어서 이 글을 쓰지만, 제가 우울증으로 그런 감정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일부러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한 점도 있었습니다. 글을 써도 글이 정상적인 내용이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만약 제 부족한 글을 기다리셨던 분이 계시다면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점 죄송하지만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앞으로는 그래도 주기적으로 올리는 모습을...)


 연차가 쌓이면서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회사 일이 너무 많아져서 작년만 해도 평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긴 했지만, 주말에 이것저것 하는 취미들로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살금살금 그 행복감마저 부서져 오다가 우울증까지 오게 되었나 하고 생각합니다. 신입사원 때와 달리 야근을 비롯한 근무시간문제나 회사에 대해서 예전보다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제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여겼는데, 갑자기 터져버린? 듯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터져버리게(?) 된 데에는 기폭제와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사무실에서 필요하지 않은 존재 같다고 느꼈습니다. 특정 업무를 진행하면서 임원 둘은 각자 서로 다른 의견을 매일, 매주 저에게 주었습니다. 심한 말과 함께 말이죠. 그 둘이 제 부서도 못 정해주는 중에 한 주에 자리만 세 번 옮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제 생각으로는 제가 사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봤습니다. 이 업무의 이상함과 상황에 대해 파트장부터 임원 본인에게 면담도 해보고 안돼서 탈출 시도(?)도 해보았었는데, 모두 다 소득이 없었고 결과가 이렇다 보니 그냥 기운이 빠지고 체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로 남은 것은 1인 파트와도 같은 상태가 된 제가 남았습니다. 결정권자 간의 의견이 서로 다른데 그 결정권자들은 매주 간섭을 하고 혼자서 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업무량에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왕따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우울증이 시작된 저는 딱 3월까지 버티고 봄 되면 깔끔하게 퇴사하자! 하는 마음으로 버텨가면서 회사를 다녔습니다. 이 동안에는 그냥 이 상황에서 '이 일을 해내면 멋있을 거야. 나한테 큰 경험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최면을 걸면서, 심지어 진짜 멋있다는 보장은 없음)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서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이렇게 저는 우울증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병원에 갔을 때 표정이 얼마나 세상 심각해 보였으면 의사 선생님이 그 표정 때문에 약을 처방해주셨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무슨 표정이었는지 저도 궁금하긴 합니다.


 하여간에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그런 고생에도 적응하겠지! 그리고 상황은 점점 좋아지겠지! 원래 인생은 그러니까!'라고 생각하며 버텼던 제 희망과 다르게, 한 두어 달 뒤에도 제 마음의 상태도 제가 처한 상황도 더욱더 나빠지게 되었고 결국 저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병가를 쓰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제가 우울증을 걸려 병가를 쓰기까지의 대략적인(?) 이야기입니다.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우울증이 왔다고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실제로 평균적인 정도보다 기본적으로 이런 일에 대한 내성이 '약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다른 것 보다도 제가 우울증에 걸린 후 겪었던 감정이나 생각,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본론으로 돌아가면, 이 기간 동안 저는 아주 게을러지고 무기력했습니다. 약을 먹었던 동안에는 약 때문인 이유도 약간은 있는 것 같지만 증상이 심해진 후에는 쉬는 날이면 적어도 16시간은 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에만 누워있었습니다. 눈만 깜빡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또 이상한 게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은 또 움직여야 하는데, 뭔가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더 한심해지고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무서운 것도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무엇인가 행동하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저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아가가 처음 걷는 것처럼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아주 작은 것부터 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샤워하기가 하루 목표였습니다. 정말 하루 종일 누워있다가 간신히 그렇게 하나를 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면도하기부터 해서 밥 먹기 등등 작은 목표를 가지고 다시 조금씩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뭔가 저도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으면서 유튜브나 인터넷에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조금씩 하루를 소비하는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햇볕을 봐야 좋아진다고 해서 그때부터는 5분이라도 밖에 나가보았고, 그렇게 조금씩 시간도 늘려가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걸으면서 좋아하던 노래도 들어보고, 집 앞 카페에 나가서 그림도 조금씩 그려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조금씩 하나씩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좋아졌던 것 같습니다. 왠지 모르게 낯간지러웠지만 잠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좋아지고 있어, 잘하고 있어'라고 칭찬도 해줬습니다.

 

 어릴 적부터 하도 많이 다치고 수술해서 상처가 보이는 병은 어떻게 해야 낫는지 익숙한 편입니다. 그런데 이 병은 지금도 완치가 된 것일지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이 병을 앓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정말 많이 찾아봤습니다. 몇 년을 고생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에 비하면 기간도 짧고 정도도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이 경험을 겪어보니 정말 어려운 병인 것 같습니다. 증상도 아마 사람마다 각양각색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스스로 우울증인지 번아웃인지 구분하는 것도 어려웠고(구분이 가능한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일이 출발하게 된 건지, 불쑥불쑥 찾아오는 그 무기력하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마음은 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습니다. 


 지금 이 병을 겪고 계시는 다른 분이 만약 제 글을 보신다면, 꼭 힘을 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더 좋은, 행복한 삶이 금방 찾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사실 운도 좋고 복 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진짜 고생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참 빨리 좋아지고 다시 부지런히 열정적으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함부로 말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정말 이 병으로 힘드신 모든 분들이 좋아지시고 더 행복하게 되셨으면 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타인이 환자를 보는 인식도 이상하고, 제 스스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기도 그런 병인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는 그 이상한 감정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공유하기에도 쉽지 않은 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주제로 글을 쓰기로 생각하고 나서도 글을 쓰는 게 정말 괜찮은 일일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아마 업로드하고 나서도 지울까 말까 계속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심장이 뛰는 상태로(뭔가 안 좋은 느낌으로) 글을 쓴 것은 이 글이 제 평생에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제 부족한 글을 보고 조금 이나마의 도움이나 위로가 되신다면 좋을 것 같아서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이 병이 감기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독한 감기인 것 같긴 하지만. 감기도 걸리고 나면 몸에 항체가 생기듯이 이 병도 좋아지고 나면 저 스스로는 더 좋은 사람이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의 감정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 더 많은 면을 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다만, 그런 사람이 되기에 시간이 필요하고, 

 다만, 조금 많이 힘든 일들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더럽게 힘들긴 한데...)

 많이 힘드신 분이 계시다면 이렇게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너무 힘들다는 것도 제가 느껴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는지도 솔직히 너무 조심스럽지만, 꼭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의 글이고 감정적인 얘기를 쓰다 보니 두서가 참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원래도..) 다음번에는 이후에 퇴사를 결심하게 된 얘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언제나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는 분들에게는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더 행복한 하루 되시고,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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