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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Nov 12. 2023

여행은 현재 진행 중

# 여행의 확장, 배신 

동행인은 늘어나고 늙어가는 여부족장은 갈수록 힘에 부쳐했다. 이제는 내가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나이 든 여 부족장은 나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뒤로 물러나 앉았다.    

           



중년이 다 되어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된 곳은 책과 학습지와 테이프 등을 가가호호 방문해서 파는 집단이었다.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많은 동행인들을 만났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움직였다. 거의가 나처럼 주부였다. 집안 일과 밖의 일을 함께 해 나가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 힘든 일을 열심히 해 나가고 있는 동행인들을 보면서 나에게도 알게 모르게 어떤 에너지가 발산되었다.     


내 능력은 아니었다. 아마도 살아오는 동안 이런 일을 처음 해 보는 거라 그 순수함에 동화되어 호의를 베풀어주었던 것이란 것을 아주 뒤늦게야 깨우치게 되었다. 그전에는 그것이 순수히 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잠재되어 있던 내 능력이 발산되어 그런 결과를 가져온 거라고 내심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함께 일하는 동행인들이 부러워하고 내 능력을 인정해 주었다. 집단 속에서 나만의 또 다른 작은 집단을 이끌게 되었다. 소위 작은 그룹의 리더가 되었고, 내 소속의 작은 집단은 날로 확장되어 갔다. 내 집단의 동행자들이 말했다. 이제는 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기에는 당신의 능력이 아깝다. 따로 당신만의 집단을 만들라고. 그러면 우리가 모두 당신을 따르겠노라고. 그 말을 자주 듣게 되니 은연중에 나에게 그런 집단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나만의 유일한 집단을 만들어, 내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동행인들에게 더 많은 희망과, 보수와 부를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것은 실행으로 옮겨졌다.      


보스에게 내 마음을 전달했다. 그동안 보스 밑에서 일하게 되어 행복했다고, 많이 배웠다고, 그 은혜는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보스가 간곡하게 만류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자신이 이 자리에 오게 될 때까지의 여러 일들을 진정 어린 마음으로 말해 주었다. 이상하게 보스가 간곡하게 만류할수록 나의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아마 그때는 나도 당신만큼 해 낼 수 있다는 자만감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내 소속의 활동만으로 그 집단이 유지가 된다고 할 만큼, 우리 그룹의 파워는 컸고 다른 그룹은 지리멸렬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보스가 되었다. 나를 따라 그곳을 나와, 함께 일하게 된 동행자들은 열심히 신나게 일했다. 그들이 나를 부추겨 새로운 보스를 탄생시켰으니, 국가로 말하자면 개국공신인 셈이다. 역사책에서 읽어본 것이 현실이 되었음을 그 순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새로운 동행자는 계속 늘어났다. 개국공신들은 새로운 동행자의 리더가 되어 각자 작은 집단을 만들게 되었다. 그들의 소 집단은 새로운 피가 몸에 수혈되듯, 우리의 집단에 새로운 활력을 공급해 주었고, 그 덕분으로 나의 집단은 더욱 공고해졌다.      


땅은 굳어진 듯했다. 성공했다는 생각에 행복했었다. 일터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당당했다. 그렇게 안이하고 행복한 일상의 어느 날이었다. 그야말로 일등 개국공신 다섯 명이 미소를 띠며 함께 들어와 다소곳이 내 앞에 앉았다. 얼굴만 봐도 기분 좋은 동행인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들에게 언제나 신뢰와 다정한 미소를 보냈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 중의 리더였을 것이다. 겸손되고 신뢰감이 느껴지는 자세로 조근조근 말했다. 그동안 여기서 행복했노라고, 보스에게 많이 배워 고마웠노라고, 그 고마움과 여기에서의 성공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그래서, 이제는 자기들도 나처럼 황야에 나가서 그들만의 터전을 잡아볼 수 있는 꿈을 꾸게 되었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노라고. 보스님이 자신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고 응원해 주실 것을 믿고 인사드리러 왔노라고.     


 

행복은, 타인에 의해 이루어진 성공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 손에 들고 있는 얇은 유리창 같은 것이란 것을 그때 알았다. 그들은 그들의 소집단을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그들만의 터전에서, 새로운 터전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하필 그들이 자리 잡은 터전은 나의 터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들의 소집단 무리가 떨어져 나간 우리 집단은 텅 비어버렸다. 개국공신들이 그동안 나를 위해 일하면서 무리를 만들었던 그 무리들이 나가고 나니 남아 있는 동행인들도 패잔병처럼 힘이 빠져 도무지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패잔병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새로운 진영으로 숨어 들어갔다.    

  

허탈했다. 그들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참혹했다. 비참했다. 텅 비어있는 일터를 보며 도저히 소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때야 또 깨달았다. 그야말로 그동안 걸어 온 인생의 도상에서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내 무리들은 나를 배신한 거였다. 또 내가 그들처럼 했던 지난 내 행동도 배신이었다는 것을.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속어가, 속어가 아니고 진리였음을.   

   

그때서야 옛 보스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통화음 뒤에 들리는 말은, 없는 번호라는 것이다. 갑자기 가슴에 진통이 느껴졌다. 진실되이 말하지만 그 순간 가슴의 진통은 그 옛 보스를 위한 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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