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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Dec 03. 2023

여행은 현재 진행 중

<동물 농장 -1>

돈이 필요했다. 당나귀를 팔러 가야했다. 아들과 함께 당나귀 고삐를 둘이서 번갈아 가며 잡고 걸었다. 어디쯤이었다. 지나가는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우리를 보고 소곤대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저 아줌마 참 멍청하네. 당나귀를 타고 가면 될 텐데. 모시고 가나 봐~ 크크"


나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다. 또 어디쯤이었다. 지나가던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아들에게 들리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한다.     

"쯧쯧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가 없고 불효막심해. 엄마를 태워야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겠어."

나는 아들을 당나귀에서 내리고 내가 올라탔다. 아들이 당나귀 고삐를 잡았다.     


또 어디쯤이었다. 이번에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쯧쯧 혀를 차며 나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아이고 ~ 아들이 아직 어리구먼, 아들을 태워야지. 저렇게 가고 싶을까?"


나는 아들도 당나귀에 태웠다. 또 어디쯤이었다. 건장한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조그만 당나귀 한 마리에 두 사람씩이나 타다니, 당나귀가 참 불쌍하네요. 그렇게 가다간 얼마 못 가서 쓰러질 거요! 이미 당나귀가 지쳐서 헉헉 거리는구먼. 그러지 말고 당신들이 차라리 당나귀를 들고 가시오! " 

  

순간 이러다가 당나귀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니 아찔했다. 얼른 내렸다. 튼튼한 긴 막대를 구해서 당나귀를 묶고 아들과 둘이서 어깨에 메고 갔다. 조금 가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힐긋힐긋 보며 웃어대더니 순식간에 모여서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젖힌다. 그 소동에 나도 놀랐지만 어린 당나귀는 더 놀래서 마구 몸부림을 쳐대는 통에 당나귀를 놓치고 말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당나귀는 마구 몸부림을 치며 발광하더니 어설프게 묶은 줄을 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들과 나는 놀라서 당나귀 뒤를 쫓아가는데, 사람들은 배가 아파죽겠다는 듯, 배를 움켜잡고 우리를 보고 웃어댔다.      


결국, 우리는 미처 날뛰며 도망간 당나귀를 놓치고 기진맥진하여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한참을 망연히 앉아있다가 겨우 일어나 아들의 손을 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며 나의 어리석음에 손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젊은 여인은 당나귀를 그냥 끌고 가는 우리를 보고 어리석고 바보라고 놀렸고, 할머니들은 아들이 엄마에게 불효한다고 나무랐고, 아줌마들은 아들을 불쌍하다 하고 나를 나쁜 엄마로 몰아붙였고, 아저씨는 당나귀가 불쌍하다고 했다.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했다고, 잘못하고 있다고, 나는 참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명한 그들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 나는 지금 당나귀도 놓치고, 거기다 어린 아들과 지쳐서 걷기조차 힘들다. 거기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나귀를 팔아 돈을 받아서 쌀을 사려했는데, 돈도 없다. 오늘 저녁은 굶어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때야 알았다그들의 말과 생각은 그들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누구나 모든 것에 현명하지는 않다는 것을. 그냥 처음 내 생각대로 당나귀를 끌고 가는 것이 맞았다는 것을. 그랬으면 이런 비참한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을. 나는 이제 내 생각대로 해야겠다. 내 생각대로 할 것이다. 그러려면 좀 더 마음이 단단해져야겠다.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말고. 

   



피곤할 때는 휴식이 필요하다. 같은 것에 흥미를 느끼는 동행끼리 모여서 게임을 한다. 오래 하다 보니 마음 맞는 동행끼리 소집단을 만들었다. 그러다 그중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 조금 잘난 쪽과 조금 못난 쪽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조금 잘 난 쪽은 따로 모여서 돈을 많이 들여 좋은 곳으로 놀러도 가고 맛있는 것도 서로 나눠 먹고 더 두터운 우정을 과시했다. 조금 못난 쪽은 조금 잘난 무리에 들어가고 싶어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좀 잘 나가는 무리에서 제일 힘 약한 자가 야멸차게 그들를 몰아내었다. 그렇게 소집단에서도 좀 잘 나가는 무리는 좀 못 나가는 무리를 슬며시 무시하고, 뒷 담화를 하고 때로는 몰래 조롱하면서 자기들의 무리를 스스로 더 돋보이게 했다. 조금 못난 무리는 그들끼리 속상해하고, 좀 잘 나가는 무리를 향해 쓴소리를 하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모여서 자기들끼리 또 잘 나가는 무리를 비난하며 뒷 담화를 했다.     


그러다가, 좀 잘 나가는 무리 중에서도 가장 힘 센자가 갑작스럽게 여행을 끝마치게 되었다. 공백이 생겼다. 그러자 조금 못난 무리 속에서 그나마 힘이 있던 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남아있는 조금 못난 무리에서 조금 잘 난 무리에 합류하고 싶어 기웃거리는 자들을 야멸차게 몰아내는 역은 그가 하기 시작했다. 그 역할은 앞서 한 자 보다 더 냉담하고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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