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나 카레니나의 로망,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안나와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에서 처음 만난다. 책에서는 ‘한 귀부인과 스치게 되었는데, 순간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알렉세이 키릴로보비치는 다시 한번 그녀가 보고 싶었다’ 고 묘사되어있다. 안나는 그녀가 살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오빠가 살고 있는 모스크바로 잠시 다니러 왔던 길이었다.
안나가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무도회에서 그들은 마주치게 되었고, 춤을 추며 둘은 한눈에 반한 것을 확인한다. 안나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내려오는 열차 안에서 브론스키와의 짜릿한 시간을 추억하고 있을 때, 군복을 입은 사내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가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났다. 브론스키는 안나를 따라왔던 것이다. 둘의 끌림은 그만큼 강렬했다.
책과 영화에는 이미 둘의 운명을 암시해 놓았다. 기차역과 열차를 배경으로 한 그들의 운명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그들의 결말을 암시했고, 둘의 첫 만남의 운명의 시간에 현장에서 사람이 기차에 치어 죽는 사고가 그것이다. 이 또한 안나의 마지막 시간, 달리는 열차 안에서 뛰어내리는 안나의 운명을 독자들에게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013년도에 개봉된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잘 생긴 청년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 백작과 매혹적인 유부녀 안나 카레니나의 만남은 설경 속의 기차역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간을 운행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였다. 그 장면이 얼마나 강렬하고, 로망을 자극했는지 그 순간, 꼭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여행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후 2016년, 2017년 두 차례 이어서 러시아를 다녀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꿈은 그 보다 훨씬 전, 60 ~70년대 러시아 문학이 우리의 청춘을 물들일 때, 그때 이미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닥터 지바고 등 러시아 고전에 도취되어 있었고, 그 도취에는 러시아의 설경 속을 달리는 끝이 안 보이는 긴 열차가 품어대는 연기와 기적소리가 함께 있었다.
넓은 러시아 땅에서 도시 간의 이동은 비행기도 있겠지만, 오래된 나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여야 했다. 첫 시작은 열차 티켓을 예매하는 것이다. ‘러시아 철도청’으로 들어갔다.’ 우선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내 눈에는 그림처럼만 보이는 러시아 문자에서 조금은 알기 쉬운 영문으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완벽히 변환되지 않은 러시아 문자가 곳곳에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편안치 않았다. 회원가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루트를 검색하고 예매에 들어갔다. 일반 항공권 예매와는 다르게 까다롭다. 사전과 번역기를 번갈아 돌려대며 겨우겨우 공란을 다 채우고 마지막 결제의 순간에 머뭇거린다. 혹시 실수한 것은 없는지, 다시 리셋, 또다시 공란을 채우고 세심하게 검토를 한다. 이렇게 세 번의 되풀이 끝에서야 결제를 끝냈다. 결제가 완료되면, 정식으로 다시 로그인해서 들어가 My ORDERS에 예약한 것이 잘 들어있는지 확인하고서야 안심한다.
나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이르쿠츠크에서부터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 까지였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초원로를 따라 연변에 세워진 도시들 가운데에서 근 400년의 역사를 가진 가장 오래된 도시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데카브리스트 혁명에 참여한 100여 명의 장교들과 폴란드 반역 군 및 몰락 귀족들의 유배지로 선정되면서 유형지로 변하게 되었다. 우리가 많이 읽었던 톨스토이의 '부활'이 탄생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르쿠츠크 역, 대합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는 좁은 보안 통로가 있고 보안 대원 두 사람이 지키고 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 공화국으로 거듭난 지가 언젠데, 내 눈에는 아직 예전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듯 보인다. 사람들의 표정이 부드럽지 않고 대부분 딱딱하다. 따로 짐 검사를 하지는 않지만 군복을 입고 장총을 맨 보안 대원도 보인다. 사람을 꿰뚫어 볼 것만 같은 매서운 눈매는 꽤 위압적이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려 하니까 날카롭고 단호한 제스처로 제압을 한다. 그러나 외관상 그랬지, 그들은 따뜻했다. 매표소 창구에 붙어있는 인포가 문이 닫혀있어서 할 수 없이 보안대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어디서 타는지 물었다. 전광판을 가리키며 기다리란다. 기다리면서 우리가 자리를 여러 번 옮겨 앉았음에도 우리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서는 시간이 다 되어가니 저 통로로 내려가라고 눈짓, 손짓으로 알려준다.
열차를 타는 그 시간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이르쿠츠크 역 플랫폼은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조금은 스산한 느낌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라는 단어상에 부합되는 듯하여 여행객의 기분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각 열차 칸 앞에,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대기하고 있다. E- ticket, 여권, 출입국 신고서를 꼼꼼히 체크하고 나서야 탑승 승인이 떨어진다. 여성 승무원의 표정에서도 부드러움은 없다. 할 일을 한다뿐이지 별다른 친절은 없다. 캐리어를 들고 끙끙거리며 열차에 올라타 맞닥뜨린 현실, 좁다. 순간, 이곳에서 사흘 밤낮을 어떻게 지내지 하는 걱정스러움이 앞섰다. 우리 객실을 찾아서 문을 여니 사람이 있다. 그곳에는 먼저 오신 손님이 계셨다. ‘마야와 세르게이’ 그들은 이층 집 사람이었다. 아래층이 비어있어서 잠시 이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6인실, 4인실, 2인실이 있다. 그중에서 우리는 4인실, 아래층을 예약했다. 얼굴색이 누런, 동양인 할매 두 사람이 들어섰으니 그들도 조금은 놀랐을 테다. 처음에는 우리를 중국인으로 알았던 것 같다. 러시아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중국인으로 알았다가 한국인이란 것을 알게 되면 놀라움과 함께 반가움을 얼굴에 나타낸다. 10여 년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국적에 따라 반가움의 척도가 다르게 느껴지기는 러시아가 처음인 듯하다. 그것은 삼성, LG 등 대기업의 파워가 아니라 아이돌의 파워 덕분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짐은, 각자 20인치 캐리어가 전부인데, 이 좁은 공간에 캐리어 하나도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세르게이가 침대 뚜껑을 들어 올려 보인다. 아하, 그 안에 작은 캐리어 두 개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차가 출발할 즈음에 승무원이 새 시트와 타월, 담요 한 장, 그리고 컵 하나를 준다. 우리가 3박 4일 동안 머물면서 그들에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이게 전부다. 아래 양 쪽의 침대 사이에 작은 테이블이 있다. 이층에는 없다. 이것이 있고 없고 가 편안함의 차이다. 4인실을 예약할 때는 반드시 아래층을 추천한다. 작은 테이블에 필요한 먹거리를 정리해 놓고, 좁은 침대 위에서 이제부터 3일 반나절을 달려야 할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이 좁은 공간에서 ‘안나와 알렉세이 키릴로비치’의 낭만적인 만남을 떠 올린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배경은 영화 속에서,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듯,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적나라한 현실에 부딪쳐 깨닫는다.
열차는 달리기 시작한다. 자작나무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시베리아 설원과 자작나무는, 이번 여행에 또 하나의 환상을 보태 준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환상은 환상일 뿐이다. 내 눈에는 가늘게 말라 비쭉하기만 하다. 혹시나 좀 더 달리면 쭉쭉 뻗은, 하늘을 감추어 버릴 만한 자작나무가 보이겠지 기대했지만, 내 꿈에 도취된 그런 풍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열차가 달리는 내내 자작나무가 나타났지만 그 풍성함은 내 욕심에는 차지 못했다. 지금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어서, 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그러나 넓은 초원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삶의 흔적들은 어떤 생태계에서도 소멸되지 않는 인간의 강한 속성을 느끼게 해, 먼지로 흐려진 차창 밖 풍경을 보는 재미가 그 기대를 대신 충족시킨다.
잠시, 기착지에서 쉬어갈 때면 모든 승객은 내려서 햇볕을 쪼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우르르 매점으로 달려가 필요한 것을 구입한다. 작은 캐리어를 끌고 무엇을 팔러 나온 아줌마에게 과일 몇 가지가 든 봉지 하나를 사서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열차는 잠시 멈추고 이내 출발한다. 과일을 먹으려 봉지를 열어보니 너무 비양심적이다 싶을 정도로 과일이 얄궂다. 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진 것을 주워 담은 듯한 모양새다. 여기서 단골이란 있을 수 없으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상술은 굳이 러시아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상인에 따라 있을 법한 일이니, 굳이 러시아라 그렇다며 싸잡아 국민성을 오해하지는 말자.
에어컨이 때때로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더위도 피할 겸, 매번 먹는 커피와 빵, 컵라면에서 해방되기 위해 식당 칸으로 갔다. 의외로 한적하다. 러시아는 아직은 배고픈 나라인가 보다. 식당칸에서의 널널한 식사는 조금은 사치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괜스레 여유를 부리고 싶은 마음에 매일 한 번씩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분은 뚱뚱한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였다.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셨다. 우리도 못한다. 다행히 메뉴에 사진이 있다. 손가락으로 짚으며 주문을 했다. 방금 요리하여 내어 오는 음식은 모두 맛있었다. 아줌마가 계산서를 놓고 간다. 계산서를 보는 순간, 우리는 마주 보며 어?? 했다. 아줌마가 다른 테이블에 가져갈 것을 잘못 가져오셨나 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식사를 한 테이블은 없다. 순간, 우리는 아줌마가 실수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어제였다. 어제도 우리가 주문한 메뉴와 다르게 나왔다. 영어를 못 하는 아줌마라는 것을 알고서는 제스처로 음식을 보며 잘못 나왔다고 했다. 아줌마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러시아어로 아주 투박스럽게 윽박지르듯 맞대응하셨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들었다. 난감했다. 분명 음식이 잘못 나온 것은 맞는데, 일단 갓 만들어 내 온 요리는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그냥 OK 하며 접수했다. 다행히 음식은 맛있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우리가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동양 할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날 우리가 먹은 음식은 딱 두 접시다. 동생 하나, 나 하나, 그런데 계산서에는 몇 종류에 체크가 되어 나왔다. 아니, 우리를 얼마나 무식쟁이로 봤으면.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계산서를 내 미는가? 아줌마를 불렀다. 제스처로 계산이 틀렸다고 하니까 어제처럼 오히려 큰 소리로 마구 윽박지른다. 너무 기가 찼다. 이런 행동은 한 번만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다. 화가 나니 저절로 콩글리시가 나온다. 계산서를 손가락으로 과하게 톡톡 치며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콩글리시로 뱉어냈다. 역반응으로 우리가 과하게 윽박질러대자 그때서야 아줌마는 슬며시 뒤로 물러서는 듯, 계산서를 집어 들고 가더니, 정상적인 계산서를 내 민다. 이런 뻔뻔한 아줌마라니. 식사를 하고 나서도 우리는 화가 단단히 났다는 표정을 취하며 식당칸을 나왔다.
돌아와서 마음이 가라앉으니 슬그머니 아줌마가 무안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은 식당칸에 서너 테이블의 손님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 보기에도 민망했을 터이다. 순간, 아차 생각이 났다. 첫날 계산할 때 팁을 올려놓고 나올걸. 그랬으면 오늘과 같은 행패는 안 부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러시아는 아직도 팁 문화가 있다. 그것을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이다. 괜스레 미안했다.
다음날 식당칸으로 갔다. 식당칸을 이용할 일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음식은 바로 만들어내어 오는데 항상 맛있었다. 어제, 그제와 같은 잡음은 당연히 없었다. 계산을 마치고 적지 않은 팁을 계산과 함께 내밀었다. 아줌마의 대답은 쓰바시바(감사)였다. 편안한 미소를 날리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