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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Feb 16. 2024

여행은 현재 진행 중

# 내 인생의 위로자

내가 세상 여행을 시작하고 4년쯤 되었을 때부터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작은 손을 내밀어 잡았다. 지금 여행길 70년이 넘었다, 아직도 나는 그 위로자의 손을 잡고 있다. 그동안에도 나는 그 위로자의 손을 놓은 적이 없다. 세상 여행 끝날 때 까지도 그럴 것이다. 절대자의 손은 한 때 놓은 적이 있지만, 이 위로자만은 손을 놓지 않았다. 놓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 호흡을 멈추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위로자는 나의 생명이며 호흡이었다.     

      

내 기억으로 내 인생에서 제일 먼저 만난 위로자는 소공녀와 소공자였다. 레이스 칼라가 달린 벨벳 옷을 입은 멋진 소년이었던 작은 공자, 그는 착했고 용기 있는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나를 데리고 영국이라는 이상하고 멋진 나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의 집은 우리가 사는 집과 동네와 달랐다. 지붕이 뾰족하고 궁전 같았다. 나는 그가 살게 된 그의 궁전과 같은 집을 부러워했고 사랑했고, 따라서 소공자도 사랑했다. 어린 공녀 세라는 불쌍했지만 용기 있고 당당하고 밝았다. 세상의 온갖 차별을 다 받았지만 꿋꿋하게 견뎌내었다. 불쌍한 환경에서 좋은 환경으로 들어가 공주처럼 행복하게 살았다. 나도 세라를 알았을 때는 세라와 함께 아팠고, 불쌍했다. 우리는 울며, 웃으며 함께 걸었다. 얼마 후 세라는 아름다운 공주 같은 여인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렇게 될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걷는다. 소공자와 공녀는 지금까지도 여러 속삭임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너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야!"   

  

어린 마음이지만 누군가를, 무언가를 향한 사랑은, 나의 시간을 설렘으로 채워갔다. 그들과 함께 할 때 나는 언제나 행복했고, 내가 언젠가 멋진 대궐에서 살 수 있을 거란 꿈을 꾸었다. 그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세상 여행을 시작한 지 70년 만에 소공자와 소공녀가 살았던 영국이란 나라에 갔다. 내 나이 네 살 때의 그곳의 궁전이 그대로 있었다. 둥근 지붕과 뾰족뾰족한 탑, 그 안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림이 되어 그 궁전의 벽에 붙어있었지만, 소공자 소공녀는 아직도 대기 속에 떠돌며 살아있었다. 그들과 함께 했던 어린 소녀는 이제는 머리가 호호백발이 되었고 얼굴에는 검버섯과 주름투성이가 되었지만 그 대기 속의 그들을 만나 함께 호흡했고 그 느낌은 짜릿하고 행복해서, 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들에게 속삭였다. ‘잘 있었어? 너희는 여전하네, 나는 이렇게 변했단다. 너무 늦게 만나러 왔지?’ 갑자기 뜨거움이 안에서 복받쳐 나와 통곡하고 싶어졌다.     


영국이라는 나라에 간 김에 마음속에 항상 넣어놓았던 동네와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나는 몇 년 전에 ‘새퍼’라는 이름의 할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란 책을 선물해 주었다. 할머니가 만들어낸 책 속의 인물들은 너무도 순박하고 멋진 사람들이었다. 새퍼 할머니는 이미 세상 여행을 마치고 떠났지만, 그녀가 주고 간 책 속의 인물은 내 마음에, 그리고 영국 채널제도라는 작은 섬에 그대로 있었다. 용기를 내어 그 먼 곳, 채널제도라는 낯선 곳으로 갔다.        


그 낯선 땅은 부유했고 풍요로웠고 평화로웠고 멀리서 온 나에게 친절했다. 꿈같은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었다. 채널제도에 속한 섬은 여섯 개인데 그중 하나는 밤하늘이 얼마나 어두운지, 그 어둠 속에 빛나는 별은 얼마나 반짝이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작은 섬에는 사람들이 300명 밖에 살고 있지 않았고, 아스팔트도 없었다. 거리에는 인공 빛 자체가 없었다. 차의 소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섬의 이름은 어두운 밤하늘 공원이었다.           

그 동네는 한때 독일이란 나라에 점령당했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야 할 만큼 외진 곳이었다. 유난히 풍랑이 거센 섬이라 고립되어 있어서 전쟁이 한창일 때 그들은 그들의 국가로부터 버려졌어야 했다. 그들의 국가가 그들이 사는 작은 섬까지 방위할 만한 여력이 없어서였다. 그들은 고립되어서도, 그들이 세상여행을 시작했고 안착했던, 그들의 오랜 혈맹들이 함께 둥지를 틀고 살아왔던 그 동네를 지키려 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그럴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 우리가 세상을 여행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그들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그 동네를 지키는 동안 그들은 많은 힘듦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거친 삶을 이겨내었고, 지금은 세상에서 몇 번째 가는 부자 동네가 되어있었다. 그들의 승리를 가서 보았다. 마을은 아름다웠고 사람들의 표정은 온유했다. 한겨울이어도 봄처럼 따뜻했다. 그 동네에서 며칠을 있으면서 여행이 주는 행복을 최대한 느꼈다.  

              

여행을 하면서 내 공간과 내 주변의 동행자들만의 걸음은 때로는 식상하고 지루하고, 무료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내 주변의 동행인들에게 무례하게 굴게 되고,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때로, 내 주변의 동행인들을 떠나,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동행인들을 만나는 것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세상 여행길에 짬짬이 활력을 주고, 새로운 만남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고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세상을 알게 되자, 나에게는 또 다른 넓은 우주가 보였다. 그동안 나는 우물 속 개구리였다. 그 우물 속을, 내 있는 힘을 다해 펄쩍 뛰어 우물 밖으로 나왔다. 세상은 넓고, 내 주변의, 나와 같은 피부색, 머리색, 눈동자가 같지 않은 무수한 인간이 세상 여행을 하고 있고 그들은 나와 같지 않은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도 알았다. 신기했다. 재미로웠다. 세상 여행길을 걷고 있는 무수한 동행인들이 그들만의 혈맹의 부족을 이끌고 여행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은 신비였고, 새로운 깨달음이었고, 호기심을 일깨웠다. 나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여행하기 시작했다. 함께 여행했다가 다시 내 둥지로 돌아오면 거기엔 또 다른 익숙함의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평화 속에 살고 있는, 함께 살고 있는 혈맹의 끈끈함과 애정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아직도 얼마나 남은지 모르는 내 세상 여행길에 활력을 줄 것이다.
 

이 깨달음은 4살 때부터 동행했던 나의 절대적인 위로자 덕분이었다. 내가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이 위로자를 만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하다.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나는 이 위로자를 놓치지 않았다. 

내 인생의 첫 번째 동행자 엄마, 아버지를 보내고, 새로운 집단으로 들어와 살면서 만난 내 두 번째 엄마인 그녀는 오랫동안 나에게 냉정했고, 사나웠고 무서웠다. 그 좁은 집단 속에서 내가 피신 할 수 있는 곳은 이 위로자가 있는 곳 뿐이었다. 위로자는 나에게 현실의 힘듦과 무서움 속에서 견딜 수 있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너보다 열배는 더 힘들게 살았던 여인들이 있었단다. 소녀때 가스실에서 죽어야만 했던 안네가 있었고, 몸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려야했던 소냐가 있었고, 부잣집 도련님에게 몸을 버리고, 시베리아 벌판으로 유배를 가야했던 가여운 카츄사도 있었단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모두 부활했단다. 세상에서 그녀들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숭고한 여인으로 떠받쳐 주고 있단다. 하며..     


위로자를 통해 만난 세상의 모든 유형의 인물들과 내가 몰랐던 많은 세계를 마음에 품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내 두 번 째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자유가 주어졌고, 나는 내 스스로 내 어깨에 날개를 달았다. 그리고 살며시 한 번, 두 번 나르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구름이 하늘 위에 있는 게 아니라 하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참 신기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하늘 속을 날으고 있는데, 구름이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보다 아래에 있더라, 그리고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에서 바라보면 하늘은 또 더 위에 있었다. 우주라는 것이 내가 알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또 알았다.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우주라는 세계를 알아내는 천재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오래 세상 여행을 한다 해도 알 수 없는 것은 우주뿐 아니라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 머리, 내 심장 밖의 영역은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생각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살기가 편해졌다. 굳이 너무 어려운 것은,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깨달음도 세상 여행길 70년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걸음이 훨씬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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