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살 순남이의 어릴 때 동네 목욕탕은 한 달에 한 번, 공식적으로 몸의 때를 빼러 가는 날이다. 우리 집 만이 아니다. 그때는 대부분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갔을 거다. 그나마 그 정도는 집이 어느 정도 살아야 하는 행사다. 집에 지금처럼 샤워실이 있어서 매일 샤워를 해서가 아니다. 샤워실이라니, 뜨거운 물도 안 나오던 시절이었다. 찬물을 연탄불에 데워서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젊은이들은 ‘응답하라 1988’을 보면 대충 그 장면이 상상이 될 것이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 자리 잡은 목욕탕이 꽤 되니 말이다. 그 시절만 해도 양호했다. 1960년대는 집과 가까운 곳에 목욕탕이 없는 사람들은 전차를 타고 남의 동네까지 가야 하기도 했다.
엄마와 목욕탕에 가는 날은 완전히 살가죽이 하나 벗겨나간다고 생각할 만큼 모질게 밀렸다. 때밀이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타월을 꼭 짜서 돌돌 말아서 사용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한 달 내내 재여 놓은 때를 벗겨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타월 안에 작은 돌멩이를 넣어서 감싼다. 그때야 타월은 제 역할을 한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가 되면 며칠 전부터는 목욕탕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가는 사람들의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목욕탕 문 열기 전에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뿐 만이 아니다. 긴 줄의 순서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족들끼리 교대로 줄을 선다. 그런 날은 탕 속에 회색빛의 때가 둥둥 많이도 떠 다닌다. 목욕탕 아줌마가 망태를 들고 들어와서 때를 걷어 낸다.
토, 일요일 목욕탕에 가면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평소에는 못 만나는 친구들의 언니, 엄마도 만난다. 발가벗은 몸으로 어른들께도 인사한다. 엄마에게도 인사를 시킨다. 우리는 모두 벗은 몸으로 인사를 한다. 그 자리에서 친해져서 친구의 엄마는 우리 엄마 등을, 우리 엄마는 친구 엄마의 등을 밀어주며 인사를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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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바빠서 못 가는 날, 또는 목욕비를 아끼고 싶어서 우리들만 보내는 날에는 단단히 이른다. 옆에 어른들에게 꼭 등 밀어 달라하라고, 그냥 오면 절대 안 된다고 다짐 다짐한다. 어른들은 아이들만 온 것을 알면 자진해서 내 아이처럼 밀어주기도 했다. 예전의 동네 목욕탕은 그러했다.
요즈음 나는 주 1회 토요일에 목욕탕에 간다. 물론 아파트인 내 집에도 샤워실이 있으니 매일 샤워를 한다. 그래도 등을 일주일에 한 번쯤은 때밀이로 밀어야 시원하다. 습관이다. 주말이라 해도 여름에서 초가을까지는 목욕탕에 손님이 없다. 그래서 좋다. 그러나 겨울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등밀이 기계는 하나뿐인데 등을 밀 사람들이 많다. 그 줄은 사람 대신 비누, 샴푸, 린스 등이 선다. 그날은, 네가 먼저니, 내가 먼저니 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양보는 없다. 등만 밀면 다행인데 할머니가 많은 우리 동네는 온 전신을 다 민다. 탕으로 들어가는 문에 ‘등밀이 기계로 등만 미세요’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어도 효과가 없다.
그날은 도저히 못 기다리겠다. 그래도 등이 땀으로 뻑적하게 채워진 것 같아 등을 밀고 나오고 싶었다. 옆 아줌마도 계속 등밀이 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누가 새치기하지 않나, 본인의 비눗갑을 뒤로 밀어 놓지 않나 보는 거다.
내가 조용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서로 등 밀까요?" 예전에 두어 번 이야기하다 거절당하고부터는 안 했는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빨리 목욕탕에서 나가고 싶기도 했다. 제의를 받고 잠시 표정 없이 침묵하던 아줌마가 내 쪽으로 돌아 앉는다.
등을 돌려 앉으면서 죄인처럼 자꾸만 "가운데만 밀어주세요."를 반복으로 말했다. 땀 때가 꽤 나온다. 아줌마 차례다. 아줌마는 등에 때가 하나도 안 나온다. "때가 안 나오는데요. 그만 밀게요. 피부 버려요." 아줌마가 말한다. "매일 헬스 오고 탕에 오니까요."
그렇게, 5분이면 해결될 등밀이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어쩌다가 이리되었을까? 서로가 등 밀어주는 풍경이 사라진 지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블로그에 이 글을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등밀이 기계, 그런 것도 있느냐고 댓글을 달았다. 그분들은 등밀이 기계가 있다는 글을 보고 놀라고 나는 그들의 댓글을 보고 놀랐다. 나는 그들의 앎의 충족을 위해 사진을 입수해 올려놓았다. 사진을 보고 ‘신기하게 생겼다, 처음 본다. 재미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내가 좀 많이 살긴 했나 보다.
그날도 주말이었다. 그날은 그다지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조금 큰 소리가 난다. 그런가 했다. 조금 있으니 좀 더 큰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어 봤다. 내 자리에서 조금 비껴 난 바로 앞이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두 아줌마 사이로 큰 소리가 오고 가고 하더니 어느새 일어서서 맞서 있다. 그러더니, 한 아줌마가 한 손으로 상대방 아줌마 가슴팍을 툭툭 치면서 큰 소리를 낸다. 상대방 아줌마도 질세라 같이 가슴팍을 툭툭 밀친다. 밀침이 가벼운 듯하더니 급기야는 큰 소리로 듣기 힘든 쌍욕을 하면서 밀어내듯이 가슴팍을 쳐 댄다. 한 아줌마가 힘에 밀리는 듯, "아이쿠 ~ “ 하며 뒤로 삐끗한다.
"조심해서 싸워요!!! “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목욕탕 바닥이 시멘트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런 몸싸움을 하나? 나이 먹으면 가만히 있어도 목욕탕에서 미끄러지고 사고가 나는데, 자칫하면 뇌진탕이다.
걱정이 되어서 한 말이긴 한데. '싸우지 마세요'가 아니라 '조심해서 싸우세요' 라니.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지만, 내 말의 실수를 뒤늦게 깨닫고는 혼자서 황당해했다. 그 상황에 아무도 내 말에 신경 안 썼겠지만, 어쩌면 내 마음속에 은근히 싸움 구경이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싸움은 계속해도 되는데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던, 말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칸막이 위로, 옆으로 싸움 구경하느라 고개와 몸을 치켜들고 내밀고 있다. 아무도 말릴 생각을 안 한다. 어느 젊은 아줌마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어리기도 했다. 그 미소를 순간 포착하고 내 미소도 살포시 얹었다.
새삼, 목욕탕 안을 둘러봤다. 목욕탕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넓은 목욕탕 가운데 적당한 미온의 작은 탕이 있고 양쪽으로 칸막이 좌대가 있고, 들어오는 입구 옆에 샤워대가 있다. 가운데 작은 탕 둘레에는 아가를 안은 젊은 할머니와 젊은 할머니의 등을 밀어주는 젊은 엄마가 보인다. 그 옆에는 허리가 굽고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느리게 느리게 혼자서 몸을 씻고 계신다.
옆 좌대 쪽에서는 싸움 구경하느라 일어나서 몸을 삐쭉 내밀고, 샤워기를 몸에 뿌리며 구경하고 있는 젊은 여인들도 있다. 문 입구 샤워대에는 뒤태가 날씬한 아가씨 둘이 긴 머리를 출렁이며 샤워를 하고 있다. 참, 예쁘다. 내 옆에는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많이 뚱뚱한 할머니가 열심히 자신의 몸을 밀고 있다. 몇 아이에게 젖을 먹였는지 그 역할을 다하고 이제는 쓸모가 없게 된 젖통이 가슴 중간을 덮을 만큼 내려와 있다.
그날따라 목욕탕 안의 풍경이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보기 좋았다. 그냥 좋았다. 정겹고 푸근했다. 두 아줌마의 싸움 덕분이었다. 옛날 엄마와 언니와 함께 다녔던 목욕탕을 잠시 떠 올렸다. 흔히 표현하는, 사람 사는 동네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