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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Feb 18. 2024

여행은 현재 진행 중

# 우화는 우화일 뿐 

동행중에는  네 발 달린 종족뿐 아니라 여섯 발, 여덟 발을 가진 종족도 있다. 다만 여섯 발, 여덟 발을 가진 종족을 네 발 다린 종족처럼 우리와 같은 등급으로 대우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 또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튼, 아직은 그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나름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열심히 먹고 먹히고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이 준다. 먼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다. 개미는 부지런하고 베짱이는 여름 내내 악기만 다루고 노래만 부르는 게으른 곤충이었다, 개미는 여름 땡볕에서도 열심히 땀 흘려 일해서 많은 곡식을 비축해 두어, 일 할 수 없는 추운 겨울이 오면 따뜻한 곳에서 비축해 둔 곡식을 꺼내어 안락하게 겨울을 지내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움을 갖고 있는 곤충이다. 개미가 뜨거운 여름날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할 때, 베짱이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악기를 치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신선처럼 놀다가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 쫄쫄 굶어서 노래를 부를 힘도 없이, 개미를 찾아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먹을 것을 구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부지런하고 열심히 산다며 칭찬했고, 베짱이처럼 게으른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쯧쯧 혀를 찼다.     


그런데 내 앞길만 보고 걷느라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 사이 검은색과 흰색만 있었던 세상이 총 천연색 색깔로 바뀌면서 개미와 베짱이의 신세도 따라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땡볕에서도 쉴 줄 모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무리 지어 일하는 개미는 자칫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음에 발바닥에 밟혀 무더기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하루살이처럼 가여운 곤충이 되어버렸고, 몸을 쓰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악기만 다루며 노래를 불러대며 놀던 베짱이는 두발 달린 인간의 우상이 되어있었다. 베짱이는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운 목소리와 자태로 인간을 유혹하고, 위로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들을 우러러보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일하던 개미도 환골탈태 베짱이처럼 되어보려고 그들의 일터를 벗어나 베짱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사실 베짱이는 겨울까지 살 수 있는 곤충이 아니다. 베짱이는 실제로는 무서운 육식성 곤충이기 때문에 베짱이가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개미를 찾아갔다면, 그것은 개미에게 먹을 것을 구하러 간 게 아니라 개미를 잡아먹으러 갔던 것일 수 있다. 그런 것을 우화로 꾸며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우화에 속지 않는다. 너무 현명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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