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잔재, 시간에 휩쓸리어

by 칠십 살 김순남

나이 든 사람들은 옛 일본 문화에 물들어져 있어서 아직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로, 구시대적인 발언을 한다거나 행위를 하면,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어서 등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특히 지식인이라는 분들이 이런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평범한, 그냥 매일을 살아내는 시민들 중에는 이런 말, 이런 의식을 대부분 안 하고 산다.


우리 어릴 때의 새로운 문화는 대부분 일본과 미국에서 들어왔다. 어쩌겠는가, 순남이 엄마의 시대가 일제강점기를 거친 세대이며, 내 어릴 때는 미 군정의 히야리아 부대가 도시 복판에 진을 치고 있었던 시대이다. 그들이 뿌려 놓은, 뿌린 문화에 자연스레 잠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어쩌겠는가, 일본인들이 밉다고 36년이란 시간을 종양을 잘라 내어 불태워 버리듯이, 지구 상의 시간에서 영구히 치워 버릴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 시간을 거쳐 지금의 시간으로 왔다. 그 시간의 파도를 타고 지금 이 시간까지 왔다. 버릴 것은 자연스레 버려지고 남을 것은 자연스럽게 남아졌다. 애써 버리려고 노력하여 버려진 것도 있고, 버리고 싶었지만 버리지 못하고 지금껏 가져온 것도 있다. 그리그리 사는 거다. 그렇게 좀 더 많은 시간이, 70살 순남이가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더 흐르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더 흘러서는 그 잔재라는 것이 영원히 없어질지, 반대로 영구히 우리 문화로 굳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또 그것이 일본의 잔재였었는지, 처음부터 우리의 문화였는지조차 모르고 살 수도 있다.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을 쓸어버리기도, 엎어 버리기도 덮쳐 쓰기도 하며 간다.


어디 꼭 일제 식민지 기간뿐이겠는가? 6.25 전쟁기에는 유엔의 이름으로 공산군을 격퇴하기 위해 미군이 들어와, 정전 협정 후 계속 우리나라에 주둔하였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양공주라는 직업의 여성들을 양산하였고, 그녀들의 배를 빌어 슬픈 후손들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갔다. 그런 시간 동안 그들의 문화가, 언어가 조금조금씩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속으로 배여 왔다.


교토 여행 시, 이총(귀무덤)에 다녀온 후에야 내가 손주에게 자주 사용했던 말이, 순수 우리의 옛말이 아니라 일본 침략으로 인해 생긴 잔혹한 말에서 유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집에서는 왕 할머니로 통했던 나의 시어머님도 증손주가 집에 오면,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것이 너무 예뻐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옆을 지켰다. 그럴 때 증손주에게 하는 말의 태반은 ‘이비’였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아무것이나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거나, 이유 없이 울어댄다거나, 감당 못할 만큼 억지를 부려댄다거나 할 때마다, "이비! 이비! 울면 안 돼!" 또는 "에비, 에비 만지면 안 돼. 먹으면 안 돼. 퇴 퇴 해." 하셨다. 이 말은, 나 어릴 때 내 엄마, 아버지도 하셨다. 나의 며느리도 어른들에게 들은 풍월로 본인도 모르게 갓난아이에게 "에비"했다.


나는 ‘이비, 또는 에비’란 단어가 순수 우리 옛 말인 줄 알았다. 그 '에비'란 말이 일본어 이비(耳鼻), 코와 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 것을 근래에 와서야 알았다.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진저리 칠 만큼 공포적이었으면 그 두 단어가 이런 의미로 우리에게 전해져 왔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에비란 단어가 아래와 같이 정의되어있다. 사전만 보면 ‘에비‘라는 단어가 순수 옛 우리말 같다.


에비

[명사] 아이들에게 무서운 가상적인 존재나 물건.

[감탄사] 아이들에게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무서운 것이라는 뜻으로 내는 소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전쟁으로 인한, 그때의 참혹했던 현장의 증거물이 교토 토요쿠니 신사 맞은편에 이총(귀무덤)으로 남아있다. 이총의 시작은 1957년 두 번째 조선 침공 정유재란 때이다. 5년간 이어져 오는 지루한 전쟁 속에서, 막바지 힘을 부어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조바심의 조처였을 것이다. 왜군들이 조선군과 적극적으로 싸우도록 하기 위해 증표로 조선인의 코를 베어 오는 자에게 포상을 내 건다. 포상에 눈이 먼 병사들은 다투어 전공을 부풀리기 위해 전사자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민간인들의 코까지 잘라갔다. 그 코들은 소금에 절여 통에 넣어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전해졌다. 어느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 전사자들 뿐 아니라, 자군인 일본인 군사들의 시신에서도 베어갔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을 이총(귀무덤)이라 부르지만, 실제는 잘라 온 코를 묻은 코 무덤인 것이다. 그것이 후에 너무 흉스럽고 야만적인 이미지라 생각하여 조금 점잖은 말로 이총(귀무덤)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도 역사는 진실되어야 하니까, 안내 표지판에는 귀무덤(코무덤)을 함께 표기해 놓았다.




노인복지관에서 수업을 한다. 65세 이상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65세부터 90대에 이르신 분들이 함께 수업을 한다. 어려서 일본에서 생활하다 오신 분도 더러 계시고, 초등학교, 중등학교까지 일본에서 교육을 받으신 분들도 계신다. 일본어를 조금이나마 기억하거나, 일본어가 능숙하신 분도 계신다. 수업 때 유튜브로 ‘엔카(일본 가요)를 검색해서 같이 듣기도 한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신다. 무슨 노래를 찾아달라고 청하시기도 한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입을 모아 합창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시간이었다. 이제 갓 노년의 신분을 허락받은 젊은 노인분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아니, 그렇게 당해놓고 이 노래가 뭐가 좋다고 부릅니까?“ 옆 짝지로 앉아계시는 할머니는 일본에서 초등하교 5학년까지 공부하시다 오신 분이시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가만히 침묵하셨다. 젊은 노인분이 다시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차며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듯, 불편한 얼굴을 드러내셨다. 그때 할머니가 한 말씀하셨다. “지금 몇 살이요? 내 오빠는 학병에 끌려가서 못 돌아왔어요.”


이 상황을 얼핏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을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젊은 노인의 반 일본 감정과 일본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오빠가 학병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을 경험한 할머니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젊은이는 노인들의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모든 사람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해서는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이해하는 척,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학병 : 세계 제2차 대전중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한국의 젊은 학생


aaa.jpg


작가의 이전글# 세계의 명소는 TV 속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