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도 조금은 괜찮을 나이.

by 칠십 살 김순남

2년마다 하는 국가 건강검진. 이번에는 건너뛸까 싶어서 안 하고 있는데 자꾸 연락이 온다. 국가건강검진센터에서도 오고, 국가암검진센터에서도 온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한 번쯤 정보를 등록한 병원에서도 검진을 받으라고 친절하게 연락해 온다. 당연히 검진은 무료다. 나는 지금 이렇게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


내 나이 칠십. 이 나이쯤 되면 조금 아파도 되는 나이가 아닌가 싶어서이다. 아파 힘들어하고 계신 분에게는 무엄하고 괘씸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허긴, 지금 어디가 딱히 심하게 아픈 곳은 없다. 쉬이 피로하고, 아침에 자고 일어날 때 조금 힘들고 어떤 때는 조금 어지럽다가 되돌아오기도 하고, 버스를 타면 어쩌다 멀미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고개를 아래로 해서 장시간 책을 보다가 고개를 들면 순간 아찔하기도 하고, 허리 협착증과 약간의 디스크 증세가 있어서 장시간 서 있거나 걷다 보면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다리가 잠시 저리기도 하는 그 정도다. 정말 고통이 심하면 당장에 뛰어갈 텐데 말이다. 노년이 되어서 병이란 갑자기 올 수도 있고, 쉬엄쉬엄, 아픈듯 마는듯 피로 속으로 스며 들어와 어느 날, 나 여기 있다 하며 흉측한 얼굴을 드러낼 수도 있다.

여권 만료기간이 6개월 정도가 남았다. 유럽여행은 6개월 정도의 여유일이 있어야 한다. 담당 직원이, 요즘에 새로 나오는 여권은 얇은 것, 두꺼운 것 두 종류인데 어느 것을 하겠느냐고 묻는다. 서슴지 않고 "얇은 것 주세요." 했다. 나이가 들면 무조건 무거운 것은 싫다. 직원이 헌 여권을 보고서는 "여행을 많이 다니셔서 두꺼운 것 하셔야겠는데요." 한다. "아. 그럼 두꺼운 것 주세요. “


헌 여권과 새 여권, 사진을 자꾸 보게 된다. 10년 전 사진과 10년 후 사진, 그 속에 세월이 녹아들어 있다. 얼굴 표정도 좀 굳어있고, 턱도 쳐져있고, 눈도 조금 짝 재기 같고, 입가의 팔자 주름도 깊다. 사진사 아저씨가 예쁘게 손 봐 드릴게요. 하며 해 주신 덕분에 그나마 아주 조금은 젊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10년의 시간이 그렇게 자비롭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여권을 발급받은 초기에는 여권을 보면서 ‘2019년, 아직 10년이네, 2019년까지는 여행을 다녀 봐야지.‘했다. 이때가 되면 내 해외여행은 마무리가 되고 집에서만 노후를 보내는 시간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올겨울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아마도 내년 여름에도, 겨울에도.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말이다. 그 생각에 이어, 내 나이 칠십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나이도 생각한다. 개인에게는 행복이고, 국가에는 보탬이 되고, 자녀에게는 자랑스러운 인생인가를.

노년, 우리나라는 현재 65세부터 노년의 혜택을 받는다. 100세 시대에 너무 이른 나이라 말한다. 노년의 혜택을 받는 나도, 나의 친구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 혜택을 즐거워한다.


세상은 음과 양이 존재한다. 남과 여, 부와 빈, 노인과 청년 등.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해의 움직임에 양지와 음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진리이다. 모든 곳이, 모든 상황이 양지일 수만은 없다. 또 모두 양지여만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여름에는 음지가 좋고, 겨울에는 양지가 좋다. 어떤 식물은 양지에서만, 어떤 식물은 음지에서만 자라기도 한다.


100세 장수시대. 이 상황은 양지의 상황인가? 음지의 상황인가? 노인에게는 양지, 젊은이에게는 음지인가. 글쎄, 진실코 잘 모르겠다. 인생 70쯤 되면, 그냥 조금은 아파도 좋은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불편한 육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너무 과하게 반응하지 말자로.


우리는 언젠가 자식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아마도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당겨질 것이다. 그럴 때 느끼는 것은 허전함을 넘어서 공포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포감은 어쩌면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더 크게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들어간 직장, 그곳에서 어느 순간 자신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좀 더 빠른 퇴사를 권하는 직장, 부실한 운영으로 몇 명의 아르바이트생 중에서 한 사람을 내 보내야 할 경우 그게 너였으면 좋겠어, 라는 압박감을 주는 주인, 그런 순간에 맞는 느낌은 씁쓸함이 아니라 공포감에 가깝다.


그러나 바꾸어 말해서,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 이전에, 내가 먼저 나는 더 이상 너희를 돌보지 않을 거야.라고 반박을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부실한 회사에, 또는 부실한 가게에 일할 생각이 전혀 없어. 하며 그곳을 나온다면 나는 당당하다. 내가 내쳐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치는 것이니까.

노년, 젊은이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눈치를 주기 전에, 먼저 내가, 나 홀로 당당히 설 수 있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