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미팅, 나는 가짜 여대생이었다

by 칠십 살 김순남

주인집은 정원이 넓었다. 엄마와 나는 넓은 정원 한편에 따로 만들어진 슬레이트 지붕의 방 두 칸짜리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주인집 사람들하고는 외출할 때 어쩌다 마주칠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없는 시간에는 40대의 뚱뚱한 주인아줌마는 혼자 있는 늙은 우리 엄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셨던 좋으신 분이셨다. 때때로 반찬과 과일도 나누어 주셨다. 주인아줌마는 딸이 이화여대생인데 어려운 의과 공부를 하고 있다며 자랑을 많이 하신다고 했다. 따님은 보건간호학과 2학년생이었다.


일요일이었다. 따님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어쩌다 대문 앞에서 마주치면 고개만 까닥하며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다. 대학교 2학년, 내가 대학에 들어갔다면 나보다 1년 위였다. 나이로는 2살이 더 많았다. 나는 편하게 언니라고 불렀다. 나를 문밖으로 불러낸 언니는 오늘 시간 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미팅하러 가겠느냐고 했다. 순간, 뜨악했다. 내 레벨이 언니와는 다르다. 나는 그 당시 종합병원에 보조간호사로 일을 나가고 있을 때였다. 대학생 언니가, 그것도 이화여대생이 하는 미팅이라니. 내가 놀란 표정을 하자, 여섯 명이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 하나가 갑자기 못 나오게 되었다고, 조금 전에 연락이 왔단다.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해도 너무 급박해서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며, 내 생각이 났단다. 모두 같은 학과 학생인데, 내가 병원에 근무하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란다. 너무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사실, 난 그때까지 미팅이란 것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생이 아니었던 나는 그런 기회가 오지도 않았다. 그 순간, 너무 좋았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그 당시는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흥분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준비를 하고 언니를 따라나섰다. 대문 앞에서 언니는 나에게 배지를 달아주었다. 그때서야 아! 이거!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화여대 배지를 달고서야, 갑자기 두려움이 솟구쳤다. "나 이렇게 해도 돼?" 물었다. 언니가 "잠깐인데 뭐. 오래 있지 말고, 인사만 하고 적당한 시간에 빠져나와. 넌 1학년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따라가면서 마음이 어수선 해 졌다. "그럴 거면 왜?" "처음에는 짝이 맞아야지. 짝 맞춰서 보기로 했는데 저쪽에서는 다 나오는데 처음부터 김 빠지잖아. 짝지을 때부터 난감하고. 날 보고 일을 왜 그렇게 했냐고 할 거야. 짝짓고 적당할 때 핑계 대서 나와. 미안해. 이런 거 부탁해서..." 나는 그때서야 정확하게 내 역할을 알았다. 길은 이미 나섰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 당시 대학을 못 가는 젊은이들에게는 대학생, 그것도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는 꿈의 대상이었다. 대학을 갈 때 학업성적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훨씬 더 필요한 때였다. 대학생이라면 속이야 어떻든 머리도, 집안도 차별화되는 존재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가면 미팅하고, 공장 가면 미싱 한다.>는 슬픈 우스개 말이 있을 정도로, 젊은이들에게는 대학과 공장, 딱 이분법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언니, 누나들이 가발공장에, 봉제공장에 들어가 야간 잔업까지 하며 돈을 벌어 내 동생만은, 대학 배지를 달게 해 주겠다는 어리석고 아픈 사랑이 만연했던 시대였다. 그 당시 가슴에 달고 있는 대학 배지는 대학생이라는 단어 자체보다 더 깊은 의미의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종로의 제과점이었다. 조용한 장소를 선택하느라 이름 없는 골목의 작은 제과점으로 정했다며 가는 길에 언니가 말했다. 언니를 따라가면서부터 내 가슴은 두근거림을 넘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구분할 수 없는 묘한 마음으로 언니 뒤만 따라 들어갔다. 우리가 맨 나중에 도착한 거였다. 끝에 비어있는 두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맨 끝에 앉았다.


각자가 원하는 음료를 시켰다. 나는 밀크를 시켰다. 통성명이 시작되었다. 고대생들이었다. 그쪽도 모두 2학년이라 했다. 그중에는 군에 다녀온 사람도 있었다. 언니의 소개가 있고, 나도 언니를 따라 보건간호학과 1학년이라 했다. 순간 "오~ 영계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왁자하니 웃었다. 지금 생각해도 코미디다. 1년 아래라고 영계라는 말이 나오다니. 뒤에 알게 된 것인데 우리 여학생들 쪽에는 1년, 2년 늦게 입학한 학생들도 있어서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있는 여학생들도 있긴 했다.


남학생 대표가 작게 접은 쪽지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끝에 있는 사람부터 집으라고 한다. 내가 첫 순위다. 한 장을 집었다. 여섯 여학생이 다 집고 난 후, 저 쪽 끝에 있는 고대생이 1번! 하고 외친다. 나는 그러는 동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가짜 여대생이다. 간호학과 1학년이라 말한 후부터는 내 거짓말에 내가 더 떨렸다. 1번! 또 외친다. 그때서야 내 손안에 있는 쪽지를 보았다. 엉겁결에 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커다란 환호가 터졌다. 모두 날 보는 듯했다. 옆에 앉은 언니는 몸을 흔드는 것 같더니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렇게 2번, 3번, 4번, 손을 들어 짝지가 정해졌다. 남학생들이 자리를 옮겼다. 내 앞에 잘 생긴 고대생이 앉았다. 언니가 날 꼬집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커플에 한 접시의 케이크가 나왔다. 모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암말 안 했다. 할 이야기도 없었지만 하고 싶어도 내가 대학생이 아니란 것이 탄로 날까 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두려웠다. 그 자리가 점점 바늘방석이 되어갔다. 다행스럽게 내 짝지는 말이 많지 않았다. 나를 보고 싱글싱글 웃기만 했다. 말 없는 나를 보고 "선배들에게 주눅이 많이 들었구나." 했다.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아, 이제 빠질 시간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내가 먼저 백을 챙기고 일어서며 주춤주춤 인사를 하려고 틈새를 보는데, 짝지가 바로 눈치를 채고 "배신 때리면 내가 곤란하지, 나 혼자 어떡하라고." 하며 내 팔을 꽉 붙잡는다. 절대 놓아줄 것 같지 않은 손의 힘이 느껴졌다. 그렇게 빠질 틈을 놓치고 무리 지어 종로 저녁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명동으로 들어섰다.


그곳을 아방궁이라고 불렀다. 처음 가 본 곳이었다. 그들은 꽤 익숙한 듯했다. 지하였다. 벽이며 천장에 쇠붙이 골조들이 그대로 붙어있는 폐허 건물 같은 곳이었다. 그 당시는 그것도 멋이라며 젊은이들에게는 인기 있는 곳이었다. 막걸리를 시켰다. 양푼이 잔이었다. 그들은 얼마 전에 끝난 연고전 농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아니 너무 좋았다. 나는 이화여대생이었다. 함께 있는 남학생들은 모두 고대생이었다. 혹시 배지가 떨어지지 않고 잘 붙어있나 가끔씩 손으로 확인을 해 보았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일어나야 하는데, 탄로 나지 않게 빠져나가야 하는데, 하는 마음도 함께였다. 내 짝지는 점잖았다. 웃기만 하는 나를 자꾸 보고 자기도 웃었다. 순간, 혹시 내가 가짜라는 것을 눈치챘나? 덜컥 겁도 났다. 많이들 마셨다. 양푼이 주전자가 몇 번이나 들락날락 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정말 일어나야 했다. 언니에게 "나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아. 집이 멀잖아." 그때 우리 집은 영등포였다. 가는데 1시간은 잡아야 했다. 언니도 같이 갔으면 싶어서 한 말이지만 언니는 전혀 일어설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그 말을 하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선 듯 "그래, 먼저 가.!" 했다. 아마 언니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이화여대 배지가 마음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언니만 빼고 모두 말렸지만 나는 일어났다. 내 짝지도 일어났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따라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암말 안 하고 따라 나왔다. 버스 정거장까지 따라오면서 "우리 또 만나야지!" 반말로 했다.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했다. 버스 정거장에 도착했다.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을 때 앞을 막았다. "약속해야지." 했다. 나는 그냥 웃으며 버스를 탔다. 그가 따라 올라탔다. 깜짝 놀라서 도로 내렸다. 그도 내렸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나, 인기 많은 사람인데." 그럴 것 같았다. 그는 정말 잘 생겼다. 키도 컸다. 말도 많지 않았다. 그가 1번! 외쳤을 때, 내가 손을 번쩍 든 순간, 나에게 꽂혔던 이대생들의 시선에서 이미 알아챘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일요일 12시 그 제과점에서. 그 방법 말고는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탔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그가 밖에서 날 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참 잘생겼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는 차창 밖에서 손가락으로 약속 걸이를 해 보이며 무언의 다짐을 했다. 행복했다. 설레었다. 두려웠다. 그런 와중에도 오른쪽 가슴에 달아놓은 배지가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몇 번이나 만지고 확인했다. 그들에게 들킬까 봐, 혹시 말에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막걸리가 몇 잔 들어가 취기가 있음에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수를 줄였다.


차가 출발하고 달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마음이 확 풀어졌다. 아, 살 것 같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그러면서도 즐거웠던 그 시간이, 생경스런 분위기가, 이화여대생이었던 내가 갑자기 그립고, 그리워 눈물이 났다. 배지를 빼서 백 속에 잘 넣었다.


다음 날, 병원 근무가 오후 조였다. 아침이 늦었다. 언니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언니는 작은 소리로 "배지" 하며 손을 내밀었다. 배지를 내어주며 어제 짝지와의 약속을 이야기하려 했다. 어차피 나갈 생각이 아니었다. 그 자리를 벗어나야 했기에 약속을 했던 거였다. 언니는 내가 할 말을 이미 안다는 듯, "내가 말했어." 한다.


순간 가슴이 쿵. 정말 가슴이란 덩어리가 물리적으로 따로 있었던 듯, 큰 덩어리가 목에서부터 배꼽 아래까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언니가 내 표정을 읽었나 보다. "너 데려다주고 와서는 자꾸 묻더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자수했지." "응. 잘했어. 마음이 불편했는데." 언니는 문을 닫으면서 위로의 말을 덧붙였다. "참가비가 여학생은 100원인데, 내가 냈어. 너보고 피부가 예쁘다고 모두 입을 댔단다."


엄마가 들을까봐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 죽여 섧게 울었다. 내가 언니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어서, 내가 이대생이 아니어서, 그가 너무 잘생긴 고대생이어서. 그가 너무 어처구니없어할 생각에.. 나 없는 자리에서 그들이 나를 두고 이러쿵 저렇쿵 했을 거라는 생각에..


수십 년이 지났는데, 그때 딱 한 번 본 그 고대생의 얼굴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싱싱하고 잘 생긴 그때의 얼굴로. 기억이란 저장소는 참 불가사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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