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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Nov 19. 2023

여행은 현재 진행 중

# 예언자 

그때 우리가 묵은 숙소는 미닫이 문으로 나뉘어진 작은 방 두 개가 모두였다. 거기서 여려 혈맹인이 묵어야 했다. 어린 동행인들이 자라면서 좀 더 큰 방이, 많은 방이 필요했지만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 기대할 그 무엇도 없었다.  

    

나는 답답해서 어느 이름있는 예언자를 찾아갔다. 그 예언자가 내가 태어난 날과 시간을 물었고 이름도 물었고 나이도 물었다. 예언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는데, 40대가 되면 환경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50대가 되면 더 좋아질 것이란다. 60대가 되면 더 좋아질 것이란다. 70대가 되면 더 좋아질 것이란다. 그 말에 웃음이 나와서 실실 웃었다. 적당히 희망을 주기 위해서 해 주는 좋은 말로, 앞으로 괜찮아진다는 말이면 족할텐데, 40대 50대 60대 70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재미있고 좋으면서도 믿음은 가지 않았다.     


“좋아질 것이 하나도 없는데요" 했다. 그랬다. 그 당시에는 아직 젊은 우리의 가장은 직업을 못 갖고 있었고, 우리는 온전히 여부족장의 힘에 의존하고 있을 때였다. 예언자가 말했다.     


"부자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굶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말에 또 웃음이 터져나왔다. 순간 괜히 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내 형편으로는 그에게 주는 점술비가 적지 않은 돈인데, 그 돈으로 저녁 찬거리나 좀 더 살 껄, 생각했다. 그가 계속 말했다.     


"당신 관상이 좋아요, 위에는 조금 고생할 상이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비율이 좋고, 무엇보다 주걱턱이라 위에서 흘러내리는 운을 받쳐주고 있거든요. 영부인을 보십시오. 주걱턱 아닙니까, 당신은 노후에는 좋을 겁니다."


지금은 주걱턱 운운하는 하는 말을 거의 듣지 않는데 아마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뾰족한 주걱턱이 살에 묻혀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젊었을 때는 주걱턱이란 말을 자주 들었다. 예언자의 말에 자꾸 싱글싱글 하니까 다짐하듯 한 마디 더 덧붙혔다. 나는 그가 꺼낸 영부인의 주걱턱보다 그 말에 더 혹 했다.     


"이 사주는요, 하나가 막히면 다른 하나가 열리는 사주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면 총알이 피해가는 사주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그의 말을 기억한다. 그가 높힘말을 썼는지 반말을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한 말은 정확히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40대가 되어도 무엇으로 살아도 어떻게 살아도 더 나아질지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근본적인 것이 하나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나의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게 예언자의 말이 맞아 갔다. 40대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예언자의 말대로 부자는 되지 않았지만 굶지는 않고 50대, 60대로 오면서 생활이 안착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아주 가끔 내 동행인들에게 그때 그 예언자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그러면서 꼭 이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 당시 예언자가 말했던 주걱턱을 가진 영부인의 노후를 생각했다. 그분은 분명 특별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셨을테고 예언자가 말한대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감출래야 감출 수 없을만큼 뚜렷한 주걱턱을 가지셨다. 아마 나보다 10년은 먼저 세상 여행을 시작하셨을터이다. 그분은 어쩌면 아직도 부자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주걱턱이 그동안 쌓은 그녀의 명예를 받쳐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받쳐줄 명예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그런 것에 마음 쓸 필요는 없겠으나, 그래도 꼭대기에서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부자는 되지 못하나 굶지는 않는다는 그 말이 얼마나 정당하고 복된 말인지 새삼 예언자에게 감사한다.     


그렇게 70대가 되었고, 나는 오래 전 그 예언자의 말을 떠 올린다. 60대는 더 좋아지고, 70대가 되면 더 좋아지고를. 그 예언자가 80대를 입에 올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70대는 확실히 기억이 난다. 내가 그 예언자를 만나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40년 전이다. 그 사이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걸으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가장 크게 변화를 체감하는 것은 세상 여행길에 올라선 인간들의 세상길이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많이도 길어졌다. 내가 예언자를 만났던 그 시기는 여행을 끝내는 인간들의 시간이 60년이 평규치였다면 지금은 100년이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예언자가 말한 70대는 그 이후를 통틀어 하는 시간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편안하다. 앞으로의 시간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붙는다. 내 지난 시간을 예언했던 예언자의 말이 어느 정도 맞았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 와 봄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 예언자가 앞으로의 시간도 더 좋을 것이다라고 했으니 얼마나 힘이 되는가. 예언자가 말한 숫자는 70이지만, 나는 세계의 변화라는 시점으로 생각해 70이란 숫자를 100으로 대응했다. 그것은 나만의 대응법이기도 하지만 옳다라고 생각한다. 긴 여행을 하면서, 지금도 현재 진형형인 여행길에서 지친 내 육신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중 가장 큰 것은 내가 나를 위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위로는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그들이 편안할 때 상대적으로 위로의 말이 많이 나온다. 그들이 힘들 때는 그들도 스스로를 돌보느라 타인을 위로해 줄 여력이 없다. 그러니, 너무 타인의 위로에 기대지 말자.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지혜로움과 힘을 기르자.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의 집단 속에 혈맹인들도 나처럼 그들의 새로운 동행인을 만나 그들의 집단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그 사이 내 뱃속에서 둥지를 틀고, 내 속의 좁은 통로를 지나 세상으로 여행길에 오른 내 어린 동행인들은 무럭무럭 자라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채워주었다. 그들은 이제 우리 집단의 가장 강렬한 혈맹의 동행인이 되었다.      


어린 동행인들이 자라면서, 그들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여행길에 그들의 생존이 튼튼하도록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양육할 책임이 나에게는 있었다. 나는 내 동행인과 같이 사회로 나가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부자가 되어보자는 엄청난 욕심은 결코 없었다. 작은 돈이나마 내 집단을 배불리 먹이고 양육시키는 데 도움을 보태자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 결과과 그 예언자의 말에서 자라났다.      


어떤 사물을 보고, 어떤 말을 듣고, 어떤 글을 읽었을 때, 어떤 시각으로, 생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냐는 각자의 몫이다.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나에게는 좀 있는 것 같다. 허상이며 생각의 사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긴 여행길에 결코 해가 되는 습관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부정적인 평가와 생각은 자신이 자신에게 상채기를 내는 작은 폭력이다. 세상으로 하여금 나에게 폭력을 쓰지 못하게 하려면먼저 내가 나에게 가하는 습관적인 작은 폭력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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