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가 사진을 저장해야 할 공간이 필요했다. 블로그에 필요한 사진을 업로드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사진을 올리면서, 사진에 대한 기억을 위해서 짧게 설명도 올렸다. 이거 좋네, 생각했다. 독후감을 적기 시작했다. 여행의 기록도 남기기 시작했다. 누구는 질문을, 누구는 공감을 남기고 갔다.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다. 점점 흥미로워졌다. 나는 좀 더 자세하게 올렸다. 내 글을 사람들이 읽고, 더 많은 공감을 남겨주기를 원해서이기도 하고, 내 글로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보람도 가지고 싶어서였다. 그러다가 책을 내게 되었다. 부족한 글이지만 누군가가 재미있게 읽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가질 것이란 마음에 책을 내자고 했지만, 판매수는 딱 기본이었지 싶다. 그럼에도 나는 작가, 그것도 여행 작가라는 타이틀을 하나 가지게 되었다. 내 나이 67세되던 해였다.
65세면 우리나라에서 노년으로 정식 인정을 받는 나이다. 당신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척박한 땅에서 인내하며 열심히 살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일하지 않아도 그에 합당한 연금과, 각종 혜택을 드리니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65세,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좋은 나이가 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특권층으로 부각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무엇을 할 수 없는 나이라고 스스로 생산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국가가 주는 쥐꼬리만 한 보수로 남은 시간을, 소비하려 하기도 한다.
나는 운전을 못한다. 수영도 못한다. 하물며 자전거도 못 탄다. 자전거는 젊었을 때 타 보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다가 그때마다 넘어져 무릎에 깊은 상처를 내고서는 결국 꼬리를 내렸다. 운동신경이 유난히 없었다. 그런데, 작년에 자전거를 배웠다. 이 나이에 자전거가 타 지더라는 것이다. 네발 자전거다. 두 발에 보조 다리 두 개를 더 달아서 네 발 자전거로 탔다. 네발 자전거를 탔다고 해서 처음에 안 넘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 번 넘어졌지만 보조 다리가 받쳐주어서 많은 상처를 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말의 요지는 젊었을 때 못 했던 것이 나이 먹어서는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노년, 무엇을 하느냐?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는 나이보다는 내 마음, 내 의지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생각은 현실을 만드는 힘이다.>라는 책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해외 자유여행을 항상 꿈꾸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나에게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꿈을 이룰 수 있을 만큼 관대하지 않았다. 생각은 항상 내 맘속에 있었고, 지금 현실이 되었다. 나는 20개국이 넘는 나라, 많은 도시를 자유로이 여행했다. 그리고 여행 작가라는 타이틀을 덤으로 받았다. 항상 생각을 맘 속에 품고 있었던 결과다.
노년, 그 나이가 언제라도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지 말자. 그날이 오지 않았다면 어느 시간이든, 무엇이든 삶은 끝난 게 아니다. 아직은 더 섧고, 더 외롭고, 더 고독하고, 더 인내하고, 더 아픈 시간들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런 것들을 부여안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끝없이 해 나가야 한다.
‘홀다 크룩스’라는 할머니는 91세에 후지산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놀라운 사실이긴 하나, 가능한 일이다. 김형석 교수님은 100세에도 책을 내시고, 강연을 다니시고,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다. 이런 분의 이야기를 할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한다. 맞는 표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일반적인 사람과 육체는 같다. 단 사고가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신 분이시다. 우리도 생각을, 편협적인, 길들여진, 사고에서 새로운 사고로 전환한다면 특별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같은 일에 오래 길들여져 같은 일만 반복한다면 생활이 참으로 밋밋하고 재미없지 않겠나. 새로운 일로, 자꾸만 다운되는 내 육신과 감성을 일으켜 보자. 이 나이에, 다 늙어서 무엇을, 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가 쉽다. 젊었을 때는 부양해야 할 가족, 타인의 시선, 등으로 현실의 시간이 자유롭지 못했다면, 노년은 국가에서도 공식적으로 당신은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누구도 질타하지 않는 나이에 다달았습니다라는 인가를 받았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오히려 홀가분하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
흔히, 노인이 되면 먼 길 여행도, 집 떠나는 것도, 무언가 새로운 일을 저지르는 것도 남은 내 노년의 육신을 위해서 삼가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오히려 가야 할 길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남아 있는 육신을 맘껏 쓰고 가야지 생각한다면,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곧잘 나보고 체력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 나이에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모르는 곳에서 하루 종일 걸어야 하고, 보통 체력으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영양제를 많이 챙겨 먹는다. 비타민은 기본이고, 홍삼, 주기적으로 힘이 없다며 봄에는 보약, 어디에 뭐가 좋다 하면서 철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먹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종종 요즘 힘이 너무 없어,라고 한다.
그것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좀 쉬어야 해, 나를 좀 배려해 줘. 라는 상대에게 전하는 무언의 암시이며 유치하게 비유하자면 어리광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다. 타고날 때부터 좋은 체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유난히 약한 체질로 태어난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약한 체질로 태어난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공식은 없다.
노화는 막을 수 없다. 아무리 장수 시대라 해도 신체적인 노화는 장수와는 별개로 때가 되면 서서히 진행되고 어느 시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피로감을 가지고, 노쇠된 몸을 가지고 나머지 생을 살 수밖에 없다. 피로는 우리가 살면서 매시간 극복해야 하는 무형의 적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장수가 결코 축복은 아니다.
프랑스 니스, 시미에 지구에서 내려와 니스 성을 찾아서 걷고 있는데, 자그마한 동양인 할머니가 앞뒤로 배낭을 메고서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호기심이 생긴다. 중국인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붙였다. 인사를 알아들었는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더니 “와타시, 니혼진.” 하신다. 70대는 되어 보이는데 행색이 초라하다. 뒤에는 제법 큰 배낭이 달려있고, 앞으로 맨 작은 배낭은 손으로 그 무게를 받쳐 들고 있다.
“료코 데스까?”(여행입니까) 했더니 그렇단다. 어저께 바르셀로나에서 왔단다. 지금 두 달째 혼자 여행 중이란다. 그럼 다음 코스는 어디냐고 물으니 모르겠단다. 생각해 봐야겠단다. “히도리 데스까(혼자입니까)? 그렇단다. 실례인 줄 알았지만 궁금해서 나이를 물었다. 75세시란다.
그때 나는 63세였고 친구와 둘이었다. 일본 할머니는 75세였고 혼자였다. 그 나이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혼자 프랑스 니스로 와서 내일은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지 모르시겠단다. 내일의 일정은 해가 뜨고 나서야 생각을 해 보겠다는 말씀이었다. 그 여유와 자유로움과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문득 사람들의 사고(思考)의 차이를 생각했다. 혹자는, '아니, 저 나이에 집에 있지 뭘 저렇게 돌아다녀. 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행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나는 정반대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으니까, 어떻다고 딱히 말할 수는 없겠다.
‘소노 아야코’는 노년의 여행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젊었을 때야말로 여행지에서 불의의 죽음을 당하는 일을 두려워한다. 남편이 있고 부모가 있으며 자식이 있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명이 다 된 마당에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물론 우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고 그 이전의 상황인 것이다. 여행지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면 고통이 심해지지 않을까 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디서 죽든 마찬가지다. 고향에서 죽는다고 해서 무엇인가 좋은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구는 둥글게 이어져 있다. 힌두교의 장례식은 화장으로 하며 그 재를 바다에 흘려보내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죽은 자는 자신이 태어난 대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외국에서 죽으면 돈이 든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에는 그것도 준비해두면 간단하다. 자필의 화장 승낙서를 휴대하고 다니면 된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나라에서건 화장하여 유골로 만들어준다. 유골이라면 운송비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 항공 회사가 싼 가격으로 작은 상자에 넣어 일본으로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소노 아야코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에서 읽은 글이다. 이 글을 읽고 눈이 번쩍 떠졌다. 자필의 화장 승낙서, 꼭 필요하다.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어디에서도 자필 화장 승낙서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찾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70세다. 나는 여전히 여행을 꿈꾸고 있고, 올 겨울에도 여행을 떠날 것이다. 당신의 70대는 어떨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집에만 있을 것인가? 세상이 이렇게나 넓고 볼거리가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