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시장

by 칠십 살 김순남

문화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 영어 프리토킹 반에서 수업을 받았다. 영어 프리토킹을 잘해서가 아니라,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그 시간밖에 참석할 수가 없어서였다. 망설였지만, 부제목에 여행 영어라는 목록도 들어있어서 용기 있게 들어갔다. 내 나이가 제일 많았다. 대부분 나보다 10년~20년 사이로 어린 듯했으나, 이미 내가 나이가 많으니 그들도 나름 중년이라고 말해도 될 만하겠다.


수업이 시작되면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프리토킹으로 돌아가면서 하였다. 그때쯤에 국제시장 영화가 홈런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나도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나는 국제시장 스토리와 감상을 이야기하려고 짧은 실력으로 조금 준비를 했다. 많이 준비할 실력도 안 되지만, 개인에게 돌아가는 프리토킹 시간이 아주 짧기도 해서였다.


내 순서가 되었다, 준비해 간 메모를 쳐다보며 더듬더듬 말하였다. 영화를 봤는데 재미있었으며, 광부와 간호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단호한 억양으로 내 말을 자른다. ‘그것을 팩트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픽션이다.’ 라며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놀래서 ‘아니다. 팩트다.’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말 한마디 꺼내기 힘든 영어 실력이지만, 그 순간 놀래서 이 단어, 저 단어를 끼어 문장을 만들어 뱉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나도 역사를 좀 안다. 일본에서 발행된 책을 읽었다.’ 하는 것이다.


미국인 선생님이지만 그녀의 엄마는 일본인이었고 아버지가 미국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다시 말을 꺼내고 싶은데, 선생님의 확고한 표정과 능숙하게 하시는 영어에 주눅이 들어 내 혀는 꼬여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봤다.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래도 나 보다는 영어를 잘하는 젊은 수강생들이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순간,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꼭지가 돈다고 해야 할까?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무안하고 화가 났다. 물론 영화이기 때문에 재미를 더 하기 위해서 약간의 픽션이 덧붙여 졌다 해도 기본은 팩트였다. 그런데 이렇게 침묵하다니. 수강생들은 대부분 40대 말, 50대 초였다. 그들도 미국인 영어선생처럼 국제시장이 완전한 픽션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의 지난 시간에 그런 일이 없었다고 생각하는지, 불과 30여 년 전, 부모 세대의 시간들을 모른단 말인가? 그들의 침묵에 대한 섭섭함과 내가 젊은 여선생의 말에 반박할 만큼의 영어가 안 된다는 것이 보태어져 눈물이 찔끔 날만큼 화가 났다.


집에 돌아가, 다음 수업 때 가서는 꼭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이야기해 줘야지 하는 생각에 일주일 내내 자료를 검색하고 영어문장으로 번역해서 노트에 적고는 달달 외울 수 있도록 연습을 했다. 그리고 다음 주 마음속의 결사대 한 대원을 이끌고 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순서대로 돌리던 토크를 지명으로 서너 사람만 지목해서 진행을 한다. ‘아. 씨!!+ ’ 나는 그래도 열심히 말할 틈새를 노리려고 애를 썼지만 선생님은 내 맘을 알아차렸는지, 그날따라 나를 처다도 안 보았다. 영어를 잘했으면 중간에 말을 끊고 어떻게든 틈새를 노려 들어가 대화를 이끌어 봤을 텐데, 그런 실력은 언감생시다.


그날, 수업은 머리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1시간 30분 내내 속만 부글부글 끓어댔다. 내 친구 정혜가 독일에 보조간호사로 가서, 직접 그 일을 체험했고, 내 친구 오빠가 독일 광부로 가서 돈을 벌어서 집으로 부쳐 주었고, 갱도가 무너져 한국인 젊은 광부가 묻혀서 구출되고 등의 뉴스를 보았는데, 미국의 젊은 아가씨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듣고 알고 있는지, 입 밖으로는 못 내뱉고 속으로 욕을 욕을 해댔다. 내 가슴에 애국심이 이렇게 한가득 들어있는지 몰랐다.


나는 다음날부터 안 나갔다. 내가 팩트와 픽션을 구별도 못하고 감상에 젖은 할머니로 치부되는 그 상황에서 입 딱 닫고 있던 같은 반 수강생들에게도 화가 났지만, 뒤에 생각하니 그들도 미국 본토 여자의 영어에 맞대응할 만한 영어 실력이 안 되어서였을 것이라는 것을, 냉정을 찾고 난 뒤에야 스스로 오해를 풀었다. 물론 나 혼자 오해하고, 오해를 풀었지만 당연히 내 생각이 맞다고 믿고 싶다.


국제시장 영화 속에는 여자 주인공 영자가 독일 간호사로 가서 병원에서 시체 닦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는 우리나라 간호사가 어렵게 독일로 돈 벌러 가서 가장 험한 일을 한다는 일종의 차별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관객으로 하여금 힘들었던 그 시대의 아픔을 느끼게 하였다.


영화 속의 의도는 그러하지만 간호사는 그런 일도 애긍적인 측면에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꼭 차별적인 대우라고만은 할 수 없겠다. 지금은 대학교에서도 장례학과라는 과목이 있어 다양한 장례 절차와 염습 과정도 공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은 오빠가 돌아가시고 기별을 받고 도착했을 때, 염습을 하는 과정을 유리창을 통해서 볼 수 있었는데, 검은 옷을 차려입으신 장년 한 분과, 젊은 아가씨가 어찌나 정성스럽게 하시는지, 보면서 마음이 참 좋았던 기억이다.



오래전 보았던 일본 영화 <Good & Bye, 원제는 (おくり びと - 보내는 사람)>을 보았다. 도쿄에서 잘 나가는 오케스트라 첼리스트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갑작스러운 악단 해체로 백수 신세가 된다.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일자리를 찾는데 ‘연령 무관! 고익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의 여행 가이드 구인광고를 발견하고 두근두근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1분도 안 되는 초스피드로 진행되었고 다이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이 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사인 줄만 알았던 회사는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납관’ 일을 하는 곳이었다. 얼떨결에 들어 간 회사이지만 그는 그 일을 충실히 애정을 가지고 한다. 사연 많은 인생, 한 평생을 인내로이 살았던 사람들의 마지막을 예의를 다하여 보내준다. 가족과 친지에게 이별의 통곡이나 눈물보다 ‘수고했어요' '미안해요' ‘사랑했어요' '또 만나요' 하는 진심 어린 인사를 나누도록 조언하며 고인을 보내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평생을 본인의 운명에 맞게 인내하며 살았을 한 인생의 마지막 길에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꼭 그때의 상황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여야만 할 것도 아니지만, 그 젊은 미국 선생의 잘못된 생각은 바로 잡아야 한다가 내 생각이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bye-2_miliyam.jpg 영화 포스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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