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길을 따라 / 러시아

#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by 칠십 살 김순남

룸에는 충전 코드가 없다. 복도에 세 곳이 있는데 빌 시간이 없다. 전압은 220v라 멀티 어댑터가 필요 없는데 이상하게 우리가 가지고 간 어댑터는 헐렁해서 자꾸 빠진다. 승무원 아가씨에게 맞는 어댑터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없단다. 할 수 없이 옆집 사람들에게 짬짬이 민폐를 끼쳤다. 열차 안에서 MTC는 맥을 못 춘다. 여기서는 SKT가 강했다. 어떤 구간은 MTC도 SKT도 전혀 터지지 않는 곳도 있다. 세상과의 단절이다.


커피와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뜨거운 온수는 우리가 열차 안에서 먹거리를 위해 조달받을 수 있는 모두다. 물은 손이 델만큼 뜨겁다. 식사 시간만 되면 열차 안이 온통 라면 냄새로 그득하다. 화장실은 열차 한 칸에 하나씩 있는데, 이곳도 그다지 빌 시간이 많지 않다. 여기에서 세수도, 볼일도 봐야 하니까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식수는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입구에 손을 대고 있어야 된다. 손을 떼면 물이 중단된다. 수압이 낮아서가 아니라, 마구 쏟아져 내릴 물 낭비를 막기 위해서인 듯하다. 그래도 수압은 세다. 이 물로 머리를 감는 사람도 많다. 나는 사흘 동안 머리는 안 감고 고수했다. 내가 풀코스, 일주일 횡단 열차를 타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다. 도저히 수도꼭지에서 손으로 물을 받아 머리를 감을 용기는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지도 자주 떨어진다. 그럴 때는 승무원 아가씨에게 가서 조달해 와야 한다.


책을 보려 하는데, 형광등이 나가버렸다. 이것은 곤란하다. 승무원에게 갔다. 아가씨는 영어 한 마디도 못한다. 영어를 잘하는 승무원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열차칸 담당 승무원은 못 했다. 그냥, 나를 뚫어지게 쳐다만 본다. 할 수 없이 손을 붙들고 일으켜 세워 룸으로 데려와 형광등을 가리켰다. 그때서야 아가씨 알았다는 듯,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강하게, 약하게. 아마 열 번 정도는 올렸다 내렸다 한듯싶다. 그러더니 안 되겠다는 듯, 나를 잠시 보더니 그냥 간다. 새 형광등을 가져오는 줄 알고 기다렸다. 안 왔다.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안 오는 줄 알고, 너무 우스워 혼자 웃었다.


그냥, 그대로 열차는 달린다. 밖에는 비가 오다가 그치다가 한다. 하늘은 구름 색을 여러 가지로 바꾸며 그림을 그려낸다. 때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 문을 열면 여름임에도 오싹 찬 기운이 느껴지는 시베리아의 바람이 열차 안으로 들어와 한 바퀴 쓸고 간다. 그렇게 어느 역에 도착했을 때다. 열차가 끼~이익 덜컹, 바퀴가 어딘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형광등 불이 켜진다.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또 혼자 웃었다.


86시간 동안의 시간. 3일 하고도 반나절. 좁은 공간에서도 씻고, 자고, 먹고, 배설하고, 읽고, 이웃을 사귀었다. 그동안 우리의 이층 집에는 세 번의 이사가 있었다. 두 팀의 러시아 부부, 두 명의 러시아 청년이었다. 모두 예의 발랐고 부부팀은 친절했다. 특히 마야와 엘리시엘 부부는 적극적으로 친절했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 주었다. 우리는 그들이 이층 집을 떠날 때, 기차 문 입구까지 배웅하고 뜨거운 포옹으로 작별을 했다. 마샤는 거듭거듭. 조심하고 건강하게 잘 다니라며 염려 섞인 인사말을 준다. 그들은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고 우리는 러시아어 한 마디 못한다. 오직 ‘쓰바씨바(감사하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말을 알아들었다 참된 감정이 통하니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서 너 번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못하고 우리는 러시아어와 영어를 못한다.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그들도 구글 번역기를 돌리는 듯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온 메일은 어순도 뜻도 이상했지만, 나는 모두 알았다. 아마 그들도 내가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보낸 메일을 그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횡단 열차의 종착역 모스크바 야로슬라브 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모스크바, 러시아란 단어보다 ‘소련’이란 사회주의 냄새가 풀풀 나는 단어가 아직은 나에게 익은, 도시의 새벽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반길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역사를 빠져나갔다. 새벽 4시, 겨우 어둠이 벗겨지려는 시간, 새벽을 밝히는 불빛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모스크바. 와 ~ 우! 두려움이 순간에 사라졌다. 이 새벽의 모스크바 야로슬라브 역에서 비로소 아름답고 열정적인 안나 카레니나와 잘 생긴 청년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 백작의 진한 운명을 감지한다.


새벽 4시, 모스크바는 밤새 깨어있은 듯, 밤새 밝혀 놓은 불빛에 건물마다 제 나름의 빛을 뿜어내고, 한 여름 새벽 공기의 청량함과 함께 우리 조선 두 할매의 동공과 가슴을 팽창시킨다. 모스크바 야로슬라브 역에서 시내 방향으로 나가면 모스크바 시내로 이동하는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메트로 콤소몰스키야'가 있는 콤소몰스카야 광장이 나온다. 광장 주위로 레닌그라드 역과 예카테린부르크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방향으로 가는 카잔스키 역도 있다. 이곳에 도착 후, 숙소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선례이나, 호텔 체크인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일찍다. 그래서, 여기서 일주일 후에 갈 상트페테르부르크행 기차표부터 미리 구입하려고 레닌그라드 역을 찾아갔다. 레닌그라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이다.


한국에서 알아보았을 때는, 티켓 구입하려면 줄을 길게 서야 되고, 복잡하다는 포스팅을 많이 봐서, 자동발매기에서 구입하는 방법도 알아보고 갔는데, 이때가 새벽이라서 그런 걱정 은 전혀 없었다. 한가해서 그런지, 매표소 직원분들도 친절했다. 신기한 것은, 직원분이 모두 뚱뚱한 나이 드신 아줌마다. 거기다 영어도 전혀 모른다. 수많은 외국 여행객이 몰려오는 곳인데, 이렇게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무시하는 곳은 처음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고 하니까 쪽지에 요금을 적어주는데, 7천 몇 루블을 적어 준다. 생각보다 비싸서 둘이서 마주 보며 구시렁대고 있으니 눈치를 챘는지, 다시 3514 루블을 적어준다. 요금이 절반이니 무조건 OK다.


레닌그라드 역은 일단 입구에 들어갈 때 무조건 보안대를 통과해야 한다. 근처에는 식당 말고는 공중 화장실 찾기가 힘들다. 레닌그라드 역 안에 있는데,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일단, 보안대를 통과해야만 해서 우리는 그 아침에 세 번, 보안대를 통과했다. 레닌그라드 역사 안 이층으로 가면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2루블 유료다., 화장지도 돈 주고 사야 된다. 돈 받고 화장실을 사용케 하면서 화장지도 제공 안 해 주다니, 좀 너무하다.


해외여행을 가면서, 특히 유럽여행을 가면서 우리나라가 정말 살기 좋은 나라구나,라고 생각게 하는 것이 화장실이다. 화장실을 들어가면 아마도 누구나 우리나라 화장실을 떠 올릴 것이다. 그때쯤이면 그토록 미워하던 대한민국 정치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사의 마음이 들것이다. 미운 정치인들이, 대기업들이, 그래도 그냥 놀면서 입으로만 정치하고 경제 활동한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


별로 어렵지 않게, 1차 목표,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삽산 열차표를 구입해 놓고, 광장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콤소몰스키야 역을 빠져나오면서 첫 번째 맞닥뜨리게 되는 24시간 영업을 하는 카페에 들려서 간단히 커피와 샐러드로 아침을 챙겨 먹는다.


카잔스키 광장 쪽으로 가 본다. 모두 손에 기차 모형을 들고 있는 조형물을 본다.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 만하다. 조형물 주위를 빙빙 돌면서 보고 또 봤다. 그 앞에 붙여 놓은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문자를 어렵사리 검색해 봤다. ‘철도 창시자’ 지금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제, 모스크바인들이 출근하는 시간이 된 모양이다.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이제 숙소를 찾아가야겠다. 언제부턴가 첫 도착지는 픽업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도시가 낯설기도 하고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것도 힘에 부치기도 해서이다. 그런데 이 날은 체크인 시간이 너무 이르다. 이동 경로 공부도 할 겸. 천천히 대중교통으로 이동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이용해야 하는 첫 메트로는 콤소몰스키야 역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출구와 입구가 다른 곳이 많다. 역 맞은편 지하로 내려가야 입구로 갈 수 있다. 꽤 긴 통로를 지나서야 매표소와 지하철 개찰구가 보인다. 처음으로 메트로 1회 권 티켓을 매표소 창구에서 50루블에 구입했다. 이제부터 그림 같은 문자가 적힌 표지판을 보고 이동해야 한다. 개찰구는 우리나라 지하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2.jpg


작가의 이전글글 속의 길을 따라 / 러시아