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헤쳐나가 보자구요 우리
내 인생에 이렇게 쉬어 보는 일이 있을까 하는 휴직기간이다
매일매일 가던 지루하고 피로감이 어마어마했던 방사선치료도 끝났다.
꼬맹이도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덕분에 엄마한테 아기 맡기고 일 다니느라 생긴 미안함과 죄책감도 어느정도 줄어,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맘껏 즐겨보자 했다.
친구도 만나고, 도서관 가서 실컷 책도 보고, 매일 한시간 이상씩 걸어다니면서, 아이 낳고 가져본 적 없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하다.
다만 휴직으로 인해 소득이 줄어 가계부를 보고 있자니, 속이 쓰린 것 말고는 만족스러운 삶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신랑과 현관에서 인사하는데 새벽배송 온 쿠팡박스를 본 신랑이 '뭘 또 샀어?" 한다.
나는 '응, 애기 반찬이랑 이것저것' 하고 대답하는데 내 기분이 뭔가 찝찝하다.
뭐지. 이 기분 나쁜 찝찝함이란 뭐지.
왜 때문에 나는 죄진것 같고 죄책감이 드는거지?!
'내가 돈도 못버는데 자꾸 쇼핑해서 그런건가' '내가 생활비 관리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건가' '내가 집에서 돈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물론 이 얘기가 다 맞는 얘기긴 하다. 수입도 줄었고 뉴스에서는 경제가 유래없이 나빠질 것이니 현금을 모아놓으라고 하는데, 나는 복직을 미룰까라는 카드를 신랑에게 꺼냈더랬다. 육아도 할머니랑 같이 하고 있으니 뭐 내가 지금 딱히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착한 신랑이 저런 뜻으로 말하지는 않았을꺼다. 지금도 자기 용돈으로 커피사먹으라고 보내주는 착한양반이 그랬을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분이 찝찝한것은 '밖에서 생산적인 활동으로 수입을 창출해 내지 못하고, 소비만 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퇴직한 언니가 '나는 회사다니면서 육아하는게 너무 힘들었어, 아침에 픽업해서 어린이집 보내고 회사일 시간안에 빡시게 하다 애 픽업해서 집에 데려오고. 신랑은 집이 멀어서 더 늦게 들어오니까 독박육아하고, 내일 어린이집 갈꺼 준비하고 일할꺼 챙기다보면 죽을것 같았어.지금은 그래도 잠이라도 잘 수 있어 너무 좋아' 하며 퇴직후 삶에 만족해 했다.
다만 언니가 하나 걸리는게 있다면 그건 수입이였다. '다른건 다 괜찮은데 돈 쓰는데 이상하게 눈치가 보여, 내 퇴직금도 있고 집에서 애보는게 노는게 아닌데 이상하게 그게 눈치가 보여'한다. 세상 남 눈치 안보고 사는것 같은 언니가 저런 말을 하니 이상하기도 했는데, 이제 그게 무슨느낌인지 알 것 같다.
남편이 주지도 않는 눈치를 왜 나는 나에게 스스로 주고 있었을까.
애를 낳고 육아휴직하면서 집에서 애를 보는데, 하루종일 말도 못하고 아직 인간과의 상호작용이라는게 어려운 생명체와 집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했다. 엄마들은 알겠지만 집에서 누워만 있는 백일 전후 아이와 할 수 있는 대화가 그렇게 많지 않아, 이러다가는 내 사회성 마져 줄어들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한번씩 바깥 공기가 마쉬고 싶어서 애를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나간다. 커피 딱한잔만 마시고 오고 싶어 카페에 가서 앉는다. 애가 울까봐 노심초사 하다 겨우 주문한 커피가 나와 한모금 마시려는 순간 앵~하고 운다. 엄마 한모금만 마시고 가자~하지만, 애가 그말을 알아들을리 없다. 우는 아기소리에 사람들이 쳐다보고, 그렇게 다시 집에 오면 아기는 어느새 잠들어 있고, 내 커피는 식어 있다.
어느 드라마인지 영화에서인지 카페에 앉아 대화화는 아기엄마들을 보고 팔자가 좋다느니 하고 수근거리는 장면이 있었다. 사실 나도 전에는 그랬더랬다. '좋겠다 이시간에 여기서 커피도 마시고.'
근데 겪어보니 아니더라. 그 엄마들은 숨쉬고 싶어서, 안그러면 안드로메다로 정신이 나갈것 같아서 큰 용기내서 나온거였다.
육아와 회사일 모두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육아는 회사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영역이다. 회사일이야 말그대로 회사일이다. 과정이 쉽고 어려운것을 떠나서 어떻게든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해결되고, 내가 아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해결가능한 영역이고, 어떻게든 결과물이 산출되며 업무과제별로 종료일이라는게 있다. 그런데 육아는 끝이 없다.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없고, 명확하게 이렇다할 산출물이라는 게 그때그때 나타나지 않는 장기프로젝트이다. 이렇게 힘든 육아를 하는데 옆에서 팔자좋다느니하고 애먼소리를 해대면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 밖에 없다.
마흔정도 나이가 되니, 직장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나 둘 떠나는 여성동지들이 생겨난다.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고군분투하는 여성동지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은 날이다.
잘 헤쳐나가 보자구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